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캠페인의 세계] 서론

일러스트=토끼풀

 
옛날에는 정치인의 스피커가 무지 크고 단단했다. 정치인이 되기만 하면 모든 말이든 할 수 있었다. 정치인만 되면 발언권이, 마이크가 알아서 쥐어졌다. 말을 하면 신문과 방송에 나왔고, 신문과 방송은 사람들의 유일한 채널이었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모두가 똑똑해졌다. 대부분의 사람이 별다른 훈련이 없이도 키오스크를 이용해 음식을 주문할 수 있게 됐고, 은행에 가지 않고도 웬만한 업무는 각자 볼 수 있게 됐다.

AI가 발달하면서 많은 직업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은행원이 위기이고, 요식업장의 종업원이 위기라고 이야기한다. 교사도 위기고 회계사도 위기란다. 하지만 정치인이 위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치인도 위기다. 말의 위기다. 정교한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에 소위 저자에서나 떠들던 사람이 발언권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별다른 콘텐츠가 없어도 정치인이라면 그 말을 받아적어 주던 뉴스가, 이제는 유튜버의 말을 받아적기 시작했다.
 
쌍방향 소통은 어떤가. 정치인이 허튼소리를 하면 몸을 던져 저항하는 것 외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할 수밖에 없던 TV와 신문의 시대가 있었다. 이제 검열은 없어지고 소통이 생겨났다. 정치인 페이스북에 댓글을 달 수도 있고, 암암리 떠도는 정치인 휴대폰 번호로 욕 문자를 보내는 참여자도 많다.
 
콘텐츠 없는 정치인은 숨을 데가 없어졌다. 정치인이라는, 국회의원이라는 감투 때문에 누군가가 그의 말을 받아적어 주는 시대는 갔다.
 
왜 이런 구닥다리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걸까? 미래는 진공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트렌드의 위에 있다. 알고리즘은 점점 더 정교해질 것이고 재미있는 유튜버들은 정치인의 말을 빼앗아 갈 것이다.
 
당신은, 그리고 당신이 모시는 그 의원은 사람들의 감각을 사로잡을 수 있는가? 깊고 긴 정치의 맥락을 이해하기보다는 짧고 감각적인 말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끌린다. 삶이 텁텁한 사람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좋은 시민’이라고 설교해서는 안 된다.
 
시대는 엄중하고, 의원은 옛날 사람 그대로 머물러있다.
 
자, 중간에서 이 둘을 이어야 하는 당신.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전에, 왜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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