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자본주의적 도태

일러스트=강동현

 
최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집값이 비싸서 그렇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사교육비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저출산의 근본 원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합계출산율 2명 미만의 저출산이 시작되었던 때는 바로 사교육이 금지되고 집값이 억제되고 있었던 1984년이다. 이제 저출산의 근본 원인을 이야기해야 한다. 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자본주의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실상 모든 자본주의 선진국이 저출산 현상을 겪고 있다. OECD회원국 중 이스라엘만이 합계출산율 3명일 뿐(2021년 통계), 나머지 회원국들은 전부 2명에 미치지 못하였다. OECD 회원국의 합계출산율 평균이 1.58이어서 우리나라보다 훨씬 낫다고는 하지만, 남녀 두 사람이 2명 미만의 자식을 낳는다면 출산율이 0.8이든 1.5이든 그 국가는 결국 소멸될 운명일 것은 마찬가지이다.
 
나는 자본주의 선진국에서 일어나는 저출산 현상을 ‘자본주의적 도태’라고 부르고자 한다. 그래야 이 현상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의 질을 따지자면 한 명이 버는 것보다 두 명이 버는 것이 유리하고, 두 명을 부양하는 것보다 한 명을 부양하는 것이 유리하며, 부양가족이 없는 것은 더욱 유리하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조금이라도 경제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사회가 변모해 가는 강력한 힘이 작용한다. 과거 공산주의 국가가 폭력이나 프로파간다로도 없애지 못했던 전통이나 종교의 영향력은 자본주의의 힘 앞에 무릎을 꿇은지 오래되었다.
 
어릴 때부터 경쟁으로 단련된 한국인들은 자본주의의 속성에 최적화되어 있다.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한다는 전통적 관념이나 아이는 신의 축복이라는 종교적 가르침을 단호히 거부할 자세가 되어 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는 사람은 안정된 직장과 충분한 재력이 있는 계층과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미처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전에 아이를 갖게 되는 계층에 집중되고, 중간 계층은 빠른 속도로 도태되는 중이다. 역설적으로 그들은 결혼과 출산을 거부함으로써 생존의 안전을 도모하며, 못난 부모, 못난 배우자가 되는 죄책감을 면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도태의 무서운 점은 사회 내의 구성원을 도태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 자체도 파괴한다는 데 있다. 경쟁과 도태가 언제나 종의 존속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어떤 고대 사슴류는 뿔이 큰 수컷이 암컷의 선택을 받았다고 한다. 수컷들은 뿔의 크기로 경쟁하였고 뿔이 큰 수컷 사슴은 암컷을 차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결국 감당할 수 없을 때까지 뿔이 커지다가 천적을 피할 수 없어 멸종했다고 한다. 자본주의적 도태도 그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더 합리적으로 진화하고 있지만 사회는 소멸을 향해 가고 있다.
 
해결책은 있는가? 아이를 낳는 것이 이득이 될 정도의 경제적 보상을 사회 전체가 해주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본다. 아이에게 들어가는 경제적 비용은 물론, 부모의 양육노동과 정신적 소모에 대한 보상까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즉, 아이를 낳지 않고 일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이를 사회주의라 하겠지만, 이러한 발상은 지극히 자본주의적이다. 자본주의는 철저하게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포기하기 싫다면 문제 해결도 철저히 자본주의적으로 해야만 한다. 극단적인가? 소멸을 향해 가는 우리의 현실보다 극단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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