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아픈 청소년은 직업교육을 받을 수 없나요?

: 정신장애 청소년의 면접 트라우마 극복기

 

일러스트=토끼풀

 
“안 돼요. 면접 못해요.”
 
날카롭고 다급한 목소리가 공기를 찢는다. 학생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당황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4년제 수시 원서 접수가 끝난 9월 말, 나는 고3 학생들과 ‘복도 인생 상담’을 하고 있었다. 전문대에 관심 있는 학생들과는 자연스레 수시 원서 상담이 되었다. A는 영상 쪽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나영석 PD처럼 되는 것이 꿈이라 했다. 인근에 있는 한국영상대를 추천했다. A의 눈이 반짝 빛났다. “지원해 볼게요.” 앉은 자리에서 대학 입학처에 전화를 해 이것저것 물었다. 입학사정관은 면접 전형이 훨씬 유리하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해당 전형을 제안했다. 그런데 A는 안 된다며 눈물을 떨어뜨렸다.

“면접이 왜 안 돼? 면접 보는 게 무서운 거야? 무슨 일 있었어?”
 

정신 병력 조사부터 자해 검사까지

A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떤 희망도 없다고 생각하던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우울증이 깊어져 한꺼번에 약을 먹고 병원에 실려 갔다. 기억난다. 그때 학교가 발칵 뒤집어졌었다. 일반병동과 폐쇄병동에서 각각 2주 간 지냈다. 퇴원 후 학교생활을 하며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2학년 말, 직업교육 위탁 기관에 면접을 보러 가기로 했다. 조금 더 일찍 진로와 관련된 공부를 하고 사회를 경험하는 것이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면접장에서의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게 될 줄은 몰랐다. 면접관은 출결 서류를 뒤적이더니 결석이 많다면서 지원자들에게 정신과 약을 먹는지 물었다. 처음 보는 면접관에게, 그것도 생판 모르는 다른 지원자가 듣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아팠다’고 대답했다. 그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입학 후 들통 나면 원적교로 돌려 보내겠다고 협박했다. A는 입학 취소가 두렵기도 했고 사실대로 말하면 혹시나 합격시켜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항우울제와 각종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과 정신병원에 있었던 사실까지 전부 말하고 만다. 정신 병력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공개한다는 것은 꽤나 수치스러운 일임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면접관은 소매를 걷게 하여 자해 흉터 검사를 했다. 집에서도 받아본 적 없는 검사였다. 이어서 그는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입 밖으로 나열했다. A는 ‘내가 그렇게나 나쁜 사람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런 애들(정신질환자들)이 반 분위기 흐린다.”는 말에 ‘아, 나 불합격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우리 가만히 있지 말자!

말하는 내내 A는 울고 있었다. 면접 보는 게 무섭다고 했다. 면접관들의 시선을 상상만 해도 두려워 눈을 못 마주칠 것 같다고 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A는 아픈 마음 추스르며 새로운 도전을 해 보기로 어렵게 마음을 먹은 거였다. 이제 막 날개를 펴 세상에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우울증이 있다는 이유로 도전이 거부당했고, 폭력적인 언행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겼다. 이는 대입이라는 또 다른 도전을 하려는 A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A야. 우리 항의하자. 그리고 트라우마 극복해서 대학교 면접도 보러 가자! 내가 도울게!” A에게 원하는 것을 물었다.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면접관으로 만나는 다른 학생들이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우선 면접 때 있었던 일을 복기해 글로 써 달라고 했다. 이를 토대로 같이 노트북 화면을 보며 진술서와 사과 요구서를 완성했다. 글을 다듬은 후 학생에게 최종 검토를 해 달라고 했다.
 
‘선생님, 방금 확인했습니다. 이상한 부분은 없는 것 같아요. 저를 위해 이렇게 애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가슴이 아파왔다. 감당할 수 없이 큰 상처를 받았으나, 홀로 상처를 덮어두고 지내 온 A의 시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좋은 아이를 보냈어야죠.

교장선생님께 보고 드리니 교육청에 직접 방문해서 상의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 길로 출장을 내고 교육청에 갔다. 진술서와 사과 요구서를 보여드리고 설명했다. 담당자들은 이야기를 듣더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에 당황하고 말았다.
 
“그런데 학교에서 뭘 했는지가 빠져있네요.”
 
“네? 학교랑 무슨 상관이죠? 위탁 기관의 면접장에서 일어난 일인데요?”
 
“좋은 아이를 보냈어야죠. 우울증이 심한 아이였다고 하는데, 면접 가기 전에 학교에서 관리를 잘 한 건가요? 학교에서 힘들다고 그냥 위탁교 가게 한 건 아니죠?”
 
“당연히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최선을 다해서 지원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학생이 위탁교육을 받고 싶다고 해서 면접 보러 간 거고요. 마음 아픈 아이들도 직업교육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위탁교 가서 진로를 찾고 상태가 좋아지는 아이들을 많이 봤어요. 이 아이들도 배울 수 있는 권리가 있잖아요. (그리고 ‘좋은 아이들’이라뇨. 마음 아픈 아이들은 ‘좋지 않은 아이들’인가요? 가슴 속에서 말이 요동쳤다.)”
 
(…)
 
“저 교육청에 항의하러 온 것 아니에요. 도와달라고 온 거예요. 상처받은 학생을 위해 같이 나서 주시면 안 될까요?”
 
두 번의 전환점이 있었다. 마음 아픈 아이들에게도 배울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말, 교육청에 항의하러 온 것이 아니며 아이를 위해 함께 도와달라는 말. 발화의 순간에 긴장이 풀리며 담당자들과 연결의 기류가 형성된 것을 느꼈다.
 
이후 담당자는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교육청 변호사 자문 결과 면접 때의 언행이 ‘아동 학대’임을 전해 주었다. 치료비 지원도 알아봐 주었다. 해당 면접관이 위탁기관의 원장이라는 사실도 알아냈으며, 그가 사과 편지를 써서 학생이 원하는 방식으로 전달하도록 해 주었다. 휴일 밤에도 전화를 주어 도움의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솔직하게 말해 주었고, 그럼에도 학생을 끝까지 도울 것임을 약속했다.
 

면접은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실 수 있나요?

“A야! 사과 편지가 왔어! 읽어봐!”
 
드디어 위탁기관 원장에게서 사과 메일이 왔다. 나는 상기된 표정으로 출력본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학생의 눈에서는 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왜 그래? 편지가 마음에 안 들어?”
 
“누가 봐도 억지로 사과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더 할 생각은 없어요. 이제 여기서 그만 할게요, 선생님…….”
 
나는 편지를 받았다는 것만으로 기뻤는데, 학생은 행간을 읽고 있었다. 또 다시 미안함이 몰려왔다.
 
어느덧 면접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우리 면접 연습하자. 이번 기회에 면접 트라우마 이겨내 보는 거야. 내가 도와줄게.”
 
“저 면접은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짓다 만 채로 방치된 집터에서 깜깜한 우물 아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설득에 또 설득을 했다.
 
“지금 면접 기출문제 보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많이 두렵구나. 일단 세 시 반까지 학교 오지 않을래? 샘이랑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자.”
 
“면접 준비하는 것도 그렇지만 사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과 시선이 부담이어서…”
 
“그렇구나. 팁을 알려줄게. 홍수법이라고 있어. 자꾸 무언가에 많이 노출되면 그것에 익숙해지는 것. 마음 편한 친구들이랑 나랑 같이 면접 연습 많이 해 보는 거 어떨까?”
 
“아뇨, 선생님… 제안은 정말 감사하지만 제가 그 분들의 시선을 못 견딜 것 같아서…”
 
“이번 기회에 부딪쳐보면 어떨까? 졸업하고 나서는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들 만나기가 더 어려울 수 있으니… 낯선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법도 알려줄게~~”
 
“준비하는 데 늦은 것 같아서요… 사실 그렇다 할 답변도 없고… 예시 질문이 저한테는 다 어렵거든요. 장점 세 가지 적으라는 것도 어렵고 경험한 걸 말하라는 것도 어려워요.”
 
“그렇구나. 면접이라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나랑 대화하다보면 어느새 준비가 되어 있을 거야. 믿어보렴!!^^ 선생님이 장점 찾아줄게. 지금도 막 보이는 걸?! ^^ 생각이 깊고, 겸손하고, 글을 잘 쓰고, 주변 친구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잘 맺고, 따뜻하고, 순수하고, 소신 있고, 경청할 줄 알고… 정말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어.”
 
“선생님, 그럼 혹시 조금만 더 기다려주실 수 있나요? 네 시까지 가 볼게요.”
 

선생님, 저 합격했어요!

며칠 간 집중적으로 면접 연습을 했다. 시나리오를 함께 짜고 나와 1대 1 연습을 하고, 다음 날은 면접 두레를 조직해 친구들 앞에서 3대 1 연습도 해 보았다. 면접 준비가 단계별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태도 코칭과 복장 점검도 했다. 면접 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A의 연락을 기다렸다. 늦은 오후, 싱그러운 에너지 가득한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영진 선생님! 저 면접 끝났습니다! 분위기도 좋았고 제가 생각했을 때 태도와 목소리도 괜찮았어요. 분위기가 편한 덕분에 편하게 말하고 왔어요! 교수님도 면접 끝에 학과 장점을 말씀해 주시고 학과 투어를 받고 가라 하신 것 보면 좋은 결과 기대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목소리와 웃음, 인사, 예의를 신경 썼더니 교수님들도 마음에 들어 해 주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후 A는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친구들의 면접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도 했다. 면접 두레에 꼬박꼬박 참여하며 다른 학생들에게 진지하게 피드백을 해 주었다. 원체 생각이 깊고 책을 많이 읽는 A였기에, 그 내용도 수준이 있었다. 면접 자체를 두려워했던 학생이었는데, 이렇게 면접 코칭을 하고 있다니. 내 마음 속에서 감사함과 뿌듯함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A가 찾아왔다. “선생님, 저 합격했어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에 기쁨의 에너지가 가득했다. 내신 7등급대였던 A가 해당 대학의 면접 전형에 ‘최초 합격’을 한 것이다. 내신 성적이 훨씬 높은 학생도 예비 번호를 받은 터였다. 트라우마를 극복했을 뿐더러 면접에서 좋은 평을 받고 합격한 것이었다. 도와주신 교장, 교감 선생님, 교육청 담당자 분들도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뻐해 주셨다. 현재 A는 대학 입학을 앞두고 다양한 책을 읽으며 필사도 하고 친구들과 신나게 수다도 떨며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정신장애 청소년에게도 배움과 성장의 권리가 있다

‘10대 청소년의 정신건강 실태조사’(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21)에 따르면, 전체 학생 청소년 중 우울 증상이 있는 경우는 17.4%, 불안 증상은 13.0%, 자살 위험성은 16.4%였다. 학교 밖 청소년의 경우 그 비율이 더 높아져, 우울 증상은 35.0%, 불안 증상은 29.0%, 자살 위험성은 36.8%로 나타났다. 생각보다 많은 청소년이 정신장애와 함께 살아가지만, 정신장애는 낙인이 되어 청소년을 또 다시 괴롭힌다.
 
정신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배제는 세상에 대한 공포를 증폭시켜 청소년을 더 깊은 고립에 빠지게 한다. 정신장애를 이유로 청소년이 직업교육을 받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성장의 기회를 빼앗는다는 점에서 잔인하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3조에서는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아동도 개인의 발달을 성취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교육 훈련과 의료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마음이 아프다고 ‘넌 안 돼.’라고 낙인찍고 배제하지 말고, 아이들에게 배움과 성장, 나아가 이를 통한 치유의 기회를 제공하자. 정신장애 청소년의 작은 시도와 도전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자. 어떤 이든 성장을 믿고, 지지하며, 지원하면 날아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어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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