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미술관 투어] 6. 홍나겸 개인전 [W심포니]
폭우로 인해 많은 사람이 다치고 슬퍼했던 7월이 지나갔습니다. 깨끗한 하늘과 무더위는 언제 비가 왔었는지도 모르게 완전 연소를 위한 뜨거움을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수마(水魔)는 자신이 할퀴고 간 자리에 그 흔적을 남겼고, 어리석은 인간은 자연의 야생성과 이를 품은 위대함 앞에서 오만과 반성을 반복합니다. 우리 동네 미술관 투어 여섯 번째 시간, 오늘 소개할 미술관은 한국의 온갖 자연을 품은 곳, 바로 강원도에 위치한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입니다. 더불어 현재 서울시청 시민청 소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강원도 출신의 홍나겸 작가님의 미디어 아트 전시 [W심포니]도 함께 이야기해볼게요.
동해 바다 긴 해안선, 산 좋고 물 맑은 아름다운 자연경치들. 사람들은 이런 강원도를 가리켜 자연이 다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강원도는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원삼아 래프팅, 패러글라이딩, 라이딩, 스키 등 계절마다 자연을 누리며 각종 레저스포츠를 누릴 수 있어요. 해돋이 명소로 손꼽히는 정동진, 호수를 둘러싼 자전거 길을 따라 느긋하게 걸을 수 춘천도 빼놓을 수 없죠. 반면 예술은 어떨까요.
– 강원도에 위치한 한국 국민화가의 미술관 : 양구군립 박수근 미술관
강원도는 한국의 국민화가라 불리는 박수근(1914-1965)의 고향이 있는 곳입니다. 1914년 강원도 양구 정림리에서 태어난 박수근은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 밖에 다닐 수 없었는데요. 보통학교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12세때 밀레의 <만종>을 보고 깊은 감동을 느껴 그와 같은 화가가 되기 위해 기도했다고해요. 6.25동란 중 월남한 그는 부두 노동자, 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 그려주는 일 따위로 생계를 유지했죠. 이 때 미군 PX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이 훗날 소설가로 잘 알려진 ‘박완서’입니다.
그는 자신의 소설 「나목」에 박수근을 모델로 초상화 가게에서 일하는 젊은 작가의 예술과 삶을 담아냈죠. 박수근의 삶은 겨울을 견디고 봄을 기다리는 나목과 닮았습니다. 절구질하는 여인,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 길가의 행상들, 아기를 업은 소녀, 할아버지와 손자 그리고 김장철 마른 가지의 고목들까지 우리 삶 곳곳에 함께하는 작고 평범한 대상을 따듯한 시선으로 담아냈기 때문인데요. 그는 자신의 작업세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 박완서, 나목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어린 아이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박수근의 이런 마음은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서민들의 무던한 일상을 덤덤하게 담아내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거르고 또 걸러 화폭에 담긴 대상을 철저히 객체화 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지요. 이런 그의 작업은 완전한 평면에 펼쳐진 단단한 바위기ㅏ 온기를 머금고 있는 모습을 취하고 있어요.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은 2002년 화가 박수근선생의 생가 터인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마을에 개관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고 있는 박수근의 예술혼과 작품세계를 연구•수집•전시•교육하는 활동을 위시하여 창작스튜디오•박수근미술상•전국사생대회 등 다양한 콘텐츠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개관 후 약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해외작가협력망구축과 국제교류전시를 필두로 한국의 대표화가 박수근선생의 작품세계를 해외미술계에 알리는 일과 국내•외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학술·연구 활동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박수근 미술관에서는 무려 4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어요. 바료 1) 화가 박수근이 그리고 부인 김복순이 쓴 [고구려 이야기], 2) 제 7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전 <차기율>, 3) 2023 양구군립박수근 미술관 소장품 기획전 : 나무 아래, 그리고 4) 실감형 콘텐츠 체험존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 인데요. 뜨거운 여름, 도시의 소음을 뒤로하고 미술관에서 조용히 작품과 조우하는 시간, 나와의 만남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 보다 더 좋은 선택지가 있을까요. 전시도 공간도 모두 추천해봅니다.
– 강원도에서 자연의 언어를 배웠습니다. : 서울시청 시민청 소리갤러리 홍나겸 개인전 [W심포니]
강원도 출신의 홍나겸 작가는 영상과 사운드를 다루는 미디어 아티스트입니다. 그는 방송작가부터 농사, 커피, 그리고 영상작업가지 정말 다양한 경험을 자신의 작업 밑천으로 삼고 있는데요. 얼핏 상관없어 보이는 이들을 서로 엮고 꿰뚫는 작가의 메시지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 연대의 힘]입니다.
작가는 서울 한강을 주제로 1) 물은 춤, 2) 물은 빛, 3) 물은 화음이라는 총 3개의 주제를 각각의 영상과 사운드 작품으로 풀어냈습니다. 네. 맞아요. 전시장에 작품은 단 3점 뿐 입니다. 너무 작게 느껴지시나요? 그러나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장장 3개월이라는 시간을 강릉과 서울을 오가며 물의 빛과 소리를 채집했는데요.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사용가능한 영상과 사운드는 단 5분정도밖에 되지 안 된다는 점입니다. 서울 곳곳에서 우리가 무심결에 지나치는 소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를 ‘신이 선물한 시간’이라며, “우리가 소리를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다고 상상해보세요. 과연 견딜 수 있을까요?” 라고 질문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보는’ 한강에서, ‘듣는’ 한강, 그리고 ‘느끼는’ 한강으로 우리를 안내하는데요. 작가는 작품을 통해 거친, 야생의 자연 저 깊은 곳까지 관객을 침잠시킵니다. 그 침잠의 과정에는 롱테이크 기법으로 촬영한 작가의 호흡이 담겨있어요. 즉, 작가는 깊고 긴 호흡을 통해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와 함께하는 이를 위해 존재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고 연대하는 것이지 그 누구도 상대를 파괴하고 욕망의 도구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을 단단하고 조용하게 전달합니다.
이런 그의 조용한 단단함은 그가 강원도에서 배운 ‘자연의 언어’에서 출발해요.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천혜의 자연과 이에 기대어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애틋하고 절절한 마음을 빛과 소리로 담아내죠. 그래서일까요. 그는 그의 작품 [물은 빛]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윤슬은 바람이 물을 일으켜 세우지 않으면 절대 생기지 않습니다.
– 홍나겸
그런데 이때 물이 바람의 손을 잡아야만 우리 인간의 눈에 윤슬이 들어오죠.
우리 삶도 마찬가지예요.”
작가는 자신이 배운 자연의 언어로 때로는 바람이 되어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또 때로는 누군가의 손을 잡는 물의 역할을 자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만의 언어를 영상과 소리로 써 내려가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언어는 무엇인가요. 더운 여름 강원도 박수근 미술관과 강원도 출신의 작가가 전하는 자연의 소리를 ‘보고’, ‘듣고’, ‘느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