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징비록] 서론

일러스트=바로크

 
다시 되짚어보는 2022년 한국 외교 타임라인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뀐 만큼 편안하고 즐거운 일만 가득하면 좋겠지만, 한국은 둘러싼 상황은 그렇지 못한 듯하다. 여러 위험 요소들이 한국을 조금씩 옥죄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22년은 그 위험들이 점차 구체화 되어가던 시기였다. 그럼 구체적으로 무슨 위험 요소들이 있었으며, 그 위험 요소들을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우선, 연초부터 지정학 측면에서 가장 큰 변수가 발생했다. 바로 러시아의 전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미중 무역 분쟁이나, 미국의 아프간 철수 등이 불안 요소로 작용했지만, 우크라이나처럼 오랜 기간 지정학적 불안 요소가 존재했던 지역에서 대규모 군사 충돌이 발생한 것은 세계사적인 맥락에서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러-우 전쟁은 세계를 여러 갈래로 분열시킨 것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공급망에도 큰 충격을 미쳐서, 블록화되는 세계경제구조 개편을 가속화했다.

물론 우크라이나가 지리적으로 가깝지 않은 덕에, 한국은 러-우 전쟁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러·우 전쟁이 촉발한 국제질서 개편과 공급망 재편은 한국에게도 적잖은 선택을 강요하게 만드는 중요한 변수였다. 한국은 전쟁 초기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에서 대대적으로 시행했던 대러 제재 참여를 망설이다가 미국 상무부 제재 대상에 오르는 해프닝을 겪었고, 러·우 전쟁이 공급망에 충격을 주는 바람에 물가 압박 해소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런 맥락에서, 러·우 전쟁은 냉전 종식 이후 30년간 유지됐던 세계화 흐름을 뒤집는 상징적인 이슈이자, 그 세계화를 이용하여 선진국 반열로 올라섰던 한국에게 새로운 전략과 성장 방식을 재고하게 하는 중대한 분기점이라고 할 만하다.
 
러·우 전쟁 만큼 위협적인 대외 변수로 자리했던 건 중국 문제였다. 8월에는 미국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 의원이 대만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를 방문하면서, 미중 패권다툼의 양상이 한결 더 날카로워졌다. 이 때 한국은 대만과 일본처럼 국가 정상이 직접 마중 나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패싱’ 논란에 휩싸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드 배치 문제로 한국은 중국과 또 다시 마찰을 겪었고, 연말에는 중국의 강력한 방역 정책인 ‘제로 코로나’가 해제되면서 발생한 대규모 감염을 차단하고자 시행한 입국 규제 탓에 서로에 대한 여론마저 크게 나빠졌다.
 
이러한 중국 문제는 한국에게 더 까다롭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서방 진영에서 중국과 가장 인접한 국가이면서 경제적으로 높은 의존도를 보이는데, 한편으론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오랜 동맹국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정학적 특성은 그동안 추구했던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내려놓고 어느 한쪽을 선택할 것을 한국에 강요하고 있다. 물론 그동안 한국의 안보와 경제 발전에 가장 큰 도움을 제공했던 측이 어디인지를 되짚어보면 한국이 선택해야 할 쪽은 이미 정해진 듯하지만.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전략과 입장으로 대처해왔는가

전쟁 같은 극적인 변수가 한국 영토에서 발생하지 않았을 뿐, 한국을 둘러싼 대외 여건은 냉전 이후 상황과 비교해서 상당히 낯설어졌다. 아니, 낯설어진 정도가 아니라 완전 다른 세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런 정세를 증명하는 사례로 최근 몇 년동안 급격히 냉각된 한일관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한일 양국은 90년대 말부터 조성된 과거사 화해와 문화 콘텐츠 개방 등의 우호적인 조치를 주고받으며 완연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 이후에 이명박 前 대통령의 독도 방문 등으로 경색되는 순간도 없지 않았지만, 박근혜 정부 시기까지 양국의 교감을 통해 위안부 합의가 타결되는 등의 성과가 있었다. 이렇듯 문재인 정부 이전까지의 한일관계는 중간중간 위기 국면이 있었으나 느리게나마 개선되고 있었다.
 
하지만, 한일관계는 문재인 정부 시기를 기점으로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우선 2018년에 정부 차원에서 기존의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무력화 한 것을 시작으로, 하노이 실패와 2019년 초의 일본 초계기 저공비행 사건 등의 크고 작은 요소들이 겹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그러다가 2019년 7월, 일본 경제산업성이 한국을 포토레지스트 등의 주요 품목 3개에 관한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면서, 한일관계는 파탄에 이르고 말았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한국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일본 불매운동인 ‘NO JAPAN’ 구호를 내걸고, 정부는 그런 반일 감정에 업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라는 전략적 실책도 범했다. 물론 미국의 개입으로 그 이상의 파국으로 나아가진 않았지만, 정권이 교체된 지금도 한일관계는 여전히 냉각되어 있는 상태다.
 
그나마 한국 외교의 중핵인 한미관계라도 잘 관리했으면 모르겠지만, 이마저도 시원치 않았다. 문재인 정부 말기 한미회담과 정권 교체 이후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으로 얼핏 한미관계가 강화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펠로시 의장 패싱 논란이 발생하며 한국은 미국의 다른 우방과는 미묘하게 엇박자를 냈다.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신장 위구르 등의 인권 침해에 관한 규탄 결의 건에서도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자 서방 진영의 한 축으로서 확실히 보조를 맞추기보다 한 발 빼는 모습을 계속 보여줬다.
 
한국의 애매모호한 포지셔닝 전략은 스스로에게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곤 했다. 러·우전쟁 초기 미국의 대러 제재 명단에 포함되거나, 인플레감축법 대상에서 빠지지 못한 것이 바로 그 예시다. 이런 전략은 지정학적으로 불안한 조건에 놓여 있고 사회경제적 구조에서도 대외의존적인 성격이 높은 한국에게 오히려 불리함 가져올 뿐이다. 그런 현실과는 별개로, 한국에서는 정권의 성향을 막론하고 항상 ‘동맹과 우방을 중시하고 동북아시아에서 평화를 중재’하겠다며 나름의 역할을 자처해왔으나, 과연 그 역할을 담보할만한 충분한 고민과 성숙한 처신을 보여주었는지에 관해선 여전히 물음표가 붙는다.
 


 
적의 눈,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기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 때문에 그런 애매모호한 입장으로 자국의 입장과 위치를 위태롭게 만들었을까? 필자는 이에 관해 한국은 모든 외교적, 지정학적 사안을 지나치게 자국 중심 위주로 해석하는 경향을 꼽고 싶다. 다시 말해 자국 입장에서만 주어진 상황과 조건을 따져보려 할 뿐, 우방국 혹은 적성국가의 시선으로 자국의 현실과 위상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소홀히 해왔다는 것이다.
 
예컨대 북핵 문제를 보면, 한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한 동북아시아 평화를 외치지만, 그 동북아시아에 속하는 일본과 중국, 또 그들과 밀접히 연관된 미국과 대만 등의 속사정을 긴밀히 파악하는데 큰 관심이 없다. 북핵 문제는 한국에게만 위협 요소가 아니다. 한반도의 현상이 유지되지 못하면 일본도, 중국도, 미국도 모두 영향을 받는다. 냉전 시기에 비해서 영향력은 현저히 떨어졌지만, 북한과 여전히 가까이 교류하는 러시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이 다른 우방과 섬세한 보조를 맞추지도 않을 뿐더러 적성국의 사정 역시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데, 북핵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주변국들의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지도 않고, 북핵 문제 해결의 당위성과 합리성을 제대로 설득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만 외치는 평화 구호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
 
한국은 북핵 문제 이외에도 주변 정세 변화나 주변국의 인식과 무관한 듯이 행동 해온지 오래다. 중국의 부상을 막기 위해 미국이 동아시아로 회귀하는 오바마 정권 중반 즈음, 보수 성향 대통령은 천안문 위에서 중국의 전승절을 기념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탄핵 이후 집권한 진보 성향 대통령은 중국을 향하여 ‘높은 산봉우리’라 칭하면서 ‘중국몽과 함께 하겠다’는 말까지 내뱉었다. 이런 경우들은 한국 정치권이 자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성격과 특징을 가진 국가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다면 절대로 벌어져서는 안 됐을 일이었다. 이런 실책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국은 자국 중심적인 시야에서 벗어나, 우방과 적성국의 입장에서, 또 제3국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냉정히 평가·점검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맥락에서, 필자는 지난 70년간의 한미일 관계를 한국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에 있어 기본 참고 교재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국 외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국가인 미국과 일본을, 각각 한일관계와 한미관계로 따로 분리해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세 국가가 지난 70년간 어떤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해 왔는지를 되짚어보자는 것이다. 또한 한미일 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중국, 북한, 러시아 등의 적성 국가들은 어떻게 반응했는지도 점검해보는 것 또한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그런 관점에서 자국과 주변국, 적성국 간의 관계를 냉정하고 차분히 분석한다면, 앞으로 발생할 외교 안보 사안에서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에 중요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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