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의 미학, 리움미술관
1994년, 대학생이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성적이 신통치 않았던 데다 첫 수능 세대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공부보다는 문학이나 음악, 영화, 이런 것들에 더 관심이 깊어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땡땡이’ 치고 혜화동과 종로 바닥을 싸돌아 다닌 기억이 대부분이다. 돌아보면 그런 자세로 용케도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들어갔구나 싶다. 대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사람이 바뀔 리 없었다. 달라진 거라면 미성년일 땐 몰래 보던 것들을 당당하게 보게 되었다는 것 정도랄까.
이전보다 더 가열차게 공부 이외의 것들에 탐닉했는데, 당시엔 ‘공부 이외’라 여기던 것들이 이제와 돌아보면 내 인생에 적절한 동위원소가 되어준 듯 하다. 같은 존재에 대해 느끼는 감각의 양성자 수가 같아도 그것이 삶에 얼마만큼의 질량으로 작용할지 그때는 몰랐다.
인생의 어느 시기엔 나를 매혹하는 것들에 한 번쯤 깊이 빠져볼 필요가 있다. 꾸준히 빠져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정도로 일관적이면 운명이 되기도 하니까. 쉰을 바라보는 내가 ‘글’을 직업의 하나로 삼게 된 사건도 마찬가지다. 어릴 적부터 호기심에 진심이었고 호기심을 위해서라면 모험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또 물리적 손해를 입기도 했지만 ‘영광의 상처’라 여기고 있다
지적 호기심의 대부분은 책으로 풀었다. 무궁무진한 텍스트의 바다에서 수영하는 데 재미가 붙어, 도서관과 서점은 어느덧 가장 애정 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미술이라는 영역은 어려웠다. 책에 실린 미술작품을 보며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은 적이야 있지만, 뭐가 감동적이라는 건지 알쏭달쏭했다.
그러다 실제로 피카소의 방순한 선을 목격한 날, 고흐가 피워낸 붓꽃을 마주한 날, 클림트의 눈부신 노랑을 접한 날, 르네 마그리트의 환상을 체험한 날,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 맞은 듯 혼미해졌다. 그건 지금껏 책 속에 삽입된 사진으로 보던 것과는 ‘완전하게’ 다른 존재였다. 피카소의 천진함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것이었고, 그저 청초하다고만 여기던 고흐의 아이리스는 어마어마한 불꽃 모양으로 이글거리고 있었으며, 클림트의 노랑에 눈이 부시다 못 해 며칠을 앓았고, 르네 마그리트의 하늘은 다른 차원을 담은 것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때부터일 테다, 새로운 곳에 갈 기회가 생기면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게 된 것은. 작품을 품은 공간 또한 저마다 사뭇 분위기가 달라서, 동일한 화가의 같은 작품이 걸려도 때와 장소가 달라지면 새로운 감상을 선사해 준다는 걸 알았다. 영화 속 귀부인처럼 작품에서 살짝 떨어져 팔짱을 낀 채 허세로운 시간을 보내는데 도취된 나는 미술관에 갈 때면 잔뜩 차려 입고 길을 나서곤 한다. 지금 나 미술관에 가는 길이야, 이 문장은 또 얼마나 근사한가!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뜸했던 나의 미술관 허세놀이가 최근 다시 시작 되었다. 그렇게 간 곳 중 하나가 ‘리움미술관’이다. 지난 가을부터 몇 달 사이 세 번이나 방문했는데, 고백하자면 첫 방문은 공간에 압도당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절절하게 경험한 시간이었다.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리움은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Lee와 뮤지엄(Museum)의 um에서 그 이름을 딴 것이라 한다. 소장전은 무료로 특별전은 유료로 운영이 되다가, 고(故) 이건희 회장의 미술품 기증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2021년 10월부터는 사전 예약이 필요하긴 하지만 상시 무료 입장으로 바뀌었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콜하스에 의해 장장 8년에 걸쳐 완성된 리움은 국내 사립미술관 중에선 최고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양이 방대하고 작품 수준이 높다. 오래 공을 들여 지은 만큼 건축물의 모양새도 빼어난데, 특히 M1 고미술 섹션의 4층에서 1층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을 방불케 해 리움마술관의 시그니처로 자리잡았다. 또 건물 바깥에서는 애니쉬 카푸어의 거대한 조형물이 마치 최고급 호텔의 수석 지배인 같은 자태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제법 미술관을 돌아본 축에 속하는데도 리움미술관 첫 방문에서 잔뜩 주눅이 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전시된 작품을 죄다 섭렵하려던 내 과욕이 결국 쓴 피로로 이어진 걸까. 미술관이라는 곳에 생전 처음 가 본 것도 아니면서 이토록 스스로의 초라함에 함몰될 일인가 싶어 지하철역 계단에 앉아 조금 울었다. 물론 그 상황은 리움미술관의 의도가 아님에 분명하다.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신라시대 유물은 국보 13점, 보물 30점뿐인데 비해 리움은 국보 36점과 보물은 96점이나 소장하고 있다니 그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도 남음이다. 이런 예술품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임에도 리움을 나서며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 마음은 쉽사리 펴질 줄을 몰랐다. 거대자본의 위력까지 운운하면 과장일까?
다행하게도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문에서는 그런 쭈굴한 기분에서 벗어나 리움에 있는 작품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얼마 전 관람한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展)의 여운은 컸다. 그러나 리움은 내게 여전히 푸근하게 다가오는 장소는 아니다. 물론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관람객에게 편안함을 제공해야 하는 건 아니다. 장소 특성상 많이 걸을 수밖에 없고, 감상이란 일정 부분 공부의 영역이기도 해서 규모가 클수록 관람 시간이 마냥 수월하게만 흐르지 않는다. 문득 리움의 매력은, 관람객을 모이게 하는 힘은, 불편함의 미학 바로 그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그 불편함의 정체가 궁금해 연거푸 방문했던 건지도.
사람들이 미술관에 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허세놀이라는 말을 쓰기는 했지만 이유가 소위 ‘간지’ 그 하나만일 리 없다. 멋진 예술 작품을 실물로 영접하는 희열, 등을 꼿꼿하게 펴게 하는 곳, 감상하는 동안 받은 자극으로 화사하게 소란해지는 뇌 주름, 나라는 인간이 한층 고매한 존재가 된 것만 같은 뿌듯함, 우리로 하여금 발걸음을 미술관으로 옮기게 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인간에게 호기심과 허세가 없었다면 미술관도 박물관도 짓지 않았을 지 모른다. 하나의 작품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와 혼을 불살랐을 예술가를 떠올리다 보면 그 위대한 존재들을 멋진 큐레이팅으로 한 곳에 모아둔 미술관을 마냥 편하게 감상하려는 건 너무 나이브한 태도 같기도 하다. 나는 앞으로도 불편함의 미학에 익숙해지기 위해 한껏 차려 입고 미술관에 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