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채식주의자>에 관한 소고 1 -불쾌함의 미학-

일러스트=강동현

 
한강의 <채식주의자>1)는 3편의 단편 소설이 하나로 묶어진 책이다. 원래는 다 따로 나눠진 작품이다. <채식주의자>는 2004년도에 ‘창작과 비평’에서 수록된 작품이고, <몽고반점>은 2004년 ‘문학과 사회’에서 수록됐고, <나무 불꽃>은 2005년 ‘문학 판’에 수록된 작품이다.
 
<채식주의자>는 2007년 10월에 세상에 나왔다. 처음 나왔을 때도 엄청 핫한 책으로 기억한다. 시간이 흘러 이 책은 2016년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더 핫해진 책이 됐다.

<채식주의자>를 읽게 된 이유는 개인적으로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에서 읽어보라는 ‘지명’을 당했기 때문이다. 사실 예전부터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채식주의자>보다 다른 책들에 정신이 팔려 보지 못했다.―필자의 ‘한국 현대 작가’에 대한 기피증세인 것 같다. 요즘 찍어내는 작품이며, 주제며, 문단의 태도나 사건 사고를 보았을 때 개인적으로 ‘2000년대 이후 소설’보다 ‘2000년대 이전 소설’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런저런 편견을 가진 채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작품에 관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엄청 난해하다. 한강 작가가 대학원까지 나온 지식인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엄청 난해하다. 여태까지 읽은 지식인 소설이나 관념 소설―이문열, 조세희, 이청준의 작품―과 다른 지식인 or 관념 소설이었다.

채식주의자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주인공 ‘영혜’를 두고 ‘영혜’의 남편, ‘영혜’의 형부, ‘영혜’의 언니, 제삼자의 시각에서 서술된 소설이다. 먼저 첫 번째 장에서는 ‘영혜’의 남편의 시각에서 ‘영혜’를 바라본다. 그뿐만 아니라 ‘영혜’의 꿈 이야기도 나온다. 이때 ‘영혜’는 꿈을 꿨다는 이유로 다음 날부터 고기를 먹지 않는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몇몇 있는데. ① 어릴적 ‘영혜’를 물었던 개가 끔찍한 죽임을 당한 이야기, ② 채식주의자에 관해서 총 두 가지이다.
 


 

한강 著 <채식주의자> 표지

 
① 어릴 적 ‘영혜’를 물었던 개가 끔찍한 죽임을 당한 이야기

꿈의 장면에서 어릴 적 ‘영혜’의 다리를 물었던 흰 개가 있었는데, 그 개는 영혜를 물기 전 영리하다는 소리를 들은 개였다. 하지만 영혜를 물고 나서 그녀의 아버지가 오토바이 뒤편에 개를 묶어놓고 동네를 다섯 바퀴 돌았다. 그리고 영혜의 상처를 나기 위해선 죽은 개를 먹어야 하는데, 이때를 회상할 때 영혜는 들깨가 누린내를 잡지 못했고,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자신을 본 눈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영혜의 ‘비육류 선언’은 그녀의 과거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어릴 적 이런 식의 일도 있었지만, ‘비육류 선언’ 전날 고기를 썰다가 남편이 서두르라는 말에 서두르게 해 영혜가 손가락에 베였는데, 영혜의 손가락 베임보다 불고기 속 칼 조각이 더 중요했던 장면과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p. 43) 장면을 보았을 때 영혜의 비육류 선언으로 그녀의 말과 행동은 ‘해치지 않음’을 중심으로 둔다. 영혜가 해치지 않음을 추구한 이유는 그녀의 여태까지 삶이 해쳐졌기에 자신이라도 해치지 않고 싶어 하는 ‘해침’에 대한 반발 발현된 것이다.

‘영혜’가 첫 장에서는 채소라도 먹지만 마지막 장 ‘나무 불꽃’에서는 물 말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더 이상 상처받고 상처 주는 사람이 되기 싫다는 ‘영혜’의 발악이 아닐까 싶다. 그녀가 ‘비육류 선언’을 했을 때 육류류를 보면 거부감을 느낀 이유 또한 생명이 해쳐진 상태였기에 거부했고, 채소만 먹었다.

사실 이 점에서 ‘채소는 생명이 아닌가?’라는 궁금증이 생겼다.―물론 나중 돼서는 물만 먹지만― 그리고 자신의 몸을 해치는 것은 결론적으로 어떤 생명을 해치는 행위이다.
 


 
※ 참고자료
1) 한강. (2007). <채식주의자>.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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