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일러스트=바로크

 
타지에 있으면 항상 떠나온 고향을 생각한다. 따뜻한 집, 항상 있는 가족을 생각하며. 여전히 부모님 슬하에 있기 때문인지 타지에서 생활할 시간은 까마득하게만 느껴지지만,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을 때면 그 시간이 더욱 빠르게 다가오는 것만 같다. 「무진기행」의 주인공 윤희중은 되돌아온 고향을 버티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간다. 고향에서 아픈 추억만 쌓아 올린 그를 보며, 나중에 어떤 이유에서든 고향을 떠날 나를 그렸다.
 
「무진기행」을 읽으며 총 두 가지의 영역으로 작품을 분석하였다. 한가지는 정신분석학적 영역, 또 다른 한 가지는 개인주의적인 영역이다. 두 영역의 분석 모두 다른 도서들을 참고했으며, 내 의견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저술했다. 작품 분석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무진기행」의 줄거리를 훑어보자.

작중 주인공 윤희중은 서울을 떠나 고향인 무진으로 내려간다. 서른세 살의 제약회사 중역인 그는 4년 전 회장의 딸인 지금의 아내와 결혼해 이제 전무 승진을 앞두고 있다. 무진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무진에는 별다른 특산품 같은 게 없다는 행인들의 말에 윤희중은 무진의 특징인 안개를 떠올린다. 윤희중에게 있어 무진은 과거 동거하던 희를 잃은 곳이고, 모두 전쟁터에 나갈 때 방에서 틀어박혀 있던 아픈 기억으로 얼룩져있는 곳이었다.
 
윤희중은 아픈 기억을 뒤로하고 무진에 발을 딛고서 후배 박과 중학 동창이며 무진의 세무서장으로 있는 조, 그리고 음악교사 하인숙 등을 만난다. 인숙은 서울로 가고 싶다고 말하며 그를 유혹했고, 무진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인숙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한 그는 인숙에게 사랑을 느끼게된다. 하지만 윤희중은 다음 날 상경을 요구하는 아내의 전보를 받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인숙을 두고 무진을 떠난다.
 
윤희중은 무진으로 내려가면서 자신의 뒷자리 앉은 이들의 대화를 듣게된다. 무진에는 별 다른 명산물이 없다는 말이었다. 윤희중은 이를 들으며 무진의 명산물 ‘안개’에 대해 생각한다. 이 안개는 얼마나 짙은지 아침에 일어나면 무진을 둘러싼 산을 모두 유배 보냈다고 표현할 정도이다. 이 무진의 안개가 윤희중에게 있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에 앞서 안개가 짙게 끼는 윤희중의 고향 ‘무진’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윤희중에게 무진은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가야 할때거나 무언가 새출발이 필요할 때 찾는 곳이다. 그마저도 무진에 가서 새로운 계획이나 새로운 용기를 얻어오기는커녕 골방에서 뒹굴거리는 것이 전부다. 그가 서울에 나가 있을 때, 그의 귀가 외부의 소리를 담아낼 때, 문득 드는 그리운 감정에 고향 무진을 생각했었다. 정확히는 어둡던 윤희중 자신의 청년시절을 생각했었다.
 
그가 청년이었던 시절 6.25 사변이 발발했고 윤희중은 어머니에 의해 골방에 처박혀져 의용군의 징발도, 국군의 징병도 모두 기피해버리고 말았다. 또한 제약회사에서 경리로 일하다 좀 더 큰 다른 회사와 합병되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었고 동거하고 있던 희(姬)도 자신을 달아나게 된다. 이렇듯 윤희중에게 있어 무진은 정든 고향이 아닌 아픔 가득한 암울한 곳이다.
 
무진의 명산물인 ‘안개’는 윤희중이 암울한 청년시절을 보낸 무진를 감싸고 있다. 정신분석학 관점으로 들여다보면 안개는 무의식의 영역으로 볼 수 있다. 무의식(the unconscious)은 상처, 두려움, 죄의식이 따르는 욕망, 해소되지 않은 갈등 등 우리가 거기에 압도되기 때문에 알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경험과 감정들이 보관되는 창고이다. 무의식은 억압(the repression)을 통해 아주 어릴 적에 생겨나는데, 억압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불행한 정신적 사건들을 의식에서 몰아내는 역할을 한다.1)
 
이 억압으로 인해 윤희중은 작중 ‘나의 어둡던 세월이 일단 지나가 버린 지금은 나는 거의 항상 무진을 잊고 있었던 편이다. (중략) 하여튼 나는 무진에 대한 그 어두운 기억들이 그다지 실감 나게 되살아오지는 않았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억압이 고통스러운 경험과 감정들을 제거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그런 경험과 감정들에 힘을 부여 함으로써 현재의 경험을 조직해 내도록 한다.2)
 
윤희중의 암울한 청년시절은 억압으로 제거되지 않았다. 윤희중은 오히려 과거의 자신과 같이 무진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하인숙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관계까지 가지게 된다. 사랑하는 하인숙에게 꼭 그녀를 서울로 데려가겠다고 말한 윤희중이었지만, 다음날 상경을 요구하는 아내와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하인숙에게 전해주려던 편지까지 찢어버리고 부끄러움만 잔뜩 느끼며 상경한다. 윤희중은 언젠가 다시 실패로부터 도망치거나 새로운 시작을 위해 돌아올지도 모르는 무진에 안개를 두고서 또 다시 무의식을 억압할 수밖에 없다.
 
작중 하인숙을 무진에 두고 상경하는 윤희중의 행동은 개인주의적인 방면으로도 해석해볼 수 있다. 「목포의 눈물」을 노래하는 여선생에게서, 서울로 가고 싶다고 바다로 가는 긴 둑에서 희중에게 매달리는 여자에게서, 자기 자신이 싫어질 때도 있다는 그런 여자에게서 그는 동거하고 있던 희(姬)를 잃어버렸을 때의 자기 자신을, 모두가 전쟁터로 몰려갈 때, 골방 속에 숨어서 수음하고 있던 때의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중략) 그는 마치 그 과거를 소생시키기 위해서 인 듯 그녀와 정사를 맺는다. 완전한 의식의 조작이다. 그러나 그는 영리한 생활인이다. 그에게는 그의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그의 아내와 그의 장인의 후광이 있다.3)
 
윤희중이 무진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하인숙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하고, 그녀를 사랑했다고는 하나 윤희중에게는 이미 사회적 지위를 제공해주는 아내와 장인이 있었다. 윤희중은 그런 든든한 지주를 차마 배반할 수 없을 것이다. 윤희중은 그들이 없다면 돈도 사회적인 지위도 한순간에 잃게 될 것이고, 안개가 있는 무진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윤희중에게 있어 무진이라는 곳은 어두운 과거를 버려두고 온 곳이다. 하인숙도 그 어두운 과거를 버려둔 무진이라는 곳에서 만났기에, 어쩌면 윤희중이 인숙에게 느낀 것은 사랑이 아닌 동정심일지도 모른다.
 
만약 윤희중이 아내와 장인을 등질 정도로 하인숙을 사랑했고, 「무진기행」이 동화같은 이야기였다면 윤희중은 하인숙에게 아무런 통보 없이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사랑은 불륜의 형태로도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진기행」은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닐뿐더러 윤희중은 결국 하인숙에게 편지조차 전하지 못 한 체 부끄러움만 잔뜩 느끼고 떠나고 말았다.
 
끝내 윤희중은 무진을 떠났다. 자신과 닮아있던 하인숙을 버리고, 든든한 지주가 있는 타향으로 향했다. 만약 윤희중이 하인숙과 사랑의 도피를 행했더라도 그에게 있어 무진의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인숙은 자신과 닮아있고, 무진은 여전히 안개가 가득하고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고향은 어떤 곳일까. 그저 따뜻하고 돌아가고 싶은 곳인가? 아니면 즐길 것 하나 없는 시골인가? 아픈 기억을 억지로 묻어두고 항상 돌아가는 곳인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 윤희중을 보며 고향을 되씹었다.
 

참고문헌.
1. 로이스 타이슨. (2012). 비평이론의 모든 것: 신비평부터 퀴어비평까지 (윤동구, 역). 앨피. (원본 출판 2006년). p.50.
2. 로이스 타이슨. (2012). 비평이론의 모든 것: 신비평부터 퀴어비평까지 (윤동구, 역). 앨피. (원본 출판 2006년). p.50.
3. 김현. (1991). 현대 한국 문학의 이론/사회와 윤리 . 문학과지성사 . p.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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