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뜰」

일러스트=토끼풀

 
처음 「유년의 뜰」을 읽었을 때는 노랑눈이가 케이크를 게워내는 장면만 머릿속에 남았었다. 노랑눈이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하는 의문만 가진 채 책을 덮었었고, 인터넷으로 「유년의 뜰」에 대해 조사하기 전까지는 책을 다시 펴지 않았다. 조사를 통해 뒤늦게나마 「유년의 뜰」이 피난살이를 하는 한 가족의 내막을 그려냈다는 걸 알아냈고,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가족들의 행동과 말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유년의 뜰」을 조사하기 이전에는 오정희에 대해서도 조사를 했었다. 지인을 통해 오정희의 미문(美文)과 표현력을 들은 바 있지만, 내 부족한 독해력으론 그녀의 표현력을 느끼는 게 힘들었다. 결국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유년의 뜰」을 살펴보지만, 언젠가 오정희의 표현력을 스스로 깨우칠 수 있길 바란다.
 


 
1. 오빠

“홧 아유 두잉?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앞의 책, 9p.) 「유년의 뜰」의 첫 문장은 화장하는 어머니의 곁에서 영어책을 읽는 오빠의 말로 시작한다. 그렇게 열심히 영어책을 읽던 오빠는 어머니가 밖을 나서면 영어책을 덮고 기지개를 켠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오빠가 화장하는 어머니의 곁에서 영어책을 읽는 이유는, 군대에 끌려간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막 넓게 퍼지기 시작한 완강한 어깨 위로 아직 연약하고 섬세한 목과 작은 머리통이 불균형하고 어색하게 얹혀 있었으나 이미 청년으로서의 단단한 골격이 잡힌 몸이었다.”(앞의 책, 14p.) 이 문장을 통해 어엿한 남자가 되어가는 오빠를 엿볼수 있다. 오빠는 자리에 없는 아버지를 제외하고서 집안의 유일한 ‘남자’이기 때문에 한 집안의 ‘남자’로서 해야 할 일을 한다. 숱한 경고에도 밤길을 나서는 언니의 코피를 터트리고, 밥집에 나간 어머니의 잠자리를 더듬는 게 그 일이다.
 
“오빠는 자신이 가장임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어 언제나 침울하고 긴장으로 부자연스럽게 굳어있었다. 그 긴장으로 억눌려져 자라지 못하는 욕망, 자라지 못하는 슬픔, 분노 따위는 엉뚱한 잔인성이나 폭력의 형태로 나타났다.”(앞의 책, 30p.) 오빠에 대한 모습은 이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또한, 밤의 저잣거리로 나온 오빠의 모습에서 ‘자라지 못하는 욕망’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전봇대에 비스듬히 기댄 자세로 서서 이 모든 거리의 풍경을 경멸하듯 바라보며 (중략) 다만 외롭게 혀를 떨며 하모니카를 불었다.”(앞의 책, 28p.) 오빠는 나이 찬 처녀들을 희롱하며 휘파람을 부는 사내아이들과 동떨어져 하모니카를 분다.
 
또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청소년기의 특성상, 집안에 아버지가 계셨다면 오빠 또한 하모니카가 아닌 휘파람을 부는 사내아이가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집안에는 아버지의 존재가 없고,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오빠는 그들과 어울리지 않고 ‘외롭게’ 하모니카를 분다. 하모니카는 오빠의 외로운 마음을 대변하는 동시에 그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
 
억척스럽고 고집 있게 아버지의 구실을 하던 오빠가 달라진 건 ‘서분이’의 등장 이후다. 서분이는 스스럼없이 방을 드나들면서 오빠 같은 사람을 여럿 미국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서분이의 말에 오빠는 “아임 낫 라이어. 아임 어니스트 보이.”(앞의 책, 61p.)등, 새로 익힌 문장들을 열심히 외운다. 진정한 ‘아버지’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기대에 가득 찬 오빠였지만, 그는 끝내 좌절했다. 시간이 흘러도 서분이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빠는 다시 언니를 때렸지만, 언니는 고개를 빳빳이 들며 말했다. “난 오빠가 그 계집애 하고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그 더러운 짓을 안단 말야.”(앞의 책, 65p.)
 
오빠는 더 이상 하모니카를 불지 않았다. 서분이와 한 ‘더러운 짓’에 대한 자괴감 때문인지, 미국으로 가기 위해 혀를 굴린 시간이 무의미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인지. 스스로 아버지의 역할을 내려놓은 오빠는 멋지게 휘파람을 부는 사내아이가 되었다.
 


 

소설가 오정희. 사진=파일:오정희.jpg – Wikimedia Commons

 
2. 노랑눈이

“다른 애들하곤 달라요. 멍청하고 걸귀가 들렸는지 노상 먹을 생각밖엔 없어요.”(앞의 책, 36p.) 어머니가 노랑눈이를 보는 시선이다. 소설의 화자인 ‘나’를 노랑눈이라고 부르는 할머니는 어머니가 노랑눈이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고 있을 때 아픈 막내를 걱정한다. 작중 노랑눈이는 그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노랑눈이가 자신이 낳은 애 같지 않다며 중얼거린다. 하지만 어머니의 우려가 노랑눈이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노랑눈이는 어머니의 지갑에 대범히 손을 대고, 방에 갇힌 부네를 생각하며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오빠가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 하는 인물이라면, 노랑눈이는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끊임없이 그리워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발사에게서 맡아지던 친숙한 냄새,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머리에서 풍기던 기름 냄새였다.”(앞의 책, 19p.) 동네에 이발사가 다녀간 뒤, 노랑눈이는 친숙한 냄새를 통해 아버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아버지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나마 기억에 남은 건 땀으로 젖은 그의 등허리나, 머리를 잡으면 손에 묻어나는 찐득한 머릿기름 정도이다. 노랑눈이는 아버지와의 정다운 기억을 회상하면서도, 그가 변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노랑눈이는 가족들과 함께 할머니가 잡아 온 ‘임자 없는 닭’을 맛있게 먹어 치웠고, 어머니의 지갑에서 더 큰 돈을 훔치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변하는 가족과 자신을 보면서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아버지는 더욱이나 달라졌을거라고 확신한다.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는 오빠와 어머니의 사이는 노랑눈이와 가족들에게 큰 불안을 안겨준다. 오빠가 언니를 때림으로써 분노와 불안을 해소한다면, 노랑눈이는 무언가를 먹는 행위로 불안을 해소한다. 밥그릇에 붙은 밥풀을 뜯어 먹고, 안집 감나무에서 떨어진 감을 주워 먹고, 질책을 면하기 위해 쥐가 파먹은 것처럼 냄비뚜껑을 주방 바닥에 떨어뜨려 놓고 고구마를 꺼내 먹는다. “나는 소리 나지 않게 고구마를 조금씩 떼어 단맛을 혀로 녹이며 끈끈한 손가락을 뿌리까지 찬찬히 빨았다.”(앞의 책, 37p.) 이 문장을 통해 노랑눈이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음식을 먹는지도 알 수 있다.
 
노랑눈이는 해소되지 않는 심리적 불안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목에 음식물이 넘어가는 느낌’으로 덮고자 한다. 끊임없는 불안함과 그리움은 계속되는 식탐으로 번졌고,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지갑에서 꺼내는 돈의 액수도 더 늘어난다. 다만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음식에 대한 반응이 달라진다.
 
교장 선생님을 통해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한 노랑눈이는, 곧장 아버지에게 뛰어가는 언니와 달리 교장실에 있던 케이크에 눈독을 들인다. 교장 선생님이 방을 비운 틈에 케이크를 먹고, 변소로 달려가 케이크를 모두 게워낸다. 음식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노랑눈이가 왜 케이크는 게워냈을까?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빗나가 새로운 불안감이 생겼기 때문일까?
 
“어두운 똥통 속으로 어디선가 한 줄기 햇빛이 스며들고 눈물이 어려 어룽어룽 퍼져 보이는 눈길에 부옇게 끓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무엇인가 빛 속에서 소리치며 일제히 끓어오르고 있었다.”(앞의 책, 73p.) 이 문장으로 「유년의 뜰」은 끝이 난다. 이 ‘부옇게 끓어오르는 것’의 정체를 알아낸다면 노랑눈이가 케이크를 게워낸 이유를 내 머리로 생각해 볼 수 있을까?
 
“다시 읽어보면서 지금이라면 조금 달리 쓸 것 같은 내용과 표현들이 더러 짚어지기는 했으나 대체로 그때의 그 자리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이미 지나온 길이고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최선을, 나 자신을 인정하자는 생각이었다.”(앞의 책, 322~323p.)
 
책의 가장 뒤편에 실려있는 작가의 말이다. 이 문장을 곱씹을수록 오정희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문장을 얼마나 많이 고쳐 썼을지 궁금할 뿐이다. 나에게는 ‘완성’으로 보이는 문장이 그녀의 눈에는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니. 새삼 대단함을 느낀다. 오정희의 문장을 곱씹어 볼수록 한참 부족한 나는 그녀의 앞에서 자꾸 고개를 숙이게 된다.
 


 
참고문헌
1) 오정희. (2017). 유년의 뜰.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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