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같은 글쓰기는 아니어도

일러스트=토끼풀

 

결혼한 지 2년여 만에 아들이 태어났다. 아이를 낳고 싶지도 않았고 받아들일 준비도 하지 않았던 터에 찾아온 생명은 삶의 많은 부분 아니, 거의 전부를 바꾸어놓았다. 모성 충만한 엄마로의 재탄생!
 
태교를 잘한 건지 머리를 타고난 건지, 아이는 몹시 영특했다. 보통의 남자아이와는 달랐다. 울거나 떼를 쓰지 않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특히나 그 흔한 로봇이나 자동차, 총, 칼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아이는 눈 뜨자마자 책을 읽어달라고 끊임없이 가지고 왔다. 글자를 저 스스로 깨친 후에는 수험생처럼 방에 틀어박혀 몇 시간이고 책을 읽어댔다.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영어를 탐구하기 시작했으니 나의 자부심과 충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 아니겠는가?

아이가 유모차에 타서 영어 동화책을 원어민 발음으로 쌀라쌀라 읽고 있으면(아들은 바깥에 나갈 때 걷거나 뛰지 않고 유모차에 앉아 책을 읽었다) 미국, 어디에서 살다 오셨어요? 라고 묻던 잘나신 엄마들이 시샘 어린 눈총으로 바라보곤 했던 것. 소비의 천국, 일산 신도시에서 직업도 변변찮고 공식적으로 착하고 성실하다는 것 외에 별것 없는 남편과 살고 있었으니 그 따가운 질투와 눈총이 상대적 빈곤감과 열등감을 해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하겠다. 하여 당시 나는 불타는 모성의 화신이 되어 아이 책을 사주는데 반 미쳐 있었다.
 
아이 교육에 관심 좀 있다는 엄마들은 미친 듯이 좋다는 전집을 부동산을 늘리듯 들여놓곤 했다. 이에 질세라 돈 잘 버는 친정 오빠에게 뻔뻔하게 손을 벌리거나, 결혼 예물과 아이 돌잔치에 들어온 금을 몽땅 팔아서 좋다는 전집을 미친 듯이 사댔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아이가 신기하게도 1번부터 100번까지 한 권도 빠짐없이 책을 읽어댔기에. “엄마 책 등에 적힌 제목만 봐도 내용이 다 생각나.” 하하하, 이런 아이를 내가 낳았고 키우고 있다는 자부심은 자만이 되어 하늘을 찌른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그 후로 4년 후에, 딸이 태어나면서부터 훌륭한 엄마로서 운명은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중에 갑자기 바닥에 누워 울며 발버둥 치는 아이가 내 아이라니! 아들을 키울 때 그런 아이들과 부모를 속으로 얼마나 욕했던가. 딸아이는 마치 괴물 같았다. 순하고 똑똑한 아들을 키울 때 경험할 수 없었던 신세계는 예측 불가능한 지옥 그 자체였다. 특히 친정 오빠가 홍대에 타투샵을 열어서 백일 지난 딸을 데리고 갔을 때의 일이다. 아이는 밤새도록 꽥꽥대며 울어댔고, 엄마와 오빠는 애 좀 빨리 조용히 시키라고 성화해댔다. 급기야 나는 불 꺼진 방에서 잡히는 무언가로 조막만 한 발바닥을 내리쳤다. 밤을 꼴딱 새우다시피 아이와 씨름하다 날이 희붐하게 밝았다. 젖을 물리며 발바닥을 살펴보다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복숭아뼈가 시퍼렇게 멍들어 있는 게 아닌가. 아이를 때리는 부모를 극도로 혐오했던 내가 그 대상으로 전락하다니. 다시는 손대지 않겠다 다짐하며 속울음을 삼켰다. 하지만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울고 보채는 극도로 예민한 아이를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 모성의 힘으로도 어찌하지 못하는 분노가 수시로 들끓었다. 나를 혐오하는 일의 일상. 더는 누군가에게 부러움의 대상인 훌륭한 엄마가 아니라는 자괴감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낡은 지붕 위에 소복소복 쌓인 눈이 어느 날 아침 폭삭 주저앉듯이 삶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몸과 마음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 지금 여긴 어디? 갑자기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컴컴한 싱크홀에 빠진 것만 같았다. 내 존재는 사라지고 단지 엄마로 사는 일에 대한 환멸이 지리멸렬한 일상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하아, 집 어디에도 한 뼘의 내 공간이나 하물며 내 명의의 통장 하나 없다니.
 
그 어디에도 나만의 방이 없던 나는 그만 죽고 싶었다. 하지만 억울해서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아이가 잠시 잠든 이른 새벽 식탁에 조명을 켜고 일기를 쓰고 아이의 책이 아닌 나만의 책을 찾았다. 허기에 굶주린 사람처럼. 이십 대 탐닉했던 하루키와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다시 만났으며 박완서, 공지영, 신경숙, 김형경 등 여성 작가들의 책을 눈물 뚝뚝 흘리며 읽었다. 그리고 무엇이든 써야만 숨이 쉬어졌다. 지워진 나를 찾아 헤매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여정은 결국 친권 양육권을 포기한 채 이혼을 감행하게 했다. 아이들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로만 살고 싶지 않았다. 갈수록 심해지는 남편의 언어폭력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나는 이름 없이 가부장제에 박제된 채 죽고 싶진 않았다. 살아남아서 아이들을 지키고 싶었다. 이혼 후, 이러저러한 고진감래 끝에 어렵사리 혼자만의 방을 가지게 되었을 때 나는 기뻐서, 아파서 울었다. 하지만 그 오래전 연간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은 오늘날에도 눈물겹게 유효하다.
 
나는 문학을 쥐뿔도 모른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체계적인 공부를 하지 못했으니 철학적 사유가 깊을 리 만무하다. 그저 아이들 양육비를 보내고 다시 아이들을 데려오기 위해(페미니즘을 만나기 전이라 건강한 모성이 없던 때) 죽도록 일하면서 닥치는 대로 읽었으며 무엇이든 끄적였다. 집에 약이 많으면 몸이 아픈 사람이고 집에 책이 많으면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라던 어느 작가의 말처럼 이사할 때마다 책이 늘어만 갔다. 나는 아파서 읽고 아파서 계속 썼다. 그게 내 글쓰기의 전부이다.
 
혼자만의 일기가 산문이 되고 시가 되고 이야기 글이 되었다. 작년엔 그 시들 중 다섯 편이 노래로 만들어져 세상 밖으로 나오는 귀한 경험을 했다. 딸 이야기를 모티브로 쓴 동화는 공모전에서 낙선했지만, 쓸모없는 경험이 없듯이 쓸모없는 글이란 없는 것 아닐까? 여전히 가난하지만, 이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는 골방이라도 있으니 문제 될 것이 없다.
 
[자유는 나 자신을 가두는 서재에 있고요. 나 자신을 작가로 느끼는 곳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존재하는 곳, 글을 써야 하는 누군가로서 내가 존재하는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내게 문제 될 게 아무것도 없지요]
-아니 에르노, [칼 같은 글쓰기] 중에서
 
작년 노벨문학상은 칼 같은 글쓰기를 해온 ‘아니 에르노’에게 돌아갔다. 마치 내가 상을 탄 것처럼 기뻤다. 한 여성으로서 자신의 지나온 삶을 타자를 바라보듯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며 그 흔한 메타포도 넣지 않고 그만의 철학적 사유로 촘촘히 직조해낸다. 놀라운 일이다. ‘칼 같은 글쓰기’의 세계라니! 감히 그녀를 흉내 낼 순 없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의 축적이 현재의 나를 말해주듯이 내가 쓰는 글이 내 존재를 말해주는 것이리라. 내가 존재하는 곳 바로 여기에서.
 
서울라이트에서 ‘에세이 연재’ 제안받았을 때 솔직히 기쁘기보다는 매주 내 삶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아니, 내 삶에 사람들이 귀 기울여 줄까? 라는 우려가 먼저 들었다. 마감에 쫓기는 삶이 되진 않을까? 라는 두려움과 함께. 그럼에도 이 제안을 수락한 이유는 원고료 때문이었다. 물론 아주 적은 돈이지만 한부모 가정으로 딸과 둘이 사는 지금의 현실에선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니. 한데 이 글을 쓰면서 되짚어 보니 나만의 글로 익명의 독자들과 만나게 되는 일은 몹시 가치 있고 설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엘리트적 삶과 거리가 멀었던 터라 그 누구도 페미니즘을 알려주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딸이라는, 여성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왜 차별과 배제를 받아야 했었는지. 그런데 그걸 어떻게 모를 수 있어? 라고 반문해도 어쩔 수 없다. 오랜 시간 몸으로 체득해 온 불평등의 근원을 몇 년 전에 벨 훅스, 정희진의 책 등을 만나 알게 되면서 분노했고 내가 당한 일들의 부당함을 이해했다. 마침내.
 
마트에 딸아이 간식을 사러 갔다. 늘 그렇듯이 2+1 과자를 집어 들곤 한다. 문득 멀쩡한 과자 박스 옆에 투명 테이프로 붙여놓은 1을 뜯으며 마음이 울컥했다. 남자 형제 사이에서 자란 나의 생과 닮아서. 그렇게 견고한 가부장 안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던 여자아이는 한참을 울어야 했다. 이 지면에 실리게 될 글들은 아마도 뿌리 깊은 가부장제 안에서 사람으로서 장소를 부여받지 못한 여성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더불어 가부장을 탈출하여 자신만의 장소를 찾아가는 존재의 여정이.
 
아니 에르노의 칼 같은 글쓰기는 아니어도.
 

글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