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거울이 된다는 것은

일러스트=토끼풀

 
구독자 18000명의 유튜브 채널을 3년 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에게 좋은 정신의학정보를 주기 위해, 친한 정신과 의사들이 모였습니다. 의사들이 직접 기획도 하고 대본도 만듭니다. 다들 바쁘지만, 진료가 끝난 늦은 밤에 만나서 촬영하고 있습니다.
 
초기 반응은 좋았습니다. 천 명이 되는데 7개월, 만 명이 되는데 거기에서 9개월 정도 더 걸렸던 것 같습니다. 다 같이 열심히 한 것도 있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유튜브가 폭발적인 성장을 보였던 것도 한 몫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성장세가 좋던 유튜브가 어느날부터 구독자와 조회수가 늘지 않는 상황이 됐습니다. 저희는 한계를 느끼고 저희의 영상을 좀 더 잘 기획하고 트렌드에 맞춰 제작해줄 영상 제작사를 찾았습니다. 정말 많은 미팅 끝에, 새로운 제작사를 섭외했습니다.

제작사 대표는 우리 채널을 성장시키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습니다. 새로운 소재와 형식을 우리에게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면, 원래 병원에서 촬영하던 영상을 차 안에서 촬영해서, 퇴근길을 표현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다른 정신과 선생님은 찜질방 컨셉에 맞춰서 수건으로 양머리를 만들고 영상을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썸네일과 제목 선정도 이전보다 훨씬 더 눈에 띄게 신경썼습니다. 저희도 제작사 대표의 새로운 제안들을 많이 수용했고, 대표도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줬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구독자와 조회수는 여전히 좋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수치상 더 안좋아진 듯 보였습니다. 제작사 대표는 더 많은 기획 회의를 하자고 했습니다. 기획 회의를 할 때마다 새로운 접근법을 우리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기획 회의가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는데는 큰 도움이 됐었지만, 수용하기엔 리스크가 큰 제안들이어서 받아들이지 못한 것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필사적인 노력에도 유튜브 조회수는 여전히 저조했습니다. 우리가 저조한 사이에, 경쟁 채널들은 멀리 앞서 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회의를 할 때마다 대표가 많이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때부터 대중들에게 재미와 정보를 선사하겠다는 처음의 초심은 사라지고, 유튜브가 짐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밤마다 조회수를 확인하고 잘 안된다는 것에 마음이 지쳐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어떤 환자가 떠올랐습니다. 저의 정신과 의원에 이런 리뷰가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가뜩이나 힘든데, 담당 선생님이 “왜 이렇게 낫질 않지”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불안한 제가 더 불안해졌습니다.’ 라는 리뷰였습니다.
 
제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마음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저희 힘든 마음이 제작사 대표를 초조하게 만들었고, 제작사 대표의 그런 행동이 다시 내 마음을 힘들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불평을 한 그 환자의 마음이 이해가 됐습니다. 제가 환자분들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는 것을 잊었던 것 같습니다. ‘아 내가 너무 결과에만 몰두한 나머지,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너무 힘들게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그 환자에게는 ‘00씨 우울증이 빨리 낫지 않아서 힘드시죠? 괜찮으신가요? 경과가 쉽게 나아지지 않아서 저도 마음이 좋지 않지만 같이 최선을 다해봅시다’ 라고 이야기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아정신분석가 위니코트(Donald Winnicott)은 초기 유아와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엄마가 자신의 아기를 볼 때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아기 속에서 보는 자신의 모습과 관계되어 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아기를 보며 기뻐하면 그것이 그녀의 얼굴에 반영되고, 아기는 엄마의 즐거움을 보며 자신도 즐겁고 좋다고 느낀다. 엄마는 아기에게 아기 자신의 자기를 되돌려준다.

“쳐다보니 엄마가 나를 보고 있네. 그래서 내가 존재하는 거야”

(Winnicott, 1971, p. 114).’ (Winnicott, D. W. (1967), Mirror-role of mother and family in child development. In: Playing and Reality. New York: Basic Books, 1971.)

 
위니코트가 설명한 것처럼, 아이는 태어난 후부터 본능적으로 부모의 얼굴, 표정, 목소리 등을 보면서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고,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소아정신과에서는 부모는 거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부모의 역할을 크게 강조합니다. 저도 진료실에서 늘 부모님들에게 하는 말이 아이에게 부모의 우울과 불안을 전가해서는 안된다고 아주 딱딱하고 근엄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말을 듣는 부모님들의 마음은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자녀가 힘들어서 정신과에 오게 된 것이 다 부모의 탓으로 여겨져 죄책감이 컸을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면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 같습니다. “아이가 좋아할 땐, 같이 좋아하셔도 됩니다. 곧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미리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가 슬퍼할 때는 얼마나 힘든지 물어봐주시고 같이 슬퍼하세요. 슬픔은 앞으로 찾아오지 않으리라고 애써 긍정적으로 말하지 마세요. 모든 문제를 부모가 없애줄 것처럼 말하지 마세요. 불운이 또 찾아올 수 있지만, 그건 그때 같이 생각하자고 이야기해보세요”
 
조금 더 확장하자면 타인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은 꼭 부모와 자녀 같은 관계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각자는 늘 다른 사람을 비추고 있습니다. 나의 마음은 연인, 친구, 동료, 직상 상사, 후배와 같이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거울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비추고 있다는 것으로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마음 거울이 구부러지거나 울퉁불퉁해서 내 주변 사람의 마음을 왜곡되게 비추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가 힘들어질 것이고, 그 힘든 마음은 다시 나에게 반사되어 내 마음거울을 더욱 휘어지게 만들 겁니다. 그래서 당신이 어떤 거울인지 점검해 보길 권유합니다. 내가 화난 것이 상대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 때문은 아닌지, 내가 너무 편협한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왜곡되지 않은 편평한 거울이 된다면, 상대의 웃음속에서 같이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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