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의 인간

일러스트=바로크

 
<멋진 신세계>에는 부모님이 없다. 인간이 스스로 인간을 잉태하지 않으며, 정상적인 성장을 억제하는 ‘보카노프스키 법’에 의거해 태어난다. 하나의 난자는 96개의 태아가 될 가능성을 지니며, 똑같은 쌍둥이가 몇십 쌍씩 태어난다. 이는 내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인간의 생명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인간의 자궁이 아닌 기계 안에서 생산되듯이 태어나는 아이를 과연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이 의문은 길게 남아, 소설의 끝에서 비로소 해소되었다. 그 아이는 ‘신세계’의 아이이다. ‘신세계’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며, ‘신세계’의 권리를 누리는 아이일 뿐이다. 그들에게 있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생명관은 필요하지 않고, 단지 조롱거리일 뿐이다.

헉슬리가 글로 지어낸 신세계는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낸 신세계와 다르다. 그가 글에 담아낸 모든 것들에 이질감을 느꼈고, 이 이질감은 ‘신세계의 인간은 왜 그렇게 태어날 수밖에 없을까?’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뭉쳐졌다. 신세계에서 인간이 태어나는 방식을 되짚어보며, 이 질문의 답을 찾기로 했다.
 
“난자가 때로 우연한 분열을 일으키던 모태시대에서 보았던 보잘것없는 쌍둥이나 세 쌍둥이가 아니라 훌륭하고 똑같은 쌍둥이가 나오는 것이다. 그것도 한 번에 몇 다스씩, 아니 몇십 쌍씩 나오는 것이다.”
 
신세계의 과학은 하나의 난자로 96개의 태아가 될 가능성을 보았고, 그 가능성을 행동으로 옮겨 한 번에 많고 똑같은 인간을 생산할 능력을 갖추었다. 신세계는 많은 인구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알던 인간의 탄생을 무너트렸다. 우리는 생명의 탄생을 축하한다. 태아가 자궁 밖으로 나와 부산물을 토해내고,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을 고대한다. 그 태아가 한 명이 아니라면 기쁨은 배가 된다.
 
하지만 신세계 인간들을 인간의 탄생에 대해 축하가 아닌 과학의 진보에 찬사를 보낸다. 그들은 난자에서 태어난 하나의 아이가 아닌 수십 명의 똑같은 아이들을 원한다. 한 번에 몇십 쌍씩 나오는 아이들은 축하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온갖 여정을 거쳐 태어난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태어나는 존재들이 아니니, 언제든 새로운 인간을 배치해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으며 혹시나 잃게 되는 목숨에도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또한 계급을 미리 정하고 조건반사석 습성을 훈련시킵니다. 우리는 사회화된 아기를 내놓습니다. 알파 계급 또는 엡실론 계급을 내놓아 장차 하수구 청소부로서 아니면 미래의 …….”
 
많은 인간의 생산은 관리를 불가피하게 만든다. ‘계급’은 관리의 수단이다. 신세계의 인간들은 난자에서 분열되는 인간들의 계급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에 정해지며, 그 계급에 맞게 가공된다. 계급이 낮을수록 줄어드는 산소공급량은 뇌와 골격을 침범해 각 계급 맞는 외형을 잡는다. 신세계에서는 계급의 구체화에 많은 공을 들인다. 이런 신세계의 세계국가는 ‘공유, 균등, 안정’의 표어를 내걸었다. 인간이 계급의 형태에 맞게 가공되는 사회에서 저 표어들은 신세계의 뜻 자체를 담고 있다. 우리가 공유, 균등, 안정을 위해 노력했을 적에 신세계는 생산된 인간과 계급으로 공유, 균등, 안정을 이루었다.
 
“알파 계급의 아이들은 회색옷을 입고 있어요. 그애들은 매우 똑똑해서 우리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요. 나는 베타가 된 것을 진심으로 다행하게 여기고 있어요. (중략) 정말 나는 델타 계급 애들과는 놀기 싫어요. 그런데 엡실론 계급은 더 엉터리예요. 그애들은 너무 바보라서…‥.”
 
생산된 인간은 계급에 따라 어릴 적 받았던 암시가 의식이 되어 그들을 지배한다. 그들은 의식에 대해 순응하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기서 세계국가의 표어를 대입해보자. 신세계의 인간들은 계급에 따라 같은 난자가 ‘공유’되고, ‘균등’한 암시를 받았으며, 자신의 의식조차 의심하지 않아 일말의 혼란 없는 ‘안정’된 사회를 만들었다. 세계국가의 표어에 따라 신세계는 착실히 굴러간다. 신세계의 인간은 제 계급에 따라 착실히 굴려지는 바퀴가 되었다.
 
“그런데 가정은 물질적으로 누추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누추했다. (중략) 가족집단 성원들 사이에는 질식시킬 것 같은 친밀감이 있었고 위험하기 짝이 없고 광적이고 추잡한 관게가 있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광적으로 애지중지했다. ”
 
“세계는 아버지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비참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하여 가학성 색광에서부터 동정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도착증으로 충만해 있었다. 세상은 형제, 자매, 삼촌, 숙모 등으로 충만했다. 그리하여 광증과 자살로 충만했다.”
 
인간이 생산되는 신세계에는 부모의 존재가 없다. 신세계는 우리들의 사회를 그토록 혼란하게 만들었던 핏줄의 관계를 부정하며 신세계의 ‘안정’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신세계는 핏줄처럼 깊은 관계가 사회에 광증을 불러온다고 말한다. 그리고 “광증은 전염하는 법이다.”
 
남녀가 직접 씨앗을 뿌리고 기틀을 마련하여, 어머니가 그녀의 뱃속에서 몇 달을 품어 기른 아이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과 애정을 쏟는 건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부모는 때로 사랑과 애정을 가장해 제 자식에게 집착하고 간섭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부모들이 쏟는 사랑과 애정은 때로 잔인하고 광적이기에, 제 자식이나 부모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을 때가 있었다. 또한, 부모마다 제 자식에게 쏟는 사랑은 ‘균등’하지 않았기에 사회에 큰 혼란을 초래했다. 누군가는 과도한 사랑을 받아서, 또 누군가는 최소한의 사랑도 받지 못해 서로 같은 사회에 나왔고 서로의 간극을 메우지 못해 항상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한 남자와 이처럼 노는 것은 아주 나쁜 버릇이야. 마흔 살이라든가 서른다섯 살이라면 그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거야. (중략) 무엇이든 몰두하고 오래 끄는 것은 소장이 극구 반대하는 것이라는 것쯤 너도 알고있지 않니?”
 
신세계는 ‘안정’에 상반되는 혼란을 혐오하고, 혼란을 일으키는 부모를 비롯한 모든 친족의 존재를 부정한다. 신세계는 부모, 친족과 같이 다른 상대와 깊은 관계에 놓일 연애에 관해서도 규정한 바 있다. 단 한 명과 깊은 마음을 나누는 연애 대신 여러 명과 얕고 몸을 섞는 형태를 지향한다.
 
신세계 인간의 생산과 계급의 분화, 부모와 친족의 부정으로 정리할 수 있는 위의 내용은 “겨우 34층밖에 되지 않는 나지막한 회색빌딩. 중앙현관 위에는 ‘런던 중앙 인공부화ㆍ조건반사 양육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건물 내부로 견학을 온 견습생들에게 소장이 이야기 해주는 이야기이다.
 
소장은 어떻게 혼란하던 사회를 알고 있을까? 어쩌면 그가 높은 지위에 있어 특별한 암시를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견습생들은 눈앞에서 인간의 생산을, 계급의 분화를 보았음에도 특별한 반발심을 가지지 않는다. 계급의 부정은 자신의 부정을 의미하기 때문이고, 그들이 어릴적 받았던 암시들이 톡톡히 제 역할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신세계에서는 그 아무도 인간의 생산에 대해 우리가 들법한 ‘인간의 생명관’을 끄집어내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인간의 생명관’은 구시대의 역사 한편일뿐이다. 그 역사는 더럽고 추악하게 짝이 없으며, 그것을 탈피하고 ‘안정’된 지금의 사회를 찬양한다.
 
신세계의 인간들은 사회의 ‘안정’을 위한 훌륭한 도구가 되어주었고, 소장같이 높은 누군가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헉슬리의 신세계와 비교했을 때 우리의 사회는 매우 혼란하지만, 적어도 혼란한 사회는 신세계가 지향하는 ‘안정’보다 더 많은 뜻을 포괄할 수 있다고 본다. 안정된 사회는 인간의 생각을 멈추게 만든다. 모든 것이 안정되어 있으니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신세계 사람들은 그들의 사회가 맹목적인 ‘안정’을 지향해도, 소장이 혼란했던 사회를 알고 있는 이유도 묻지 않는다. 이런 부분에서 신세계는 전혀 멋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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