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관점에서 본 공동체 – 공동체에 대한 6가지 소결론
다들 한국에서, 더 나아가 서구 선진국 전반에서 사회적 자본과 공동체가 무너져 간다고 합니다. 인상비평 수준의 이야기가 많지만, 가끔은 논의가 정치철학적 거대담론까지 가기도 합니다. 한 예로, 패트릭 드닌의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는 자유주의의 성공은 공동체를 무너트리는 귀결을 낳았고 역설적으로 그 ‘성공’ 덕에 자유주의가 실패했다고 지적합니다.
물론 정말로 공동체의 관점에서 세상이 퇴보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한국에서 사회적 자본과 공동체가 무너졌다는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글을 서울라이트에 썼습니다.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자본과 공동체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시대적 전환기인 지금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 전공인 경제학에서도, 최근에 공동체와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논하는 연구결과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논의들에 의구심을 품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야기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으로 흐릅니다. 공동체의 정의(definition)와 본질적 특징, 공동체의 잠재적 문제와 딜레마, 공동체가 이합집산하는 기제 등등 객관적으로 공동체 개념을 논하는 사람이 너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동체 이야기는 검증과 반증이 불가능하거나 쉽지 않은 사변적인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물론 사변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주장도 세상에 분명 필요하며, 누군가는 해야 할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이며 실증적인 이야기가 부족한 공동체 담론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공동체가 존재하는 곳은 상상 속의 천국이 아닌 현실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 담론에 균형을 맞추자는 취지로, 경제학적으로 공동체를 분석한 Bowles and Gintis (2002) 논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경제학자들은 공동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것 같지만, 이 논문은 공동체가 경제학적으로도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경제학 논문이라 사용하는 언어나 관점이 다소 낯설 수 있으나, 인용도 꽤 많이 되었으며 20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논문이라 올려봅니다. 경제학 논문 치곤 이례적으로 수학이나 이론 모형이 없어, 경제학 비전공생도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정부-시장의 이분법적 구도에 갇히고 공동체 개념을 경시한 ‘경제학적 인간’ 개념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논문을 시작합니다. 과거의 이상과는 달리, 시장과 정부 모두 현실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아져 정부-시장의 이분법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정부-시장-공동체의 삼자구도의 하나로서 존재하는 공동체를 논하며, 다음과 같은 6가지 소결론들을 내립니다.
1. 공동체는 시장 실패와 정부 실패를 해결할 수 있으나, 도덕적으로 용납하기 어렵거나 경제적 비용이 높을 수 있는 내부자-외부자 구분에 주로 의존한다.
공동체는 위에서 말했듯이 정부와 시장이 제대로 못하는 경제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카고 이웃공동체는 비행 청소년들이 소란을 피우거나 낙서를 하는 등의 행태를 꾸짖고, 지역소방서 등의 공공재가 예산 부족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유지하려 뭉칩니다. 이러한 집단 효능(collective efficacy)은 해당 공동체의 규범을 비공식적으로 준수시키고, 범죄율을 낮추는 긍정적 역할을 합니다.
일본 토야마 만의 한 새우잡이 어민공동체는 어민들끼리 수입과 비용을 공유하며, 이웃 어민의 훼손된 그물을 고치며, 새우 떼들의 위치 정보를 공유하며, 장노년은 청년들에게 새우잡이 기술을 가르치고, 청년들은 어로 첨단기술을 동료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러한 공동체적인 활동은 리스크가 크지만 산출물이 높은 지역에서의 어로활동을 가능케 하여 생산성을 높입니다. 또한 구성원 간 생산성 격차를 줄이며, 어민들이 공동체 노동 윤리를 준수하게 만듭니다.
공동체는 정부나 시장과 달리, 구성원들이 서로를 잘 알고 자주 상호작용하며 구성원들이 계속 유지되는 조건에서 존재합니다. 그 속에서 공동체는 연대, 신뢰, 상호성, 평판, 자긍심, 존중, 처벌 등과 같은 전통적인 상호작용 방식으로 굴러갑니다. 그 상호작용 속에서 개개인들은 이기심을 극복하고, 규범을 준수하며, 공동체 구성원들과 원만히 잘 지낼 유인을 가집니다. 이 과정을 통해, 공동체는 정부나 시장의 손이 닿기 어려운 영역의 메커니즘을 보충하는 대안적인 기능을 합니다
그러나 공동체 역시 정부나 시장과 마찬가지로 실패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는 규범이 효과적으로 유지되기 위해, 그리고 개인적 선택을 통해 규모가 작고 동질적인 집단으로 구성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동체는 그 특성 탓에 많은 경제적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공동체는 어느 정도는 외부 이탈 가능성이 제한되는 폐쇄성이 전제돼야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공동체 내부에서 집단적 행동을 강제할 때 공동체에서 이탈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성격들 때문에, 공동체는 공동체 구성원을 외부 구성원과 구분하고 내부를 하나로 단결하게 만드는 내부자-외부자 구분에 의존합니다. 이는 공동체를 각종 차별과 혐오, 악폐습, 착취 및 불관용성 등 문제적 가치관으로 가득한 집단으로 전락시킬 수 있습니다. 내부 규범을 오래 유지시킨다는 공동체의 특성은 진보적이고 생산성을 높일 훌륭한 규범에 기여하지만, 성차별이나 권위주의와 같은 구태스러운 규범을 유지시키는 데도 기여합니다.
최근 개봉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러한 공동체의 딜레마를 잘 드러낸 영화입니다. 김영탁은 대재난 속에서 구성원들을 연대시켜 황궁아파트 공동체를 잘 이끌었지만, 공동체 내부의 연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외부 거주민을 향한 극도로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태도 덕에 가능했습니다. 이러한 내부자-외부자 구분의 딜레마는 결국 황궁아파트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말았지요.
2. 공동체를 유지시키려는 개인적인 동기는 순전히 이기적이지도, 순전히 이타적이지도 않다.
우선 노력의 대가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제대로 돌아가야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예로 든 시카고 이웃공동체의 예에서, 주택 소유자는 무주택자에 비해 집단적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습니다. 주택이라는 자산을 가졌으므로, 공동체 활동을 통한 이득에 삶의 질 개선은 물론 땅값 향상까지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본 어민공동체에서 공동체 활동은 높은생산성을 통한 추가 이윤으로 보답받습니다. 이는 순전한 이타심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또한 공동체의 규범 위반자를 처벌하고 규범을 강제하는 과정은 단순한 금전적 손익타산을 넘어, 수치심이나 응보감과 같은 순수한 윤리적 감수성에도 기인합니다. 이는 순전한 이기심으로 설명할 수 없지요.
3. 잘 설계된 제도에서 공동체, 시장, 정부는 서로 보완하는 존재지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다.
공동체는 시장과 정부를 보완하기는 하지만, 정부나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앞서 설명한 시카고 이웃공동체의 범죄율 감소 노력은 최소한의 경찰력도 없었다면 실현되기 어렵고, 일본 어촌공동체의 높은 성과는 지방자치 권한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타이완과 인도 남부의 농민들이 운영하는 수리관개조직을 서로 비교하면 전자가 더 성공적입니다. 타이완 정부가 인도 정부보다 효율적으로 개입했기 때문입니다. 논문엔 나오지 않았지만, 박정희 정부의 새마을운동도 정부가 개입해서 농촌공동체를 발전시킨 사례로 볼 수 있지요.
그럼에도 공동체, 시장, 정부를 대체관계로 파악하는 오해가 만연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불평등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한 응답자일수록, 불평등의 책임소재로 정부 외 사적 집단들을 지목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사적 집단들과 공동체에 대한 강조가, 불평등 문제에서 정부 역할을 줄이려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셈입니다. 이렇듯 공동체에 대한 강조는 특정 정치적 목표를 위해 악용될 여지가 있습니다. 왜 공동체가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4. 잘못 설계된 제도에서 시장과 정부는 공동체를 구축(crowd out)할 수 있다.
공동체, 시장, 정부는 보완 관계이지만, 경우에 따라 공동체는 시장과 정부에 의해 잠식되는 존재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한 예로, (정부나 시장과 관련된) 재산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공동체를 통해서 해결되어온 경제 문제가 있다고 합시다. 이를 해결한다고 시장과 정부 메커니즘(예: 정부가 내리는 벌금 및 제재조치 등)을 무리하게 확장한다면 공동체의 존재 이유가 줄어듭니다. 따라서 공동체의 역량이나 공동체적 상호행동을 약화시키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5. 공동체의 원활한 기능과 공동체-정부-시장 간 보완관계를 더 잘 보장하는 재산권 분배 지점이 존재한다.
3, 4와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6. 공동체는 미래에 중요성이 커져갈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시장이나 정부의 손이 닿지 않고, 공동체가 정부나 시장대비 우위를 가진 개인 상호작용 층위에서 커버될 경제적 영역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만 더하자면, 저자들은 글 마지막에 구성원들 간 불평등이 심한 공동체는 제 역량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동질성으로 구성되는 공동체 특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불평등이 극심한 사회는 (경제학적으로 이득이 되는) 공동체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해 손해를 볼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짧은 논문이지만, 현실에서 공동체(주의)를 논할 때 필수적인 쟁점들이 많습니다. 이를 한국에 적용해보면 공동체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습니다. 아래의 쟁점들은 그 예입니다.
1) 공동체가 중요한 또 하나의 (경제학적인) 이유: 공동체의 중요성을 좌우파 공동체주의자는 물론, 경제적인 이득을 중요시하는 경제학적 우파들에게도 호소할 수 있습니다.
2) 공동체의 본질(폐쇄성, 동질성, 내부자-외부자 구분)과 이로 인한 딜레마의 문제: 한국에서도 공동체가 타락한 사례를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다도해 어촌마을에서 섬노예와 여성차별 문제, 대학원 공동체에서 갑질 문제, 폭력과 권위주의로 점철된 해병대 병영 문화 등등. 이들은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에 부패한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공동체의 본질인 폐쇄성과 동질성이 이들을 타락시켰습니다. 공동체의 존재는 바람직한 시민적 덕성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건전한 발전입니다.
3) 2)의 ‘공동체의 본질’ 기준으로, 한국 사회가 과연 공동체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인지: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이사와 이직이 흔한데, 이런 환경에서는 지역이든 기업이든 공동체를 유지하는 상호호혜적인 규범이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이기적인 동기를 가진 사람들이 탈주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선진국 중에서는 안정된 공동체가 형성되기 어려운 환경에 있습니다.
4) 정부와 시장의 도움을 통한 공동체의 성장가능성: 위에서도 말했듯이 새마을 운동은 중앙 정부가 농촌 공동체에게 인센티브를 주어, 지역 공공재(수리시설, 도로 등)을 형성하여 농촌 공동체를 발전시키려는 시도입니다. 그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많은 협동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새마을 운동은 정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주의적 면모도 있었습니다. 이는 현대 한국의 정부 정책에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5) (특히 진보좌파 입장에서) 공동체주의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가: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한국에서도 공적 영역 축소에 대한 대안으로 공동체의 역할이 대두될 수 있습니다. 진보좌파들에게 이러한 시도는 공동체주의를 빙자한 착취일 뿐이기에 막아야 합니다.
6) 공동체의 쇠퇴에는 시장은 물론이고 정부의 무분별한 확장 문제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도 이 문제를 지적합니다. 최근 한국에서 이슈된 교사 인권 문제도 그렇습니다. 학교에서 학생을 향한 폭력을 차단하려는 정부의 인권 보호 시스템은 잘못 설계되었습니다. 악성 학부모들에 의해 악용되기 쉽고, 너무 많은 일들이 학교라는 공동체가 아닌 차가운 법과 관료적 절차에 의해 해결됩니다. 그렇게 공동체는 쪼그라들고 냉혹한 공적 영역만 남습니다.
7) 불평등과 공동체의 관계에 대한 성찰: IMF 경제위기 이후 불평등의 급격한 증가는 공동체에 악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불평등은 한 공동체에 소속됐다는 의식을 약하게 만드니.
공동체(주의)가 21세기에 중요한 개념인 만큼 우리는 공동체에 대해 엄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이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크게 기여하길 바랍니다.
출처: Bowles, S., & Gintis, H. (2002). Social capital and community governance. The economic journal, 112(483), F419-F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