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 : 투사 (Projection)
잘되면 내 탓이고 안되면 남 탓이다!
내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 우리는 남 탓을 한다. 50대 초반인 A 씨는 어릴 적 공부를 꽤 잘했다. 학교에서도 성적이 우수했었고 상위권에 있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와 강사로 활동 중이다. 그녀는 19살인 둘째 딸과 늘 갈등 관계다. 큰딸은 공부도 잘하고 좋은 대학에 바로 합격했다. 자유로움을 꿈꾸며 공부와는 담쌓고 지내는 둘째 딸과는 매일 전쟁이다. 꽤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 A 씨는 공부하지 않는 행동은 용납할 수 없었다. 딸이 왜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다고 상담할 때마다 불만을 토로한다. 그녀의 잠재된 무의식에는 놀고 싶은 마음을 억압하고 공부만 했던 자신이 있었다. 자신은 둘째 딸을 사랑하지만 오히려 딸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고 하고 옳다고 생각한다
‘투사(Projection)’는 자신의 마음 어느 한 부분의 불편함이나 인정하기 싫은 것들을 말한다. 누구나 상처를 회피하고 안정감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렇기에 방어기제를 쓰지 않는 사람은 없다. 투사는 자아도취적(정신증적) 방어기제에 해당한다. 투사 방어기제가 발동하는 이유는 자신이 선하고 정당하고 우월하다는 모습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내면에 부정적인 생각, 욕구, 충동을 외면하는 데서 비롯된다. 쉽게 말하면, 투사는 자신의 결점을 어떤 사물이나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다. 책임 전가의 모습이 다분히 보인다. 마음속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을 쓰레기통에 담는 그릇으로 다른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설화 중 <거울을 처음 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산골에 사는 여자는 청동거울을 남편에게 구해 달라고 말한다. 서울에서 남편이 청동거울을 사 오지만 부부 모두 처음 접해본 물건이다. 아내는 거울 속에 여자를 보고는 어디서 젊은 첩을 데리고 왔다고 화를 낸다. 그 말에 남편이 거울을 보니 웬 남자가 있어 아내가 낯선 남자를 원하였던 것으로 알고 분노한다. 부부가 거울을 들고 관가에 가지만 원님 또한 거울을 보고 그 안에 관복을 입은 관원이 있어 신관이 부임한 것으로 알고 놀란다. 부부와 원님은 거울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여지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거울처럼 투사는 자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고 옳다고 생각한다.
게슈탈트(Gestalt, 형태) 심리학에서는 “모든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고 말한다. 타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거나 말하는지 모두 나의 내면에 있다. 그 요소들이 거울처럼 되비치는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내면에 억압된 부정적인 감정이 많은 사람일수록 타인에 부정적인 면을 보게 된다. 더 자주 타인에게 분노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남에게 보이는 관심을 반만 줄여도 생이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보통 남에게 보이는 관심은 대체로 시기심, 의존성 등의 감정이 더 많기 때문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면, 자신을 직면하는 것이 힘든 사람이다. 본인이 보는 타인의 모습은 거울이다. 다른 사람에게 비춘 자신의 부정적인 면이 보여서 싫은 것이다. 사실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어두운 면과 마주해야 하는데 두렵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은 ‘그림자(shadow)’에 대해 말한다. 그림자는 어두운 인격의 한 부분이다. 어느 땐가 자신의 인격으로 인식한다고 해도 그것을 인정하고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일부로 수용하고 싶지 않은 거부감이 내면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생 초기의 경험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판적이고 애정이 없는 부모로부터 생겨났을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것만은 아니다. 자신 안에서 스스로 부정적인 사고의 충동이나 수치심, 당황 등 불편함이 나타나기도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을 타인을 통해 직면하게 되는 것이 두렵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스크린을 가지고 있다. 자기 마음에 떠오르는 영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객관적인 시각이 없고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주관적인 시각이다. 개인마다 자라온 가정환경과 부모 양육방식이 다르기에 스크린도 제각각이다.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특이한 모양을 하거나 비뚤어지고 부정적인 스크린을 갖게 되기도 한다. 남이 나에게 특별한 이유 없이 비난한다면 사실 그건 그 사람의 스크린인 셈이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스스로가 아닌 자신과 비슷한 타인에게 투사시켜 상처를 주려는 것이다. 이렇게 투사 방어기제를 쓰는 대상으로 인해 상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받고 안 받고는 사실 전적으로 내 몫이다. 예를 들어, 스스로 외모에 대해 만족스럽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자. 타인에게 외모에 대한 비하 발언이나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처받는다. 왜 상처를 받는 것일까? 타인의 말을 인정해서다. 외모에 대한 긍정적인 자기 신념이 확고하다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의 시각에서 보는 타인의 모습, 남의 말에 신경 쓰이는 나의 모습, 내가 타인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 등 모두가 투사로 귀결될 수 있다. 그렇기에 투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상처받는 것이다.
투사는 내가 용납할 수 없는 욕구, 생각 등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습을 오히려 상대방에게 떠넘긴다. 내가 화가 났지만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지 못하니 상대방이 화가 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왜 화를 내세요?’라고 말한다. 본인도 격양된 목소리와 화내는 말투로 이야기를 하지만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왜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지 못할까? 그냥 자신이 화났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50대 여성 A 씨처럼 말이다. A 씨는 자신이 둘째 딸을 미워하는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이 아닌 딸이 A 씨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투사의 주된 특징이 감정을 느끼는 주체가 바뀌는 것이다. ‘나는 너를 미워한다’가 ‘너는 나를 미워한다’로 바뀌거나 ‘나는 나 자신을 벌주고 있다’에서 ‘그나 나를 벌주고 있다’ 등의 형식으로 객관적 불안으로 바꿔버린다. 자신의 특성을 의식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 덧씌우는 행동이 가장 기본적인 투사의 형태다. 투사는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은 특성을 억압하려 한다. 동시에 타인에게 투사하여 마치 ‘내가 아니라 타인이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의처증, 의부증도 투사의 모습이다. 스스로가 부도덕한 성적 욕망을 가진 경우 자신의 욕망을 배우자에게 투사한다.
상대를 보고 내 무의식 속에 잠재된 것을 투사하는 것이다
타인이 잘못했을 때 자신이 말하는 습관, 행동, 충고는 자기의 무의식 속에 있는 투사적 측면이다. 타인이 잘못 했더라도 그에 대한 반응은 타인을 보면서 자신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것을 투사하는 것이다. 이때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덮어씌우게 된다. 그렇게 나타난 사고, 감정, 행동, 태도는 남의 것이 아니라 잠재된 내 모습이다. 심리학 박사 ‘헬렌 슈크만(Schucman, Helen)’의 <기적 수업>에 이런 말이 있다. “공격성과 심리적 투사는 필연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 투사는 항상 공격성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투사 없이 분노할 수 없다. 그것은 당신이 자신 안에 있는 그러나 원치 않는 무언가를 배척함으로써 시작되며, 이로 인해 당신은 형제들로부터 배척당하게 된다.” 결국 투사가 일어난다면 스스로 들여다보라는 말이다. 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투사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성숙한 투사는 공감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누구도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는 없다. 타인의 주관적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의 경험을 투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미성숙한 투사는 악성 적이다. 위험한 오해와 대인관계의 손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투사의 대상을 심각하게 왜곡하거나 투사되는 행동이 자신이라고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방해한다. 늘 남 탓하며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타인과의 관계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감정 쓰레기를 타인에게 떠넘기는 행동은 결코 성숙하지 못하다. 자신에게 좀 더 사랑과 관심을 주어야 한다. 불편한 감정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투사라는 방어막을 걷어내면 훨씬 삶을 긍정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이들은 필수적으로 공감 능력과 통찰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쓰고 있는 말투와 언어는 어떤지 점검해보자. 반복해서 사용하는 말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부정적인 언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면 그것부터 바꾸기를 실천해야 한다.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통찰을 통해 건설적인 믿음으로 변화되려고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