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 – 난장이 가족을 통해 우리 가족을 들여다보다

일러스트=토끼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제목은 정말 많이 들어본 소설이었지만 특별한 목적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연작까지 전체를 읽어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때 문득 눈에 띄어 읽은 게 첫 번째, 대학교에 와서 작품의 줄거리를 정리하는 과제를 하기 위해 읽은 게 두 번째, 이 글을 쓰기 위해 읽은 게 세 번째이다. 단순한 이유로 읽었던 저번과 달리, 세 번째로 이 책을 완독했을 때는 난장이 가족에게서 우리 가족을 볼 수 있었다. 첫 번째, 두 번째에선 알 수 없었던 감정들이 세 번째에서야 느껴졌고, 내가 느끼는 감정은 더욱더 무거워졌다.

난장이 가족과 우리 가족을 대조해보면서 모든 게 완벽히 맞게 떨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가 일치하는 부분들을 보면서 1970년대의 난장이 가족과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 가족이, 혹은 더 많은 가족이 비슷한 형태로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해보았다.

세상이 변했다고 많이들 말하지만, 적어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느끼면서 본격적으로 난장이 가족을 통해 우리 가족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어느날 난장이 가족의 집에 철거 계고장이 날아온다. 어머니는 알루미늄 표찰을 식칼로 뽑았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냐며 정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주권을 팔려고 하느냐는 영희의 물음에 영호는 화를 낸다. 아버지는 “시에서 아파트를 지어 놨다니까 얘긴 그걸로 끝난 거다.”(앞의 책, 263p.)라고 말한다. 물론 아파트는 난장이 가족을 위한 집이 아니다. 이미 철거 계고장까지 날아온 상황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망부석처럼 집 앞을 지키고 있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영수는 그들 옆엔 법이 있다며 영호를 말린다.

난장이 가족의 위기와 우리 가족의 위기는 영역 자체가 다르다. 심각성을 따지자면 철거 계고장이 날아온 난장이 가족이 훨씬 위겠지만, 다른 시대의 다른 문제점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위기를 대조해보았다. 다시 돌아와 난장이 가족은 당장 없어질 집에 대한 위기가 있고, 우리 가족은 매년 있었던 생활비에 대한 위기가 있다. 사실 위기는 매년 있었지만, 작년에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위기는 점점 커졌었다.

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기름값이 미칠 듯이 올라가자, 운수업을 하시는 아버지는 골머리를 앓았다. 버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번 돈의 80% 이상이 기름값으로 되돌아가자, 되자 아버지는 그 해 스물이 된 나에게 푸념을 늘어놓으셨었다. 나이 스물 이전에 들어본 적 없는 말들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표찰을 식칼로 떼고 정리를 시작하는 난장이 가족의 어머니와 달리 나의 어머니는 식칼을 내려놓으셨다. 본래 하시던 일이 맞지 않으셔서 마음고생만 하던 어머니는 약 1년의 휴식을 끝내시고 일자리로 뛰어드셨다. 그렇게 다시 맞벌이 가정으로 돌아가면서 우리 집은 더욱 조용해졌다.

난장이 가족의 영호와 영희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는 공부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략) 세상은 공부를 한 자와 못한 자로 엄격하게 나뉘어져 있었다. 끔찍할 정도로 미개한 사회였다.”(273~274p.) 시대가 시대인 만큼, 학교를 그만 둘 수는 없었다. 학교를 그만둔다는 생각을 해 본적도 없었다. 그만큼 교육열이 높은 대한민국에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속에서 우리 가족의 큰 딸인 나와, 한 살 터울의 남동생은 경쟁 속에서 뒤처졌다. 정확히 말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부모님의 바람과 다르게 지독히도 공부와 가까워지질 않았다. 학습지도 했었고, 수학 학원까지 다녔음에도 성적에 큰 변화가 없자 부모님은 체념하신 것 같았다. 2022년, 부모님의 염려만 가득 안은 체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남동생은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탈출해 대구의 직업학교로 발을 옮겼다. 부모님과의 충분한 상의 없이 이루어졌었기에 남동생은 아버지와 수많은 마찰을 빚었고, 그렇게 지금까지 7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조세희 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표지

 
‘미개한 사회’라는 말에 거부감이 없지 않았지만, 공부 경쟁에서 뒤쳐진 패배자의 관점에서 감히 말을 올리자면, 실정을 파고들면 이만큼 미개한 사회가 어디 있을까 하고 의문을 품기도 했다. 좋은 대학에 나와 좋은 직업을 얻어야만 하는 대한민국의 사회에서는 공부에 목을 매지 않으면 되는 게 거의 없었다. 난장이 가족들은 당장이 너무 힘들었기에 학교를 포기했지만 영수는 동생들에게 교정쇄를 가져다주며 많은 책을 접하게 해주었고, 끝내 영수는 방송통신고교에 입학하는 데 성공했다. ‘미개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영수는 방죽 한가운데로 노를 저어 가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다른 일은 이제 힘이 들어 하지 못하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아버지는 일을 안하셔도 돼요. 저희들이 일을 하잖아요.”(275p.)라고 대답한다. 아버지는 “누가 너희더러 일하라고 했니?”,“너희들은 학교에만 나가면 돼. 그게 너희들이 할 일이다.”(275p.)라며 영수를 다그친다. 아버지 관점에서 자식들이 생계를 영위하기 위해 일자리에 뛰어드는 모습이 좋을 리가 없다.

우리 가족의 아버지도 똑같은 말을 하셨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용돈을 벌겠다며 무작정 아르바이트 자리로 떠난 나에게도 그랬다. 대학교 원서접수를 앞둔 체 오랜만에 집에 찾아와 구체적인 일자리를 찾았다며 그리로 갈 것이라 말한 남동생에게도 그랬다. 내 남동생은 영수를 닮았다. 아래로 동생이 더 없었음에도 맏딸인 나보다 첫째 행세를 잘했다. 그 행세에 무게라도 느끼는 것인지,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성적에 불안함을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일자리에 대한 열망은 매우 강했다.

원서접수를 앞둔 체 집에 방문한 남동생은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거제도에서 배를 용접하러 가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극구 반대했다. 아버지는 남동생이 죽어도 대학을 가길 원했다. 요즘은 누구나 가는 대학을 가지 못한다면 정말 안된다고 뜯어말렸다. 남동생도 아예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말하진 않았다. 이미 수시 원서를 어디에다 쓸 건지도 정해놓은 상황이었다. 남동생은 다음날 다시 대구로 떠났고, 그날 저녁 아버지는 “쟤가 왜 저렇게 돈 버는데 눈이 뻘겋냐”며 한숨을 쉬셨다.

앞서 생활비에 대한 위기가 매년 있다고 말했는데, 그 위기가 정말 심각해 당장 길바닥에 나앉기 직전일 정도로는 아니었다. 그러고 아버지는 “우리 집이 그렇게 가난해 보이냐”라며 또 한숨을 쉬셨다. 누나인 내가 보기에도 남동생은 좀 이상했다. 정확히는 많이 불안해 보였다. 인문계 쪽으로 나아가지 못했기에 부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제 돈은 제가 벌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는 것 같았다. 참으로 ‘첫째’ 같은 마음가짐이다. 장하다면 장하다고 말할 수 있는, 반항적이다면 반항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남동생이다.

난장이 아버지는 여태 하던 일이 모두 힘들어지자 꼽추의 말을 듣고선 서커스단의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와 자식들은 성토했다. “아버지의 꿈은 깨어졌다.”(272p.) 마음이 맞는 지섭과 대화를 나누고선 벽돌 공장의 굴뚝 맨 꼭대기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난장이 아버지는 종이비행기를 날린 벽돌 공장의 굴뚝에서 떨어져 죽었다.

애석하게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픈 곳은 점점 늘어난다. 더는 다른 일을 하기 힘들어진 난장이 아버지는 가족들의 만류에 결국 서커스단에 들어가지 못했고, 그때부터 난장이 아버지는 지섭과 대화를 나누며 달나라에 가겠다는 희망을 걸고서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렸다. 결국, 그 희망을 접어 날린 곳에서 죽음을 맞이했지만, 난장이 아버지의 의지는 자식들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난장이 아버지가 굴뚝에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다면 돌아온 영희와 그녀가 해낸 일에 웃으실 수 있으실까 하는 의문이 든다. 과연 우리 가족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위기를 딛고 나아가며 다른 희망을 꿈꿔 볼 수 있을까? 난장이 아버지가 굴뚝 위에서 날렸던 종이비행기를 접을 수 있을까?

비슷하지만 어딘가 다른, 다르지만 어딘가 비슷한 난장이 가족과 우리 가족은 여전히 위기 속에 있고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계속 전개되고 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연작들을 읽어보지 않아 이 이후의 내용은 모르지만, 연작들의 내용에서도 우리 가족의 모습이 보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말 그런 느낌이 든다.
 


 
각주표기
(1)조세희. (2020).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소설이 시대를 읽는다. 가람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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