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미술관 투어] 4. 제 14회 광주비엔날레
미술 시장에 대한 관심이 다방면에서 뜨겁습니다. 코로나 이후 미술 시장은 뜨겁다 못해 터질 것 같았고, 덕분에 작품을 구매하고자 시장에 진입하는 MZ세대 소장가들도 늘어났죠. 하지만 작품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전시 관람, 다양한 연계프로그램, 작가와의 소통 등 미술계 전반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고 하는 것이 좀 더 적절할 것 같네요.
단적인 예로 부모님 세대가 영화관 데이트를 주로 했다면 이 장소가 금의 MZ세대들에게는 미술관이 되어가는 경향이 있는데요. 덕분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비롯해 서울·경기의 주요 미술관은 사전 예매 없이 관람이 어려울 때도 있지요. 한편에서는 K-POP과 더불어 ‘BTS 리더 RM이 미술 애호가이기 때문에 여기에 동참하는 팬들이 늘어난 것이다.’ 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이유야 어찌됐든 저는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사람이 미술에 관심을 두고 이를 삶에 흡수시키는 과정이 참 보기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빡빡한 도시를 벗어나 나들이도 즐기고, 동시대 미술현장의 주요 이슈와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광주비엔날레 소식을 전해볼까 합니다.
1. 비엔날레? 아트 페어? 그게 그거 아냐? – 응, 아니야.
작년 한해 한국미술시장의 가장 큰 이슈는 프리즈 서울 (FRIEZE SEOUL)이었습니다. 닷새간의 장터에 매출 6500억 원을 기록하며 보는 이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는데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표현은 ‘장터’, ‘매출’입니다. 맞아요. 아트 페어는 말 그대로 미술품을 사고파는 장터입니다. 그래서 누가 무엇을, 얼마에 팔았는지, 또 누가, 왜 구매했는지가 가격을 설명하는 여려 이유가 되지요.
반면, 비엔날레는 2년에 한번 열리는 미술 전시회입니다. 비엔날레는 이탈리아어로 ‘2년마다'(bi+annual)라는 뜻으로 미술 분야에서 2년마다 열리는 국제미술전을 일컬어요. 눈치 채셨나요? 맞아요. 1895년 이탈리아에서 만든 행사예요. 베니스에서 매 2년마다 열리죠. 베니스 비엔날레는 규모와 내용 면에서 전 세계 미술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 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명성과 권위를 갖고 있어요. 그래서 아마 신문이나 뉴스에서 한번쯤 이 명칭을 들어본 기억이 있으실 거예요.
그럼 3년에 한번, 4년에 한번 열리는 행사도 있나? 네. 그럼요! 각각 트리엔날레, 콰드리엔날레라고 부르고,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와 로마 코드리엔날레가 대표적이예요. 심지어 5년에 한번 열리는 행사도 있습니다. 바로 카셀 도큐멘타가 그것이지요. 이들은 아트 페어와 더불어 현대미술의 흐름과 동향을 파악하는 주요 전시공간이자 정보 교환처가 되는 행사들입니다.
2. 한국에도 비엔날레가? – 어. 있다. 옛날부터 있었다.
한국에도 비엔날레가 있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이탈리아에 비하면 시작은 늦지만 한국도 1995년 광주에서 제 1회 광주비엔날레를 개최, 현재까지 2년에 한 번씩 행사를 진행해오고 있죠. 올해로 벌써 14회를 맞이했어요. 28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한국 미술뿐 아니라 세계 미술의 흐름과 동양을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동시대의 관점에서 풀어내오고 있죠. 광주비엔날레는 국내 미술 관련 비엔날레 중에는 부산비엔날레나 미디어시티서울과 함께 가장 인지도 높은 비엔날레예요. 하지만 국제적 인지도는 광주비엔날레가 훨씬 높죠. 왜나고요?
1990년대만 해도 베니스 비엔날레, 상파울로 비엔날레, 휘트니 비엔날레 정도가 유명 비엔날레의 전부였을 정도로 국제적인 미술행사는 많지 않았어요. 옆 나라 일본도 비엔날레 역사가 길지 않아요. 대표적인 요코하마 트리엔날레도 2001년에 시작됐는데요. 이런 상황 속 미술의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에, 그것도 광주라는 지역에 생긴 비엔날레는 화제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을 비롯해 정말 많은 사람이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고, 또 한국이 문화·예술 정보 교류의 중심이 되도록 많은 애를 썼는데요. 그 결과 오랜 시간 자신만의 성격을 갖추며, 동시대 미술의 이슈와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광주비엔날레는 한국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중요한 큰 행사입니다. 코로나로 움츠려들었던 모습에서 다시 기지개를 켜고 다시 제 모습을 선보이는 광주비엔날레. 올해는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요?
3.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제 14회 광주비엔날레는 지난 4월 7일 약 90여 일간의 대장정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7월 9일까지 열리는 행사는 어느덧 중반을 넘어섰는데요. 올해 전시 주제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입니다. 도가의 근본 사상을 담은 『도덕경』에서 차용해 이질성과 모순을 수용하는 물의 속성을 함축하는 제 14회 광주비엔날레는 기후위기, 코로나 19 등 과거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서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구를 공존, 연대, 그리고 돌봄의 장소로 상상해 볼 것을 제안합니다. 부드럽고 여리지만 조용히 스며드는 힘과 부드러움을 기반으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분열과 차이를 포용하는 방법을 모색하자는 것인데요.
이번 비엔날레는 테이트모던 수석큐레이터이자 현대 테이트 리서치 센터, 트랜스내셔널의 수장을 맡고 있는 이숙경 감독이 이끕니다. 그는 세계 각국에서 약 80여명의 작가를 불러들여 중심 주제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아래 4개의 소주제 – ‘은은한 광륜 (Luminous Halo)’, ‘조상의 목소리(Ancestral Voices)’, ‘일시적 주권(Transient Sovereignty)’, ‘행성의 시간들(Planetary Times)’ – 으로 연결해 다종다양한 스펙트럼의 밀도 높은 작품들을 전시로 풀어냈습니다.
그는 언론 간담회에서 “모든 정치·사회적 문제를 예술로 풀 수 없다. (중략) 물이 우리 강의 길을 바꾸고 바위를 녹이는 것처럼 작가도 세상사를 외면할 수 없지만, 뉴스를 보는 것 같은 전시를 바라지는 않았다.”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특히 마지막 말 – 뉴스를 보는 것 같은 전시를 바라지는 않았다는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요. 사건의 나열을 넘어 생각하고 해석하는 힘, 또 이를 바라보고 변화시키는 힘이 인간과 인간이 창조해낸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작가들이 참여했을까요? 광주비엔날레는 이렇게 큰 줄기로 소개합니다.
1>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하는 작가들 2> 다양한 세대의 한국 작가들 3> 전통을 다시 생각하는 작가들 4> 주목받아야할 여성 작가들 5> 광주의 역사를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들 |
어떤가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내 눈에 미처 보이지 않았던 세계와 그곳을 구성하는 이들의 특성, 또 이들이 만들어가는 흐름을 이정도로 한눈에 파악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몇몇 대표 작가를 언급하며 머리로 이들을 알아가기 보다는 기회가 닿는다면 직접 전시장에서 작품으로 먼저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게 말을 건 작품과 작가는 방문객의 숫자만큼 다 다를테니까요.
더불어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각국의 파빌리온 프로젝트도 주목해 볼만 합니다. 2018년 3개 기관의 참여로 시작된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올해 네덜란드·스위스·이스라엘 등 9개국이 참여, 지역 문화예술기관과 연결, 전시를 선보이는데요. 이건 베니스비엔날레가 각 국가에서 국가관을 운영하면서 자국 미술을 소개하듯,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해외 유수 문화예술 기관들이 자국 작가와 작품을 선보이면서 국가 간 교류 및 홍보의 장 및 지역성을 살릴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지요. 일례로 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네덜란드 파빌리온이, 이이남 스튜디오에서는 스위스 파빌리온이, 또 이강하 미술관에서는 캐나다 파빌리온이 꾸려져 각국의 문화·예술 정책과 이슈를 엿볼 수 있습니다.
초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6월 광주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언제든 뜨거워질 준비를 할 수 있는 곳. 사람과 예술이 숨 쉬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 사이로 나를 느끼고 발견할 수 있는 미술 현장의 한가운데에 서 보시길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