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을 벗고 세상을 입다] 언젠가 서울에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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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포르투갈의 아름다운 해안 도시, 포르투에 머물던 때의 일이다. 나는 그곳에서 아주 특별한 친구를 만났다. 구름이 잔뜩 낀 금요일 낮 12시, 함께 여행을 떠난 친구와 나는 주린 배를 붙잡고 좁은 골목의 식당에 들어갔다. 포르투로 이주한 베트남인이 운영하는 작은 쌀국숫집이었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기 위해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골목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어디에선가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골목 끝을 바라보니 어린아이 몇 명이 모여 놀고 있었다. 아마도 오징어게임 열풍의 영향이리라. 외국인 아이들이 한국의 전통 놀이를 하는 것이 신기하고 귀여워서,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멀리서 우리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아이들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내가 손을 흔들어 인사하자, 불과 1m 거리에 멈춰서더니 자기들끼리 무언가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꼬헤…’라는 속삭임이 내 귀에도 들어왔다.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그중에서 가장 키가 큰 여자아이가 다가와 용감하게 물었다. “한국인이야?” 그 아이만 영어를 할 줄 아는 듯했다.

한국인이라고 답하자, 아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한국에 가는 게 내 꿈이야! 난 BTS를 엄청나게 좋아하거든.” 한류 열풍에 대해서는 지겹도록 들어왔지만, 이렇게 실감하는 건 처음이었다. “너희가 하던 것도 한국의 전통 놀이야. 알고 있었어?”라고 묻자, 그건 미처 몰랐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도 어렸을 때 그 놀이를 했었어.” 우리의 대답을 들은 아이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네 개의 나라, 하나의 골목

 
소피아라는 이름을 가진 그 아이는 방글라데시의 수도인 다카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살다가,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포르투갈에 왔단다. 올해 9살인데, 아직 이민국에서 연락이 오지 않은 탓에 학교에 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골목대장을 맡아 동생들을 모두 데리고 놀고 있는 이유가 그것인 모양이었다.

소피아의 곁에 있는 더 작은 소녀의 이름은 뷔였다. “얘 이름이 BTS 멤버랑 똑같아!”라며 소피아가 자랑하자, 뷔는 수줍어하며 소피아를 살짝 밀쳤다. 뷔의 엄마는 우리가 먹은 쌀국수를 만든 요리사였다. 뷔는 엄마를 따라 베트남에서 이곳까지 왔다. “아까 우리랑 같이 있던 남자애들, 걔네 둘은 형제인데 인도에서 왔어!”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은 총 대여섯 명 되었는데, 모두 국적이 달랐다. 쓰는 말도 다 다르기 때문에 소통이 어려울 게 분명했다. 소피아는 포르투갈어를 못했고, 뷔는 영어를 몰랐다. 그러나 이 골목에서 그까짓 언어쯤은 장애물이 아닌 듯했다. 아이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소리를 질러대며 행복하게 뛰어놀고 있었다. 약간의 손짓이나 숨넘어갈 듯한 웃음이면 충분했다.
 


 
나이도 국적도 언어도 다르지만

 
“여기가 우리 삼촌이랑 엄마가 하는 가게야. 아빠는 집에서 자고 있어!” 소피아에게는 우리와의 만남이 퍽 반가운 일인 듯했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자, 몇 걸음 떨어진 상점으로 데려가 소개해 주었다. “우리 가게 바로 건너편에 한국인이 하는 숙소가 있어. 그래서 나는 한국인을 자주 봐. 그런데 우리한테 인사해 준 사람은 없었어.”

소피아는 그 외에도 자신이 한국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간절히 서울에 가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에 사는 인도인 유튜버가 올리는 영상으로 한국의 문화에 관해 접하고 있다는 설명은 덤이었다. 가게 앞에서 신나게 떠드는 소피아의 목소리를 들은 듯, 소피아의 엄마가 뛰어나왔다. 아마도 당찬 소피아가 손님을 붙잡고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 모양이었다. 우리가 즐겁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안도하는 표정을 지은 그는, 소피아가 한국을 정말 좋아한다며 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널 만나러 다시 올게. 호텔에서 조금 멀어서 매일 오기는 힘들 것 같아. 그래도 수요일에는 돌아올게.” 다시 돌아오겠다는 우리의 말에 소피아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는 학교에 안 가니까 이 골목에 하루 종일 있어! 아무 때나 와도 돼!” 나이도 국적도 언어도 다르지만, 우리가 포르투갈에서 사귄 첫 친구였다.
 

 


 
언젠가 서울에서 만나

 
소피아를 만난 뒤, 우리는 서점 몇 개를 돌며 책 한 권을 찾아다녔다. 한국에 가는 게 꿈이라는 소피아에게 한국어 교재를 선물하고 싶었다. 정 안 된다면, 한국어로 된 책이라도. 그러나 포르투갈에서 영어로 쓰인 한국어 교재를 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전통적인 미가 드러나는 소품을 한국에서 조금 가져왔다면 좋았을 텐데, 새로 사귄 친구에게 줄만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우리는 빈손으로 소피아를 다시 만나러 갔다. 약속했던 수요일이었다. 그런데 골목 어디에도 소피아가 보이지 않았다. 뷔와 남자아이 몇 명만이 모여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소피아가 알려주었던 삼촌의 가게 앞을 찾아가 봤지만, 역시나 그곳에도 소피아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번역기를 돌려 소피아의 삼촌에게 말을 걸었다. ‘Somos amigos coreanos de Sophia. Eu deveria me encontrar com Sophia na quarta-feira, mas ela não está aqui?(우리는 소피아의 한국인 친구입니다. 소피아와 수요일에 만나기로 했는데, 소피아는 여기 없나요?)’ 그러자 아쉬우면서도 반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소피아는 일을 마치고 4시쯤에 돌아올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학교에 갈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우리는 내일 포르투를 떠나야 했다. 이제는 영영 이별이었다. 아쉬운 대로 우리의 메일 주소와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적은 종이 한 장을 건네며 소피아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삼촌이 흔쾌히 받아주며 말했다. “소피아는 아직 어려서 인스타그램을 안 하지만, 언젠가 여기로 연락할 수 있을 거예요. 소피아가 기뻐하겠네요!” 우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종이 아래에 한 줄의 문장을 추가로 적었다. 낯설고 반가웠던 우리의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서울에 오게 되면 연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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