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미술관 투어] 1. 마우리치오 카텔란

일러스트=토끼풀

 
“곧 돌아옵니다.” 라는 작은 팻말만 걸어둔 채 전시 기간 내내 한 번도 전시장에 나타나지 않은 작가가 있다. 그는 전시 종료 후 “첫 개인전이라는 공포에 짓눌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라고 말했다. ‘이것도 예술인가요?’ 라는 말보다 ‘미친 거 아냐?’ 라는 반응이 더 적절할 것 같은 상황이었다.
 

무제, 1989, ⓒ Maurizio Cattelan / Torno Subito는 이탈리아어로 ‘곧 돌아올게요’ 라는 의미이다. 1989년 이탈리아 볼로냐의 네온 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첫 개인전은 전시 기간 내내 문이 닫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이후로도 꾸준히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으로 유명세를 치르며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고 있다. 바로 2019년 세계 3대 아트 페어에서 12만 달러에 판매된 바나나 (작품명 Comedian)로 전 세계를 술렁이게 만든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 (Maurizio Cattelan / b. 1960)이 그 주인공이다.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는 7월까지 그의 첫 국내 개인전 <마우리치오 카텔란 : WE>이 열린다. 2011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치러진 회고전 <Maurizio Cattelan : ALL> 이후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다. 총 38점의 전시 작품 중 꼭 봐야할 작품 8점을 소개한다.
 



–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1960년 이탈리아 동북부 도시 파두아 Padua에서 태어나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각예술가이다. 트럭 운전사 아버지와, 청소부 였던 어머니 밑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요리사, 정원사, 간호사, 영안실 관리인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통해 일찍 세상을 경험하며 삶을 버텨냈다. 작가가 되고자 했던 이유는 단 하나. ‘좀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것 같아서’ 였다. 한 번도 미술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가구를 만들며 작업 활동을 시작했고, 영안실에서 배운 염하는 기술은 동물 박제 작품에 활용할 수 있었다. ‘마르셀 뒤샹’이후 가장 천재적인 작가라는 평을 듣는 그의 작품이 뒷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이유는 현재 우리 사회를 정확하게 비춰주기 때문이다.
 


 
1. 삶이 벅찼던 어린 시절, 미술은 그와 무관한 영역이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엄마를 누구보다 사랑하면서도 느닷없이 증오해본 경험이 있나? 어릴 때 우리 집은 아주 가난했고, 말을 잘 듣지 않는 나를 엄마는 매일 때렸다. ‘마우리치오, 네가 이랬지? 넌 매일 이 모양이잖아. 내일 또 그럴 거지?’ 하면서 말이다. 작은 아파트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고, 부모님은 물론 나 역시 디킨스처럼 일찍부터 돈을 벌어야만 했다. 15살 때부터 매년 여름 서너 달씩 꽃을 배달하고 거리에서 엽서를 팔았고 시장에서 짐을 날랐다. 17살 때부터는 학교 수업이 끝나고 공장으로가 저녁 7시부터 밤 11시까지 일을 했다. 돌아보면 내 어린 시절은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물론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었다면 작업을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간을 되돌린다면 난 그냥 평범하고 유쾌한 어린 시절을 택하겠다. 예술작품이 아무리 훌륭해도 어린아이가 겪어야 하는 슬픔과 상처는 그 자체로 너무 큰 고통이기 때문이다.” (<바자 코리아> 2009년 6월)
 

찰리는 서핑을 안 하잖나, 1997, 플래티넘 실리콘, 실리콘 페인트, 학교 책상, 의자, 강철, 옷, 신발, 연필 ⓒ Maurizio Cattelan

 
덩그러니 놓인 책상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아이의 뒷모습이 호기심을 자아낸다. 그러나 가까이 가면 화들짝 놀라게 되는 작품. 아이의 손 위에는 연필이 박혀있다. 학교와 어른들의 억압을 견딜 수 없었던 그는 학창 시절 동급생의 손을 볼펜으로 내리찍었고 그때의 경험을 작품에 녹아냈다. 삶이 너무 팍팍했다고 말했던 작가.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힘들었던 기억을 섬뜩하리만큼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어머니, 1999, 컬라사진 인화, 이탈리아 밀라노 카를루초가 컬렉션

 
기도하는 손이 땅속에서 솟아올라 있다. 작가는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사랑한 만큼 증오했던 존재가 어머니였다고 말했다. 그는 스물세 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비밀 장례식”을 열었다. 사랑한 만큼 증오하는 애증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무제, 2001, 플래티넘 실리콘, 에폭시 유리섬유, 스테인리스 스틸, 머리카락, 옷, 신발, 가변 크기, ⓒ Maurizio Cattelan

 
미술관 바닥을 뚫고 전시장에 몰래 잠입한 듯 머리를 불쑥 내밀고 있는 카텔란. 미술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미술관에 입성한 자신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유명해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2. 테이프로 벽에 붙인 것은 바나나만이 아니었다.

코메디언, 2019, 생바나나, 덕 테이프, 가변 크기, ⓒ Maurizio Cattelan

 
커다란 벽에 바나나 하나가 덩그러니 붙어 있다. 이 작품은 지난 2019년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 처음 등장한 이래 늘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별할 것 없는 바나나를 덕 테이프로 단순히 벽에 붙인 이 작품이 12만 달러에 팔렸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 작가가 퍼포먼스로 바나나를 떼서 먹어버렸다. 갤러리스트는 태연히 다음날 신선한 새 바나나로 교체했고, 이 이슈는 각종 패러디를 낳았다. 코메디언이라는 작품 이름보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바나나로 더 잘 알려진 작품.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미술 작품의 가치를 논하는 법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완벽한 하루, 1999, 알루미늄 위에 프린트, 258.1 x 191.8 cm, ⓒ Maurizio Cattelan

 
카텔란은 바나나 이전에 사람도 테이프로 붙인 적이 있다. 작품 판매에 온 신경이 가있는 갤러리스트에게 휴식을 제공하고 싶었던 카텔란은 1999년 갤러리스트 마시모 데 카를로(Massimo De Carlo)의 동의하에 그를 갤러리 벽에 테이프로 붙인다. 그러나 하루 종일 벽에 붙어 있어야 했던, 즉 작품이 되어야 했던 그는 결국 기절했고,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간다. 완벽한 하루라는 제목의 작품은 갤러리스트에게는 끔찍한 하루였을 것. 건강은 물론 작품 판매를 위한 행위가 가능한 시간마저 빼앗겼기 때문이다. 카텔란의 입장에서는 예술이 돈으로 거래되는 것을 막았던 완벽한 하루.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은 경매 추정가만 1억 5천에서 2억 5천만원에 달하며 예술과 자본의 공생관계가 결코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3. 풍자 속 지긋이, 묵직하게 던지는 한 방

아홉 번째 시간, 1999, 실리콘 고무, 머리카락, 옷, 십자고상, 돌 등, 가변크기. ⓒ Maurizio Cattelan

 
붉은 카펫 위로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가 운석에 맞아 쓰러져 있는 모습의 작품이다. 그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경력을 반전시킨 작품이라고 말했다. 해당 인터뷰에 따르면 특정 지역에서는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논쟁을 피하고자 바위를 제거하고 쓰러진 교황을 바로 세워 전시할 것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작품은 작가의 의도대로 전시되었고, 갤러리 총책임자와 국회의원 두 사람이 해임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작가가 권위를 다루는 태도를 보여준다. 종교의 이면에 가려진 인간의 욕망과 약한 모습을 그는 사실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모두, 2007, 카라라 대리석, 가변 크기, ⓒ Maurizio Cattelan

 
바닥에 나란히 9개의 대리석 조각이 놓여있다. 천으로 덮은 시신을 연상하게 하는 이 작품의 이름은 ‘모두’ 이다. 카텔란은 기념비에 자주 쓰이는 카라라 대리석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얼굴을 알 수 없게 만든 이 작품은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과 남겨진 이들 모두에게 익명의 죽음은 있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무제, 플래티넘 실리콘, 실리콘 페인트, 옷, 신발, 가변 크기, ⓒ Maurizio Cattelan

 
미술관 입구 한 귀퉁이에 누워있는 노숙자. 너무 자연스러워 발견하지 못했다면 전시 관람 후 다시 살펴보자. 실제 사람 같은 모습에 화들짝 놀라게 되는 작품. 무엇이 당신을 놀라게 했는가. 평소라면 한국 최고의 미술관 중 한곳으로 알려진 이곳에 노숙자가 자리할 수 있을까? 당신의 대답은? 삶과 예술의 간극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이다.
 
전시는 7월까지지만 이미 전시는 입소문을 타고 예약 전쟁을 치르고 있다. 작가의 유명세에 앞서 작품이 던지는 묵직한 비꼼과 사실적 현장은 보는 이들의 마음에 많은 질문을 던진다. 한 번은 꼭 봐야할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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