[나홀로 길을 걷네 12] 기나긴 1박2일의 기록 – 기간제 교사, 교실과 광장을 오가다
최근 몸이 아픈 후배가 나에게 SOS를 요청해서 간신히 병가를 얻었다. 그가 몸으로 지병을 얻기까지 마음으로 겪은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짐작해 보면서 그가 비운 교실에 내가 들어가게 되었다. 서이초등학교 20대 선생님이 혼자 죽어간 이후, 누구도 선뜻 학교에 강사로 가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학교 상황은 가까스로 평화의 겉옷을 입고 2학기를 시작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평화로운 듯한 아이들의 뒤에는 학부모의 욕망이 있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 아이가 오늘 학교생활을 잘하고 돌아올까? 누군가로부터 불편한 시선을 받지는 않을까? 불안한 사랑이 아이들을 감싸고 있다. 이제 조금도 젊은 티가 남지 않은 할머니 선생님이 된 내가 어린아이들을 맡아 두달 동안 교실을 지키게 된 것이다. 새로 만난 아이들은 초등 1학년이다. 시인의 말대로 아이들은 어른의 스승이자, 함께 보낸 시간의 거울이다. 나는 그저 아이들 눈망울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두달 간의 학교생활을 엮어가고 있다.
학교를 벗어나서 4년간을 쉬다가, 학교로 출근하려니 긴장이 됐다. 사과 한 쪽과 포도 서너 알을 챙겨먹고 두유를 빨면서 새벽에 집을 나서는 맛은 한편 힘들면서도 한편은 상쾌하다. 집앞 언덕길을 내려가서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 내리면 넓은 광장의 아침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찻길 너머 광화문과 북악산, 멀리 북한산 봉우리 위로 시원한 하늘이 펼쳐져 있다. 숱한 풍파를 목도하고 견뎌온 역사의 공간. 하늘은 시원하게 열려있고 하얀 조개구름이 바람의 결을 따라 배치되어 있는 시각, 새날의 해가 비쳐든다.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면 직장인들이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가득채워 올라온다. 역방향으로 내려가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폭이 넓은 계단의 한쪽 구석에 표시된 좁다란 화살표를 따라 들어간다. 지하철로 15분, 버스로 15분 정도 이동하면 학교에 도착한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들어서면 창문을 열고, 빈 칠판에 오늘 할 수업시간표와 주제를 챙기고 컴퓨터를 열어본다. 교내 업무용 메신저에 와 있는 내용을 살펴보고, 수업에 사용할 자료를 챙긴다 그러면 아이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나눈다. 이 교실 아이들은 가정형편이 넉넉하여 충분한 돌봄을 받는 편이다. 종종종, 살금살금, 투닥투닥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서서 칠판의 시간표를 확인하고 사물함에서 교과서와 준비물을 갖다놓고 도서실에 가거나 자리에서 친구를 맞으며 아이들의 하루는 시작된다.
어제는 비가 내렸다. 수업이 끝난 후, 현관 앞에서 아이들이 모두 우산을 폈다. 키 작은 정윤이가 제일 뒤에 서서 아직 우산을 못 펴고 있었다. 내가 도와주려고 가까이 가니까 아이가 말했다. “아이 참, 왜 이렇게 우산이 안 펴지지? 어, 비가 쪼끔밖에 안 오네. 난 그럼 우산 안 쓸 거야. 나는 원래 비 맞는 걸 좋아하니까!” 느림보 정윤이는 기분좋게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하마터면 정윤이 볼에 뽀뽀를 할 뻔했다.
’에규, 귀여운 녀석! 넌 꼬맹이가 왜 그렇게 낭만적이니?‘
아이들을 보내고 일과를 마치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집으로 온다. 더 큰 학교인 사회에서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신문기사를 일별하고, 언론사 유투브에 들어가 저녁 방송의 주제를 확인하고 즐겨듣는 강의도 살펴본다. 일본의 후쿠시마 핵폐수가 방류된 지 한 달이 넘었다. 수해복구에 투입된 채 상병의 죽음에 대해 수사지휘를 했던 박정훈 수사단장에 대한 외압사건, 서이초 교사의 죽음에 대한 진실, 독립군대장 홍범도 장군의 흉상철거 등, 온 나라가 상식을 뒤집는 사건들로 넘쳐난다. 교실 수업의 문제를 넘어, 사회의 상식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키워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실시간 진실에 말하지 못한 채, 자식을 출세시키겠다는 학부모의 욕망에 수업으로 서비스해 주는 일, 아이들 점수나 챙겨준다면 교사는 과외선생 학원선생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교사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반인권적인 법조문에 막혀 교사들은 한 사람의 온전한 시민으로 살 수 없었다. 반편 시민, 눈뜬 장님으로 세상의 일에 침묵하고 교과서 속 과거에 대해서만 수업해 왔다. 정치선진국 독일의 경우를 보면 교사생활을 성실하게 해온 사람들이 지역의회에 자원봉사를 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일꾼이 되고, 국회로 간다고 한다. 정치가가 꿈인 학생들은 10대부터 지역공동체와 정치현장에 참여해서 공정한 정치의 메카니즘을 몸에 익힌다고 한다.
그러므로, 정치적 역량과 공공성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원한 사람만이 동료들의 추천을 얻어 정치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패거리 정치의 이합집산, 다른 영역에서 일해온 유명인이 갑자기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들었다. 무엇보다 합리적인 정치제도를 만들어온 정치선진국 사람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이 깨어있고, 각 분야에 실천적인 지식인들이 흔들림없이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는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22년 들어선 윤석열 검찰정부는 정적 죽이기에 골몰해서 야당대표인 이재명의 주변인물을 370여 차례 압수수색하고, 10여년 동안의 행정경력을 들추어 범죄사실을 찾고 있는 중이다. 0.7%로 대통령선거에 패배한 정치적 경쟁자를 취임 이후 한차례도 만나지 않은 채, 감옥에 넣을 생각만 하고 있으며, 막강한 검찰권을 장착한 정부는 비판언론을 무너뜨리고 국민들을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은 보궐선거로 국회에 들어가 야당대표가 되었다.
하지만 야당 또한 기득권에 취해 이재명을 불편해하며 응집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안으로는 대표의 지도력이 살아나지 않고, 밖으로는 여당과 검찰에서 겨누는 칼날을 한몸에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외교와 국방은 위태롭고 경제는 무너지고 있으며, 바다에는 독극물이 흘러들고 있다. 급기야 단식투쟁에 돌입한 이재명은 검찰정부의 실정에 대해 저항하고자 했으나, 국회 안으로 체포동의서를 띄운 법무부장관의 기소문에 민주당 국회의원이 자당 대표의 등에 칼을 꽂는 배신의 투표로 체포동의서가 가결되고 말았다.
억강부약 대동세상의 꿈은 이대로 무참히 짓밟힐 것인가? 민주진영의 많은 단체와 시민들이 민주당의 배신행위에 분노하고, 검찰의 폭력적인 권한 남용에 기가 막혔다. 곡기를 끊은지 24일을 넘어선 위험한 상황에서 이재명은 단식을 중단하고 몸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법원에 출석해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몸을 가누기 어려운 상태이나 간신히 지팡이를 의지해서 서초동 중앙지법에 들어섰다. 10명의 검사들이 500여쪽의 PPT자료를 만들어 이재명의 구속을 주장했고, 이재명 측은 죄가 될만한 일은 하지 않았으므로 증거가 부족하고, 구속수감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법은 검찰의 손아귀에서 마음껏 왜곡되고 조작될 수 있으므로 혹시나 구속 용인 판결이 나올 수도 있을지 몰라서 마음을 졸였다. 구속 수사냐, 불구속 수사냐에 대해 시민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지만, 국회에서는 민주당마저 이재명을 검찰에 넘긴 상태이고, 마지막 관문인 사법부 판결의 문턱에 서게 된 것이다.
잠이 오지 않았다. 중앙지법의 심사가 끝나고 사법부의 판결만 남겨둔 시간, 지지자들이 비가 오는 서울구치소 앞을 지키고 있었다. 유투브 방송을 켜놓고 잠시 눈을 붙였다. 눈을 뜨니 밤 1시 50분, 아직도 판결은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과연 상식적인 판결이 내려질까? 비가 내리는 구치소 앞에서 지지자와 소수의 개혁파 민주당 의원들이 좋은 판결을 기대하며 모여들었다. 7시간여 고심 끝에 법원은 2시 26분 경 “기각!” 소식을 전해왔다. 그러면 그렇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혹시나 하는 염려로 옥죄었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야당대표에게 죄를 덧씌워 기소를 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인신을 구속하려 했던 이 거대한 음모는 잘못된 것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유창현 판사의 합당한 판결에 깊이 감사했다. 불안한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며 이재명 대표가 구치소 문앞으로 지팡이를 짚고 나온 시간은 새벽 4시 즈음이었다. 그는 사법부와 국민께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정부 여당에게 더이상 정적 죽이기를 그만두고, 누가 더 국민과 민생을 위해 일할지 경쟁하자고 낮은 목소리로 당부했다. 나는 깊은 숨을 토해냈고, 현장의 많은 사람들은 기쁨과 안타까움의 눈물을 훔쳤다. 안도 속에서 잠시 잠을 청했다.
공동체와 약자의 삶을 도외시하고, 역사와 환경을 파괴하면서 친일 종미에 급급한 사람들, 더 나아가 전쟁을 하고 싶어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 저들을 과연 누가 가르쳤을까? 저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궁금해진다. 2022년 3월부터 목도한 무교양의 독재정치와 사익추구의 카르텔에 기가 막혔다. 질식할 것 같은 나날 1년 반, 18개월이 흘렀다. 외세의 침략도 아닌, 자국의 기득권 세력이 이렇게까지 약자와 국민들을 억압할 수 있구나.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지. 우리에게는 권력에 굴하지 않는 유목의 정신과 아나키의 피가 흐르지 않는가.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가자.
사법부의 체포영장 기각이라는 올바른 판단이 어둠의 장막은 걷어내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고 꿋꿋이 견뎌온 개념찬 시민들에게 위로와 선물이 되었다. 캄캄한 먹구름 속에서도 정의의 빛은 스러지지 않았다는 것과 이 땅에 아직도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을 향한 희망의 빛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빛은 어디를 비출 것인가? 민주당 안의 기득권과, 정부와 검찰의 비리 사실을 향해 환하게 빛나는 광선검을 비출 차례다.
나도 매일매일 더 맑아져야겠다.
학교에서나 광장에서나 집에서나, 어른들이 바르면 아이들도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