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알아보는 학교폭력 3

[영화로 알아보는 학교폭력]
[영화로 알아보는 학교폭력2]

 
– 돼지의 왕>1)을 중심으로 –

 

일러스트=토끼풀

 
1. ‘정종석’의 관점에서

 
1) ‘철이’의 자살 계획 이전

 
우선 종석의 관점은 전체적인 모습에서 볼 필요가 있다.
 
종석이 고양이를 칼로 찔러 죽였을 때, 그 이후로 자신이 찔러 죽인 고양이의 환영이 보였다. 종석이 고양이를 죽인 첫날 ‘이대로 끌려서 살고 싶지 않아. 하지만 철이의 말대로 그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들보다 더 악해지는 방법밖에 없을지 모른다.’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 죽은 고양이의 환영이 나타나 “결국에 니가 내린 결론이 그거냐? 악해져서 게네들을 이길 거라고? 한번 잘해봐!”라고 말하며 비웃는다.
 
철이가 퇴학당한 뒤 찬영은 종석을 불러내 철이가 너네들 친구였지만 퇴학 당한게 오히려 다행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종석은 발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찬영은 “내가 뭐 바꿀 수 있겠나? 야이 개시끼들아 하면서 저주라도 하면서 디져뿌든가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금마들 이길 방법 없다. (중략) 어차피 난중에 어른돼면 그런 아들이랑 만날라해도 만날 수도 없잖아.”라고 말한다. 종석은 그날 철이를 만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 어쩌면 찬영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게네들이 뭐라든 안 보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할 때 죽은 고양이가 나타나 “드디어 분수에 맞게 행동하네, 그래 잘 생각했다. 병신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살아야지 잘 생각했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찬영은 빈 깡통을 찬다.
 
빈 깡통이 굴러간 지점에서 자신의 누나가 전자기기 판매점에서 ‘워크맨’을 훔치다가 적발된 것을 보았다. 그러다 주인이 경찰에 신고하려던 사이에 누나는 워크맨을 들고 도망쳤고, 종석은 그 뒤를 쫓아갔다. 놀이터에서 종석은 누나에게 왜 그따위 것을 훔쳤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누나는“짜증나, 짜증난다고! 누구는 부모 잘 만나서 하고 싶은 거 다 즐기고 왜 나는 하고 싶은 거 다 참으면서 워크맨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모르구 남들 다 입는 옷도 못 입구 나중엔 어떻게 할 건데? 대학도 안 가구 남들 다 가는 대학도 못가구 그냥 대강 비슷하게 맞는 사람 만나서 시집이나 가서 애 낳구 그래서 그 애는 또 어떻게 자라게 할 건데? 그럴 바에는 왜 계속 애새끼는 낳아서 이러냐구. 씨발. 난 안 그럴 거야. 진짜 정 안되겠다 싶으면 그 개 같은 년들한테 침이나 뱉어주구 죽어버리든지.”라고 말할 때, 종석은 누나의 뺨을 때렸다.
 
그러자 누나는“병신새끼. 넌 평생 그렇게 살아라, 병신으로. 말 한마디도 못하구. 난 워크맨 훔쳐서라도 배워야겠어. 씨발, 이거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뭐가 얼마나 좋은 건지 배워야겠다구!”말하면서 먼저 돌아간다.
 
누나가 워크맨을 훔친 장면을 본 종석은 자신의 위치를 깨달았다. 자신은 ‘개’들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투쟁하거나 복종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종석은 투쟁을 선택했고, 자신들의 아지트로 돌아가 경민과 철이를 만난다.
 
마지막으로 철이가 공개 자살을 계획하고 같이 본드를 했을 때2) “항상 사랑받는 개새끼들하고 싸우는 거야!”라고 말할 때 죽은 고양이가 나타나 “뭐가 헤헤헤냐 병신들 그래 봐야 병신들이지 징그러운 괴물이 되는 거야 힘도 하나도 못 가지는 그런 징그러운 괴물 니들보다 약한 자를 괴롭히는 그런 징그러운 괴물! (중략) 이제 나도 무섭냐? 무서워 죽겠지? 괴물이 된다면서 진짜 괴물이 될까 봐 무섭지? 너 사실은 뭐가 되고 싶은 건데?”라고 말했지만, 이후 검은색 괴물이 된 철이에게 잡아 먹힌다.
 
죽은 고양이의 환영은 종석의 ‘초자아’다. 초자아의 역할은 원시적인 욕구를 억제하고 도덕 원칙 따라 행동할 수 있게 한다. 환영인 고양이는 종석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원시적 욕구로 미쳐 날뛰지 못하게 막는다. 하지만 철이에 의해 고양이(초자아)는 먹혀서 사라지고 종석의 본능(자아)만 남게 됐다.
 
그 이후로 강민과 패거리가 자신의 성기를 만지며 호모라고 놀릴 때 “니네 철이 퇴학시켰다고 철이 이겼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그걸 알아야 돼 철이는 니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호락호락한 애가 아니야 알아!”라고 말하며 투쟁하는 용기를 보였다.
 


 
1-2) 목 조를 때

 
경민의 목을 조를 때 종석의 관점에서 철이의 자살 전후를 보여줬다.3) 종석이 경민의 목을 조른 이유는 그 순간 ‘퇴행’했기 때문이다.
 
정신 분석학에서 ‘퇴행’은 “일시적으로 이전의 심리로 귀환한 것인데, 이는 상상을 뛰어넘는 다시 체험하는 과정이다. 이때 고통스럽거나 즐거웠던 경험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수반할 수 있다. 퇴행이 방어적인 이유는 현재 당면한 어려움을 대면하지 못하도록 생각을 다른데로 돌려버리기 때문이다.”4) 이처럼 목을 조른 이유는 종석이 경민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목을 조르면서 과거로 퇴행한 것이다.
 
이 개새끼야. 이 개 같은 새끼. 넌 처음부터 우리 편이 아니었어. 비겁자 새끼. 철이를 퇴학당하게 한 것도 다 너야 이 개새끼야.”라고 말할 때 과거의 종석은 철이가 경민에게 부탁하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눈의 초점이 사라지게 된다.
 
옥상에서 철이를 만난 종석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철이야? 계획은 그대로 잘되고 있는 거지?”라고 말했고, 철이는 “어? 경민이가 너한테 이야기 안 했냐? 계획 수정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목을 조르며 “수정은 없어! 수정은 없어! 이 개새끼야! 바꿨다가는, 그냥 아예 불이익일 뿐이라고. 그냥 더 비웃을 거야. 이 씨발. 그저 비웃을 거라고. 병신새끼들 꼴값 떤다고 그냥 비웃을 거라고. 이 씨발!
 

사진=네이버

 
다시 과거로 돌아와 철이는 종석에게 “야 중학교 퇴학당했다고 인생 쫑나냐? 뭐 간단히 쇼 좀 하고 그러면 퇴학 당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다시 복학시켜주겠지. 아휴 이제 엄마랑 이제 잘살아 볼 생각해야지 (중략) 복학되면 좀 조용히 살아야지 괜히 깝죽 돼 봐야 손해인 것 같다.
 
씨발, 씨발놈아! 너는 왕이 돼야 해. 철이 너는 왕이 돼야 된다고! 진짜야 진짜 괴물이라고!!”라고 말한다. 종석에게 철이는 왕이자 괴물이 돼야 한다. 그래서 옥상 난간에 올라간 철이를 밀어버린다.
 
이 개새끼들 니네들 다 죽었어 니네들 철이는 왕이 됐어! 니네들 저주하는 왕이 됐다고!!!
 
이는 ‘자살하는 시늉을 하면 원래 병신같은 우리를 병신으로밖에 안 볼 것이다.’라는 뜻이다. 종석은 병신이 되기 싫어 철이를 밀었다. 그리고 철이는 ‘개’들을 저주하는 영원한 상징적인 왕이자 괴물이 됐다.
 
회상 장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체제 순응을 해 속물적인 인간으로 바뀐 ‘철이’와 영원한 저주의 왕으로서 하나의 상징을 만들려는 ‘종석’을 볼 수 있다.
 
철이가 ‘공개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이유는 엄마와 잘살아 보고 싶은 희망 때문이다.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기에 ‘자살’을 복학을 위한 쇼로 생각했다. 하지만 종석에게 ‘공개자살’은 쇼가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경건한 의식이다. 왜냐하면, 경민에게는 철이의 심정을 이해해주고 이성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초자아’가 없었고, 자기중심적인 계획대로만 움직이는 ‘자아’(본능)만 남았기에 철이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철이를 밀어버렸다. 어떻게 보면 종석이 경민의 목을 조른 이유도 ‘자아’만 남았던 시기로 다시 회귀한 것이다.
 


 
2. 마치며

 
경민은 목을 졸리면서 “병신… 그래서, 그래서 뭐가 달라졌냐!”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철이를 왕으로 세워서 우리들의 인생이 뭐가 달라졌냐는 말이다. 경민은 사업을 완전히 말아먹고, 마누라도 죽었고, 남은 게 하나도 없었다. 종석은 대필작가로 간신히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비참히 사는데 철이를 왕으로 세울 필요가 애초에 없었다.
 
그리고 경민은 자신이 큰 빚을지고, 사업도 망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씨발! 도대체 뭐가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난 이제 끝이야! 난 이제 끝이라고!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때 이후로 걔들이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 그 시절을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몰라도 우리는 지금 그때를 절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거야.
 
그리고 종석은 옥상에서 내려왔다. 내려왔는데 경민이 옥상 난간에 올라가 “정종석 잘 봐라! 철이가 못한 거 내가 할게!”라고 말한 뒤 “종석아 넌 반드시 행복져해라”라고 혼잣말을 하며 자살한다.
 
어찌 보면 경민의 자살은 당연하다. 학창 시절 경민의 대타자는 ‘철이’였다. 그런데 대타자가 죽음으로서 충격에 빠지고 다른 대타자를 구하지 못했다. 대타자가 부재하니 당연히 자신의 존재를 보증해줄 수 있는 존재도 없다. 그래서 인생이 실패한 것이다.
 
그렇게 자기 삶을 잃는 것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 때문에 고통과 공포로 가득한 삶을 살아갔고 결국, 죽음만이 유일한 탈출구가 되는 상황에 이르게 돼 결국 자살에 이른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이명준’의 모습이 ‘경민’의 모습과 비슷하다. 이명준에게 남한과 북한이 대타자로 존재했지만, 결국 둘 다 선택하지 않고 자살했다. 이러한 모습은 대타자의 부재와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기에 자살했다. 그리고 경민도 이처럼 대타자의 부재했고, 자신의 삶이 극도의 두려움 때문에 고통과 공포로 가득해서 죽음만이 유일한 탈출구가 돼 자살했다.
 
영화 <돼지의 왕>을 통해 그 속에서 일어난 사건과 대사를 해석함으로써 인문학적 의미와 학교폭력의 영향을 알아보았다. 학교폭력은 큰 정신적 외상을 남긴다. 영화 속 인물 경민•종석•철이•찬영의 모습을 보면 결과적으로 권위에 굴복하는 모습을 하고 ‘나중에는 괜찮아지겠지’라는 자위행위를 하며 상처만 남은 학교생활을 보냈고, ‘김철’처럼 나서봤자 아무것도 바뀌지도 않았다.
 
나아지지도 바뀌지도 않는 ‘굴복’의 수레바퀴는 우리의 미래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이때 맛본 좌절의 경험이 나중에 어른이 돼서도 ‘난 안될 거야’와 같은 무의식에 억압된 상처와 두려움이 오래가게 되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허무의 늪에 빠진다.
 

 
필자도 학교폭력을 당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10년이면 일수로는 3,650일이고, 87,600시간이다. 일만 시간에 법칙에 따르면 8~9개의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기간이다.
 
이 정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학교폭력을 잊지 못한다. 잊을 수 없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그때가 좋았지~”라는 듯한 말을 할 것 같아서 너무 분하고 눈물이 난다. 하지만 사과조차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고, 일방적으로 끝난 일이 돼 버렸다.
 
‘그때 내가 진정으로 저항했다면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전혀 그랬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돼지들의 왕>의 인물들처럼 계급에 맞는 삶을 살아갔을 것이다.
 
예전에는 학교폭력이 일어났을 때 교사가 “야! 서로 싸운 거 가지고 뭐 잘했다고 입을 벌리고 있어!”,“결국, 니도 원인 제공을 했잖아? 그럼 니도 잘못한 거 아니야?”라는 말을 했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 할 말이지만, 10년 전에는 이렇게 학교폭력을 대처했다.
 
요즘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강제전학이나 퇴학과 같은 징계는 아직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징계는 “아무튼 징계했습니다!”와 같은 변명의 수단일까?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까? 아마 전자라고 생각된다.
 
가라타니 고진은 한 사립학교에 조언을 부탁받은 적이 있다. 그 일을 회상하며 “그곳은 교사만이 아니라 학부형도 기존의 학교제도를 부정하는 리버럴리스트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악질적인 이지메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처벌해야 할까요? 학교 측은 학생을 퇴학시키는 결정을 내렸는데, 그것은 이제까지 그들이 고수해온 원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5)라고 말했다. 이처럼 ‘자유’와 ‘진리’를 표방하는 학교에서 퇴학과 같은 징계는 자신들이 고수한 원칙을 부정하는 행위다.6)
 
“아이들은 결코 백지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를 아무리 자유롭고 평화주의적으로 키워도 공격성은 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물론 인식한다고 해서 사태가 바뀔지 어떨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잘못된 대처나 환멸이나 좌절은 없어질 것입니다.”7) 우리의 교육은 고진의 말처럼 아이들의 공격성을 인식하고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학교폭력의 위험성을 <돼지의 왕>에서 확인해볼 수 있었고, 학교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아이들을 어떻게 이끌고 나가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 참고자료
1) 연상호 (감독). (2011). 돼지의 왕[영화]. 돼지의 왕 제작위원회•STUDIO DADASHOW / 영화 대사는 큰따옴표 + 기울임체 사용.
2) 위 장면에서 철이처럼 직접 본드를 흡입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착시현상이 생김을 봐서 같이 본드를 흡입한 것으로 예상됨.
3) 이 장면에서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 가면서 나옴.
4) 로이스 타이슨. (2012). 비평이론의 모든 것: 신비평부터 퀴어비평까지 (윤동구, 역). 앨피. (원본 출판 2006년). p. 56.
5) 가라타니 고진. (2018). 윤리21(윤인로 & 조영일, 역). 도서출판 b.(원본 출판 2000년). pp. 53~54.
6) 규범적 준거 : ‘교육’이라는 것은 가치 있는 것을 그것에 헌신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포함한다(가치 기준). 이 준거에 의하면 우리가 학교에서 많은 지식을 전달하고 가르쳤지만 그것이 학생들의 삶을 가치 있는 방향으로 변화시키지 않았다면 그러한 활동은 교육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 이에 따라 교육의 장(場)인 학교에서 학생이 문제 있다는 이유로 ‘퇴학’이나 ‘정학’과 같은 처벌을 내린다면, 그것은 삶을 가치 있는 방향으로 변화시키지 못한 것이기에 ‘교육’이라 할 수 없다. ‘규범적 준거’ 출처 : 교육의 정의. (2011. 6. 17.). 네이버 지식백과.
7) 가라타니 고진. (2018). 앞의 책. p.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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