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알아보는 학교폭력 2

[영화로 알아보는 학교폭력]
 

– 돼지의 왕>1)을 중심으로 –
 

일러스트=토끼풀

 
1. 부르디외의 장(場)이론으로 본 ‘박찬영’

철이가 정학 받은 3일 후 ‘박찬영’이라는 전학생이 왔다. 원래 강민만 할 수 있었던 것을 찬영이 은연중 뺏어 버릴 정도로 ‘박찬영’은 머리가 좋고 적극적인 학생이었다. 수학 시간 중 어려운 문제를 풀어 선생에게 칭찬도 받고, 담임선생에게 전국 글쓰기 대회 권유도 받았다.
 
찬영의 모습을 본 경민은 방과 후 종석에게 “종석아 저기 찬영이 멋있더라 (중략) 강민이나 그쪽 애들도 찬영이는 함부로 못 건드리더라. 종석아! 저기 철이가 게네들을 이기려면 악해져야 한다는 말 틀린 것 같아.”라고 말했다. 경민은 찬영과 친해지길 원했고, 종석에게 친해지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종석을 화를 내며 집으로 갔다.
 
다음날 강민과 패거리는 찬영이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규칙을 깨트리는 것 같아 그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찬영은 오히려 기죽지 않고 “글쎄 내가 무슨 분위기를 망친지 모르겠네, 나중에 내가 어떻게 분위기를 망치고 있나 정리를 해서 얘기를 하면 한번 고쳐볼 게 그때까진 함부로 내 어깨 손대지 마라.”라고 했고, 그 모습을 본 경민은 점심시간에 자신의 고기반찬을 찬영에게 주며 친해지려 했다.

그런데 고기를 먹은 찬영을 배가 아프게 돼 화장실로 가게 됐다. 찬영이 변기 칸에서 볼일을 보던 중 강민과 패거리에게 놀림을 받고, 강민은 냄새를 덜 나게 해주겠다면서 고무대야에 자신의 오줌을 눠 볼일 보고 있는 찬영에게 퍼부었다. 오물을 맞은 찬영은 분노해 교실에서 커터칼을 쥐고 날뛰다가 석응에게 두들겨 맞고, 전국 글쓰기 대회를 강민에게 넘겼다. 그 이후로 찬영은 강민에게 굴복했고, 그들의 규칙에 순응했다.
 
이러한 모습은 ‘피에르 부르디외’의 장(場)내 투쟁을 잘 보여줬다. “모든 장은 투쟁의 공간이다. 이 투쟁은 기존의 ‘지배자’와 새롭게 진입하는 ‘신참자들’ 사이에서 장의 구조를 ‘보전’하거나 ‘전복’하기 위한 투쟁이다.”2)라고 말한 것처럼 찬영(신참자)과 강민과 패거리(기존의 지배자) 사이에 투쟁이 일어났다. 하지만 교실의 장은 전복되지 못했고, 보전됐다.
 
찬영은 학교의 계급 사회에 저항하려 했지만, 오히려 굴복했다. 왜냐하면, 기존의 학교체제는 찬영 혼자서 무너트릴 수 없는 구조다. 만약 찬영 손의 칼로 강민을 찔렀어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강민을 찔러 죽인다고 해도 새로운 사람이 강민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고, 찬영은 소년원에 갔을 것이다. 그래서 찬영은 저항을 포기하고 굴복했다.
 
이러한 모습을 본 경민은 그날 방과 후 “종석아! 같이 가!”라고 말하며 종석과 함께 귀가한다.
 


 
2. ‘돼지의 왕’이 된 김철

정학이 풀린 철이는 강민과 패거리가 경민을 또다시 괴롭히는 것을 보고 구타했으나, 강민의 패거리 중 한 명이 선생님을 데려와 철이는 매를 맞게 된다. 그러나 매를 맞고 돌아온 김철은 다시 강민을 구타했다. 그 순간 석응이 급습해 무서운 게 없냐고 철이를 발로 찼지만, 얼마못가 석응마저 역으로 패서 쓰러뜨린다.
 
그리고서 석응에게 “무서운 거, 나 무서운 거 있다. 그게 뭔지 아냐? 너네가 10년이나 20년이 지나 어른이 됐을 때 지금을 생각하면서 ”이야, 그 때 참 좋았었지 않냐? 그 때가 그립다.“ 이 딴소리를 할 게 너무 무서워. 석응아, 잘 들어. 아마 너한테 그런 미래는 없을 거다. 내가 나중에 이때를 생각하기도 싫을 만한 중학교 시절로 만들어 줄게. 어?”
 
이 대사를 듣고 엄청나게 공감했다. 학교폭력을 당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가해자가 10년 20년이 지나서 “그때 참 좋았지~”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 그때를 떠올리지 못하길 바란다. 가해자들이 불행하고, 떳떳하지 못하길 바라며, 자신의 행동을 평생 뉘우치길 바란다. 이러한 피해자들의 마음을 철이가 대변해줬다.
 
하지만 가해자의 뉘우침은 불가능하다. 뉘우침이 있으려면 피해자와 똑같은 상황에 부닥쳐봐야 알 수 있다. 그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가해자는 피해자를 생각하고 가해하지 않는다.
 
그렇게 철이는 돼지들의 왕이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돼지는 앞서 말한 ‘팔다리가 찢겨야 가치가 생기는 존재’ 즉 학교폭력을 당하거나 방관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돼지’를 계급 투쟁의 기미가 있는 하층민의 존재다. 하지만 ‘개’들에게 직접 나설 수 없는 존재다.
 
여태까지 종석, 경민은 계급 투쟁을 마음속으로만 했던 존재였고, 찬영은 투쟁에 실패했다. 반면에 철이는 ‘개’들을 구타해서 계급 투쟁을 통해 전복시킬 수 있는 기미를 보였고, 돼지들의 상상과 복수를 실재로 만들었다. 그래서 철이는 ‘돼지들의 왕’이 됐다.
 


 
3. 김철의 자살 전후

이후 철이가 활개 친다는 소문을 듣고 3학년 학생회장 후보와 패거리들이 보복하기 위해 찾아와 종석과 경민을 학교 끝나고 옥상으로 오라고 협박한다. 하필 이때 김철은 자기 아버지가 사망하자 시신 확인을 위해 온 경찰들, 어머니와 함께 시신을 확인하러 갔다.
 
한편 종석과 경민은 옥상에서 마구 폭행당하다가 그 와중에 경민이 사실 김철이 자신들을 선동했고 자신들은 잘못 없다며 철이를 배신한다. 이후 경민에 의해 철이가 불려와 혼자 패거리들과 싸우다가 흉기를 사용한다. 하필 이때 찬영이 데리고 온 선생에게 들켜 1학년 1학기가 지나기도 전에 철이는 퇴학당하게 된다.
 
퇴학당한 철이는 자신의 아지트에서 경민과 종석에게 ‘국민 조회’를 할 때 자신이 투신자살하여 평생 패거리들을 저주하며 이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행복하지 못한 흑역사 과거로 남게 해서 그들이 이 일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없도록 계획을 밝힌다.
 
나 공개 자살할 거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을 영원히 저주하면서 자살할 거야. 그럼 아마 그들도 이 일을 웃으면서 얘기할 순 없을걸?” 어른이 된 경민은 이를 회상하며 종석에게 “‘공개 자살’ 지금까지 내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 같아”라고 말하며 웃었다.
 
철이가 계획한 공개 자살은 일반적인 복수와 전혀 다른 ‘복수’다. 보통 복수를 떠올리면 복수의 대상은 해를 입거나 무릎 꿇고, 복수한 사람은 이를 통해 대상의 위에 올라가 있는 형태이다. 간단히 말하면 대상을 아프게 만들고, 아프게 만든 결과로 복수를 완성 시킬 수 있다.
 
하지만 작품 속 세상은 돼지의 편이 아니라 ‘개’의 편이다. 법과 같이 사회를 보호하는 시스템은 돼지들의 편이 아니다. 일반적인 복수를 할 수 없다. 그래서 철이는 ‘저주’라는 복수를 계획했다. 이런 자살을 생각한 철이가 경민에게는 아름다웠다.
 
그들은 고깃집에서 밥과 술을 마신 뒤 자신들의 아지트를 갔는데 이미 없어진 상태라서 아쉬워했다. 경민은 종석에게 여기까지 온 김에 자신들이 다녔던 학교로 가자고 말했고, 그들은 중학교 옥상으로 올라갔다.
 

사진=네이버

 


 
3-1 ‘김철’의 관점에서3)

철이의 자살 전후 관점은 경민과 경민의 아버지가 대화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경민의 아버지는 건전하지 못한 노래방의 사장이다. 경민이 학교에서 패거리에게 괴롭힘당한 이유도 아버지가 가라오케 사장이기 때문이다.
 
철이의 엄마는 그 노래방에서 일하는 도우미다. 철이와 집에서 죽을까 말까 하는 다툼을 벌인 뒤 자신의 언니에게 “요즘 철이 이상하다”, “걔까지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며” 울며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근무시간에 가게 전화기를 사용해 사장에게 얻어맞았다.
 
엄마와 함께 죽으려고 했던 철이는 칼을 들고 노래방으로 갔다. 그곳에서 경민의 아버지한테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보고 다 죽이려고 했지만, 엄마의 통화 내용을 들은 데다가 때마침 경민이 나타나 칼을 버리고 도망갔다.
 
다음 날 국민 조회 시간, 학생들이 모인 운동장에서 경민은 불안해하며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그리고 경민의 시선은 옥상을 향했다. 그곳에는 철이가 서 있었고, 철이는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경민이 철이가 자살한 과거 이야기를 중학교 옥상에서 하자 종석은 그 이후로 우리는 말한 적도 없고, 졸업 이후 만나려고 한 적도 없는데 갑자기 왜 만나자고 했냐고 발끈하며 물었다. 그러자 경민은 “아까 얘기했잖아 철이 얘기하고 싶었다고 (중략) 아니 아직 철이 얘기 하지도 않았어… 지금부터가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야.”라고 말하며 경민의 관점에서 철이의 자살 전후를 보였다.
 


 
3-2 ‘황경민’의 관점에서

노래방에서 일이 있던 다음날 경민은 학교에 갔다. 그날 경민은 학교에 갔을 때, 왠지 모르는 설렘이 생겼고, 발이 자동으로 학교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교실에 앉은 경민은 ‘국민 조회’ 시간이 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메스꺼움과 흥분감이 자신을 덮쳤다. 그러다가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자는 생각이 들어 걷는 중 철이를 만났다.
 
철이는 경민에게 “경민아, 작전을 좀 바꿔야겠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아까 올라갔다 내려왔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씨발 그냥 자살하는 척만 할 테니까 니가 소리 좀 질러줘라. (중략) 그 정도 해줄 수 있지? 어? 어?”라고 말하며 상당히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경민은 이를 떠올리며 옥상에서 크게 웃었다.
 
이는 계급의 전위를 보여줬다. 경민은 학교에서 돼지이고, 철이는 돼지의 왕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회는 학교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경민은 노래방 사장의 아들이었고, 철이는 노래방 도우미의 아들이었다. 철이가 칼을 들고 경민과 마주했을 때는 서로가 자신의 현실을 확인한 순간이다. 그 순간 그들의 계급은 바뀌었다.
 
이러한 모습은 상당히 근대적이다. 학교에서는 그 누구보다 강한 ‘철이’지만 그는 노동자의 아들이다. 그리고 경민이는 자본가의 아들이다. 근대의 세계에서 노동자는 자본가를 넘어설 수 없다. 그래서 노동자의 아들인 철이는 자본가 아들인 경민에게 부탁한다.
 
철이의 그림자가 옥상에 있었을 때 경민은 소리를 질러야 한다고 고민하던 찰나에 철이가 옥상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경민은 “그때 진짜 괴물을 봤어”라고 말했다.
 
경민은 “정종석 너도 봤냐? 그때 어디있었냐? 철이 니가 죽였냐? 괴물…”이라 말한다. 그 뒤 종석은 갑자기 욕을 하며 경민의 목을 조른다.
 


 
※ 참고자료
1) 연상호 (감독). (2011). 돼지의 왕[영화]. 돼지의 왕 제작위원회•STUDIO DADASHOW / 영화 대사는 큰따옴표 + 기울임체 사용.
2) 김동일. (2016). <피에르 부르디외>. 커뮤니케이션북스. p. 22.
3) 김철에 대한 해석은 다음 글에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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