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자유민주주의 국제연대’의 전성시대

일러스트=토끼풀

 
비극적인 6.25 전쟁이 끝난 뒤, 남은 건 폐허와 가난뿐이었던 한국에, 자유민주주의 국제연대는 최후의 생명선이었습니다. 국제연합의 이름으로, 1945년 체제에 합의한 자유민주주의 17개국이 북한으로부터 무도하게 침공당한 한국을 구해주러 왔습니다. 이는 ‘유엔군’이 참전한 세계사 속 유일한 경우이기도 합니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많은 자유민주주의 우방국들이 한국에 물자를 원조해주거나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을 빌려 주었습니다.
 
물론 한일협정으로 얻어낸 식민지배에 대한 일종의 배상금이나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한 뒤 얻은 돈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직접적인 도움 외에도, 자유민주주의 우방국들은 자신들의 시장을 기꺼이 한국의 수출품에 개방해 주었습니다. 한국 경제는 그덕에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생존 그 자체가 얼마든지 위태로워질 수 있는 냉전기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불과 15년밖에 안되었던 1968년에는 무장공비가 서울에 침투했습니다. 북한과의 군사적 긴장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습니다. 1983년에는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의 미사일에 격추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북한은 테러 활동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버마를 방문한 한국 대통령 일행을 암살하기 위해 북한측이 아웅산 묘소에 폭탄을 설치해서, 우리측 고위인사 17명을 한꺼번에 폭사시킨 일도 있었습니다. 김포공항을 파괴하기 위해 여러 공산국가들 및 국제 친공산 세력의 협조를 받아 폭탄테러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위태로운 냉전의 최전선에 있는 한국을 지켜주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진영은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일본의 나카소네 내각은 ‘안보 비용’의 명목으로 한국에 40억 달러를 지원하여 그 돈으로 서울 지하철 2, 3, 4호선 등 당시에 몹시 필요했던 각종 인프라를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군부에 저항했던 민주화 세력까지 어느 정도 우방국들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언론매체에서는 한국의 인권탄압 상황을 꾸준히 보도했고, 많은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서방국으로 망명해서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국, 일본, 바티칸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1987년 시민항쟁이 절정에 달했던 순간에 미국은 시민의 손을 들어주었고, 한국 군부에 정치적 압력을 가해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도록 했습니다.
 
살벌한 체제경쟁 끝에, 냉전은 1990년을 전후해 종식됩니다. 그 덕에, 멸공을 부르짖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한국사회도 다소간 벗어나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냉전기 국제경제 체제의 도움을 받아 빠른 경제성장을 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이전까지의 강대국들과 달리 자신의 해양패권을 전세계의 해상무역로를 보호하고 자유무역을 증진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중국, 동유럽, 러시아와 그 주변 국가들, 베트남, 인도 등 그동안 폐쇄경제였던 국가들도 개방되었습니다. 한국은 이 신흥 국가들을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한 생산 기지와 한국의 수출품을 판매하는 시장으로서 잘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념 및 체제 대결이 사라진 탈냉전기가 30년 정도 지속되자,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들은 차츰 가치에 입각한 국제연대를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특정한 가치와 신념의 이름만으로 사람들이 단결하는 상황은 명확한 적이 있어야만 찾아옵니다. 누군가를 적으로 두지 않고도 모든 인류가 연대하는 이상적인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세계는 쉽게 오지 않습니다.
 
인간은 피아구분과 이분법, 종족주의와 정체성정치에 오랫동안 체질적으로 익숙한 생물입니다. 최근의 진화생물학 연구들은 혐오, 배제, 타자화는 원시인류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며 공존은 고도로 자신을 수양한 문명인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타적 행동이나 자발적 협력의 본능도 있기는 하지만, 이조차도 자주 내집단을 향해서만 차별적으로 발휘된다고 합니다. 이른바 ‘선택적 공감’의 한계이지요.
 
그렇게 가치연대가 사라진 자리를 채운 것은 이익동맹입니다. 이익동맹의 논리로 국제정치가 진행되는 세계는 고대부터 1945년까지 인류 역사의 거의 전부를 차지했습니다. 한반도에 있던 과거의 국가들은 그런 세계 속에서는 자주성을 지키며 생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북방으로부터의 침공이나 중국으로부터의 압박이나 일본으로부터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롭기가 어려웠습니다. 언젠가부터 이웃 강대국을 상전으로 모셔야만 했습니다. 정복과 방어의 현실주의 국제정치가 극단적으로 발전해 제국주의와 파시즘이라는 파국을 맞았고 그제서야 세계인들은 평화와 공존의 필요성을 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1945년 체제는 냉전이라는 대립 속에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중성을 보여줬습니다. 1990년대에 탈냉전 체제가 오면서 드디어 온전한 국제평화가 올 수 있다는 낙관주의가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합니다. 한국은 이러한 현대 국제체제가 내려준 은총을 통해서 안보를 지킬 수 있었고 경제. 정치. 사회발전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탈냉전의 국제적 안정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안일한 사고에 빠져들게 된 것 같습니다.
 
1년 전,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강대국 러시아가 이웃의 약소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부차 학살과 같은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던 유대인 할아버지는 러시아군의 포격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참극을 목도한 선진 민주주의권의 시민들은 인류가 언제든 1945년 이전의 야만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고전적인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인류를 야만으로부터 지켜야 하는 투쟁의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세계가 이렇게 오랫동안 평화로웠던 적은 거의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통해 평화를 지키려 했던 1945년 체제는 아무 때나 찾아오지 않는 귀한 것입니다. 현대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제연대로부터 많은 수혜를 입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보답해야 할 때입니다. 규범 기반 국제질서 하에서 생존했고 많은 이득까지 보았던 나라가 지금과 같은 순간에 이익우선주의를 택하는 국가적 내로남불을 시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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