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미술관 투어] 5. 5개의 집과 30개의 문 展

일러스트=토끼풀

 
현대미술은 어렵습니다. 아니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림 진짜 잘 그렸다! 사진 같아!”라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한 눈에 파악 가능한 감상법이 아닌 무엇을, 왜 그렸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만 알 수 있는 작품들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미술관 전시 해설 시간에 맞춰 유독 사람들이 많아지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습니다. 조용히 전문해설사의 설명에 집중하다보면 그림에 대한 이해가 좀 더 쉬워지기 때문이죠. 여기에 더해 작품에 가까이 가서 직접 만져볼 수 있다면? 당연히 그 이해의 폭이 더 크고 넓어질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일까요? 9일 폐막을 앞두고 있는 제 14회 광주비엔날레 화제의 작품 중 하나는 엄정순 작가의 ‘코 없는 코끼리’입니다. 작가는 시각장애 학생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 인도네시아,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처음으로 들어온 코끼리의 수난 여정을 따라가는 작업을 했는데요. 그 연장선으로 선보인 설치 작품 – 코 없는 코끼리 –를 관객들에게 직접 만져보고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했죠.

시각장애 학생들이 청각과 촉각, 후각으로 느낀 코끼리를 표현한 조형물을 재해석하고 실제 코끼리 크기로 대형화한 설치는 세상을 인지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제안한 것입니다. 이렇듯 몸에 닿는 감각과 경험은 단순한 시각 정보를 넘어 우리의 인지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똑같은 주제라 할지라도 어린이를 위한 전시에는 이런 특징들이 극대화되어 나타나는데요. 그래서인지 ‘요즘 애들은 미술관에서 논다‘는 말이 나옵니다. 어린이와 함께는 물론, 성인들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할 전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의 대표 개념미술가 안규철 작가의 어린이를 위한 전시 ‘5개의 집과 30개의 문’입니다. 우리 동네 미술관 투어 광주로 떠나볼까요.
 


 
광주를 대표하는 문화기관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sia Culture Center, 이하 ACC)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경 / 이미지=국립아시아문화전당

 
2015년 11월 광주에 개관한 ACC는 아시아 과거-현재의 문화예술과 혁신적인 아이디어, 신념이 만나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결과물을 생산해내는 국제적인 예술기관이자 문화 교류기관입니다. 이곳은 5·18 민주화운동(May 18 Democratic Movement)의 인권과 평화의 의미를 예술적으로 승화한다는 배경에서 출발했어요. 그래서 옛 전라남도 도청 자리에 위치하고 있죠.

ACC는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으로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의 참여자들이 연구하고 창작하는 과정에 있어 경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화합하고 소통하는 장이 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민주평화교류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어린이문화원의 5개원이 1년 내내 다양한 프로그램 – 전시, 공연 등등 –을 펼치고 있는데요.

이중 오늘 소개할 전시 ‘5개의 집과 30개의 문’는 어린이 문화원에서 열리고 있어요. 어린이 문화원이라는 이름이 암시하듯 이곳은 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소재로 다양한 놀이와 체험·예술적 창작활동을 통해 어린이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어린이 문화발전소입니다. 그렇기에 더욱더 전시는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놀이하듯이’ 현대미술을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기획이 되었죠.
 


5개의 집과 30개의 문 전시 포스터 / 이미지=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무심코 연 문이 새로운 세상을 이끄는 통로라면?

상상하는 작가 안규철의 기획전시 <5개의 집과 30개의 문>은 일상의 “문”에 상상력이 더해져 특색 있는 “문”이 되고 그 “문” 너머 의외의 공간을 경험하는 예술작품 체험전시 입니다. 무심코 연 평범한 문이 새로운 공간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되는 것이죠.

여러 개의 한옥 문으로 연출된 입구를 지나 의외의 공간을 만나며 친숙하고 평범한 문과는 또 다른 색다른 문과 공간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아이들은 이 공간 안에서 마음껏 문을 열고 닫으며 새로운 공간들을 탐색할 수 있어요.
 

< 5개의 집과 30개의 문 > 2021, 복합재료, 설치, 가변크기 © 서울상상나라 / 이미지=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을 열면 구불구불한 곡선과 격자무늬로 착시를 일으키는 집을 만나게 됩니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가득한 초현실적인 집을 나오고, 마치 수목원에 소풍 온 듯 식물들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 집을 지나면 다채로운 거울에 비친 낯선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집을 하나씩 통과하게 되는데요.

이렇게 놀이하듯 예술작품을 체험하고, 평범한 물건인 ‘문’을 새로운 관점에서 경험해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이끄는 전시는 아이들뿐 아니라 함께 온 보호자들도 즐기며 참여할 수 있어요. 또한 전시장 한 벽면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커다란 칠판으로 변신, 관람객은 마치 작가가 된 것 마냥 문 뒤에서 숨겨진 공간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릴 수도 있죠.
 

< 5개의 집과 30개의 문 > 2021, 복합재료, 설치, 가변크기 © 서울상상나라 / 이미지=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이뿐이 아닙니다. ‘집’과 ‘문’이라는 단순한 사물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 전시장에는 작가의 생각을 좀 더 자세히 엿볼 수 있는 아카이브 섹션도 마련해두었는데요. 안규철 작가는 작품이 나오기까지 고민한 흔적을 드로잉과 모형, 글을 통해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무더위와 장마로 변덕스러운 날씨를 보내고 있는 요즘 일상에선 경험할 수 없었던 특별한 풍경들을 담아낸 전시장의 집들을 통해 평범한 물건을 작가처럼 색다른 관점에서 관찰하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놀이와 체험 중심의 어린이 전시에 일상의 사물을 새롭게 해석하는 안규철 작가의 설치작품은 현대미술이 전혀 어렵지 않음을, 우리의 삶 곳곳에 놓여 있는 것임을 이야기 합니다. 전시는 2023년 8월 27일까지.
 


 
안규철 작가 (b.1955)는

문, 집, 가방 등과 같은 일상의 사물을 다양한 시각으로 깊이 있게 관찰하고, 색다르게 생각하는 미술가입니다. 사유와 성찰을 통해 미술의 경계와 이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문제인식을 제기해 생활 속에서 작품의 주제를 찾고 작업하며, 글과 스케치를 즐깁니다. 작가는 서울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했고,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대학에서 유학했습니다.

독일에서 돌아온 90년대 중반부터 미술창작과 글쓰기를 병행하며 개념미술과 설치미술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펼쳐왔고, 글과 드로잉을 엮어 『그 남자의 가방』, 『아홉 마리 금붕어와 먼 곳의 물』, 『사물의 뒷모습』 등의 책을 펴냈습니다. 또한 20여 년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우리나라 미술교육의 변화를 이끈 대표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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