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당신 축하드립니다

일러스트=토끼풀

 
저는 28개월이 된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딸은 늑대와 돼지 삼형제라는 동요를 즐겨 듣습니다. 첫 번째 돼지가 짚으로 집을 짓자 늑대가 나타나서 후 불어버리고, 두 번째 돼지가 흙으로 집을 짓자 또 늑대가 나타나서 집을 날려버립니다. 세 번째 돼지가 마침내 튼튼한 벽돌로 집을 지었더니 늑대가 집을 날려버릴 수 없게 됐고, 그러자 늑대가 굴뚝을 통해 집에 침입을 하려다가 뜨거운 벽난로에 엉덩이가 빨개져서 도망가는 내용입니다.
 
지금보다 더 어릴때는 이 동요를 아무렇지 않게 따라하며 즐거워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 늑대가 나타나면 어떻게 하냐며 무서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동화책에서 본 늑대는 아주 새카만 색이어서 어떤 날에는 검은색을 보기만 해도 무서워하기도 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아이에게 우리집은 튼튼해서 늑대가 들어오지 못한다며 안심시켜줘야 했습니다. 아이는 늑대를 그렇게 무서워 했으면서도 늑대에 관심이 많습니다. 늑대 사진을 보거나 늑대 울음소리를 따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더니 이젠 늑대를 무서워하지 않게 됐습니다.

최근에 저는 퇴근한 후에도 전화가 올 때 가슴이 떨리고 불안하다는 교사 한 분을 진료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이제 막 학교에 배치된 신참내기가 아닙니다. 교단에 선지 10년이 넘어가는 중견이라고 불릴 법한 교사입니다. 그 분은 자신이 이렇게 불안해 한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것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학생들과 다른 교사들 앞에서는 늘 웃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분도 처음부터 심하게 힘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10년이란 시간 동안 학교에서 많은 일을 겪은 탓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루기 힘든 아이, 피할 수 없는 사고, 화부터 태는 학부모, 말이 통하지 않는 관리자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적을 수 없는, 심해지게 된 결정적인 사건으로 인해 심한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 분은 학교 안에서만 불안한 것이 아니라 일과 후에도 전화가 걸려오면 혹시 학부모의 항의가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휴일 마지막 밤에는 다음날 학교에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지금 교사라는 직업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만 둬야 하는지 선택의 기로 앞에 서있습니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을 정도면, 다른 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교사를 그만둘 수 있는 선택지가 있음에도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성격에 대해 탐색하기 시작하면서 그분은 자신의 성격과 힘든 이유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안은 정신과 의사인 저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저는 정신과 의사가 된지 1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저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왜 정신과 의사가 됐는지에 대해 여러번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의대생일 때에는 사람의 생명을 책임지는 외과 의사를 동경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종합병원에서 수련을 받으며 경험한 외과의사는 저에게 너무 버거웠습니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서있고 뛰어다닐 정도 였고 밥을 먹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고 쉬는 시간은 사치이며 심지어는 잠을 잘 시간도 별로 없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선배의사들이 경험하는 실패에 대한 압박감은 정말 커 보였습니다. 수술 중에 공중으로 솟구치는 피를 지혈하지 못하면 수분 내에 사람이 죽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라는 자긍심은 멋져보였지만 그 외의 것들을 제가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정신과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이런 압박감에서 벗어나고자 선택한 그런 과였습니다.
 

이런 제 생각과 다르게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죽음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의 자살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습니다. 자살하는 사람의 70%는 정신과적인 질병이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의 죽음에 많이 노출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진료를 보면서 “이제 그만 죽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환자들을 빈번하게 보게 됩니다. 실제로 제가 진료하던 환자분이 심하게 다치거나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 일도 있습니다. 그 후에는 환자의 보호자가 항의를 하고 가기도 하고 울거나 넋두리를 하고 가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제가 그 보호자의 주치의로 치료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정신과 의사를 10년 동안 하면서 이런 일을 자주 경험하게 되면서 저 또한 죽고 싶다는 환자분의 말에 덜컥 겁이 나고 불안해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한 말 한마디에 잘못되면 어쩌지? 내가 잘못 판단해서 치료시기를 놓치면 어떻게 하지? 만약 잘못됐을 때 나는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걱정들이 저의 말과 행동을 무겁게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것이 정신과 의사의 불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도 불안을 이기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죽고 싶다는 환자를 더 잘 진료하기 위해 시간이 날 때 공부를 하고, 동료 의사들과 세미나를 통해 지식을 공유합니다. 불안한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음악을 듣거나 글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진료 스킬이 좋아지고 무엇인가를 마음에 느끼기도 합니다.
 
불안은 아주 원초적인 감정입니다. 그래서 인간 뿐 아니라 동물도 불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위험에서 벗어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불안은 우리가 위험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저의 28개월 딸은 ‘늑대’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늑대를 무서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불안의 배경에는, 유아의 뇌가 만 3세 정도에 많이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감각, 인지, 정서가 발달하게 되면서 생생하게 보고, 듣고, 풍부하게 상상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경력 10년의 교사에게는 ‘사고라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인지하면서부터 불안은 심해졌습니다. 저는 ‘환자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라는 것을 인지하면서 불안이 심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불안을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를 인지하거나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여러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생존에 대한 불안, 부모를 잃는 것에 대한 불안, 사랑을 잃는 것에 대한 불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 죽음에 대한 불안 등 여러 종류의 불안이 있습니다. 어떤 불안은 스쳐 지나가기도 합니다. 어떤 불안은 오래 지속되며 삶의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너무 불안이 심하고 오래되어 병원을 찾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불안하다는 것이 꼭 무엇인가가 나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새로운 삶의 장면으로 진입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불안을 계기로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찾게 될 수도 있습니다. 불안을 이기기 위해 방법을 찾다보니 더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한 가지의 불안을 넘어가면 또 다음 단계의 불안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지금 당신이 불안하다는 것은 당신에게 새로운 기회가 온 것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불안한 당신,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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