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척을 상상하는 일

일러스트=토끼풀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아 한참을 뒤척였다. 딱딱하고 좁은 침대나 낯선 벽지보다도, 벽 하나 건너에서 느껴지는 누군가의 인기척이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얇은 벽은 자세를 바꾸다 살짝 부딪치기만 해도 울렸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유난히 시끄럽지 않아도 괜히 마음이 소란했다.
 
편의점이라도 다녀올까 생각했지만 이내 관뒀다. 문을 열고 나가면, 한밤중의 복도로 내 발자국 소리가 울릴 게 뻔했다. 그 소리에 누군가는 잠에서 깨기도 할 것이다. 그게 마음에 걸려 억지로 눈을 감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이불 속만큼이나 밤이 깊었다.

노트북이 든 가방 하나 메고 서울에 왔다. 짐이 가벼워야 떠나기 쉬울 것 같았다. 다른 회사로의 이직이 결정되어 있었는데, 미리 집을 알아볼 여유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부산에 있는 동안에는 회사 업무와 개인적인 일들만으로 버거웠다. 퇴사 후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하기까지 연휴를 포함해 일주일 채 안 되는 시간이 있었기에 무리해서라도 그동안 지낼 곳을 찾아보려 했다. 사실 별다른 수가 없기도 했다.
 
며칠 동안 친구 집에 머무르며 하루 종일 부동산을 돌았는데 마땅한 집이 없었다. 대학 학기가 채 끝나지 않은 시기기도 했고, 연말이 코앞이라 매물 자체가 많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너무 먼 동네로 가자니 출퇴근에 얼마나 품이 들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전세대출 승인에 문제가 생겨 한 달 정도는 대출도 안 나왔다.
 
난감하네. 낯선 동네 낯선 카페에서, 왠지 익숙한 산미가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뿌리 내릴 곳이 없으니 물을 마셔도 목이 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공책에 내 상황을 하나씩 적어보았다. 언제까지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질 수도 없었으니, 대출이 승인될 때까지라도 지낼 곳이 필요했다.
 
결국 한 달만이라도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당장 지낼 수 있고, 주변이 정리되었을 때 빠르게 나갈 수 있으니 최적이었다. 결정했으니 다음 날은 온종일 근처 고시원을 돌았다. 여덟 군데 정도를 방문하고 입주일과 가격, 위치와 생활환경이 나쁘지 않은 곳을 하나 찾았다.
 
텅 빈 방에 가방을 두고, 침대에 걸터앉아 잠시 멍하니 있었다. 침대를 제외하면 책상과 의자, 작은 서랍과 그 위에 놓인 소형 냉장고가 전부였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이었다. 혼자 지내는 것만 제외하면 고등학교나 공장에서 일할 때 지내던 기숙사와 비슷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방향조차 헷갈리는 낯선 동네보다 차라리 좁은 방이 편했다.
 
다음은 뭘 해야 할까. 그래, 필요한 것들을 사 와야지. 텅 빈 채로 계속 지낼 수는 없으니 세면도구나 수건 같은 것들을 사 와야지. 그런데 막상 목록을 적어보니 그다지 많은 게 필요 없었다. 부산에서 원룸을 정리할 때는 그렇게나 짐이 많았는데, 삶이 원래 이렇게 단순한 거였나 싶었다.
 
사람이 사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게 필요하지 않은데,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게 필요했다. 그 간극이 예상보다 훨씬 컸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살 만하다’는 숨을 돌리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상태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늘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버틸만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나의 ‘살 만하다’는 여기서 저기 사이, 그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고시원에서 지낸다고 하면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많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고시원은 나에게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개인적인 사정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돌아가는 사회에서, 나는 겨우겨우 차오르는 불안을 짓누를 뿐이었다. 그런데 불안이 밀고 들어오는 문은 항상 미래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건 불안과 싸움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줄다리기 같았다. 불행은 오히려 그런 역설에서 왔다.
 
‘고시원에 사는 게 불행했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고시원은 꽤 살만했다. 휴게실과 화장실, 공용 샤워실은 잘 관리되어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온수도 상시 나왔고, 난방이 중앙 제어였지만 야박하게 작동하지는 않았다. 그 한편의 안정감 덕분에 낯선 동네에 적응하며, 새로운 회사에 출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다시 주변 전월세의 매물과 시세, 그리고 ‘전세 사기 방지법’ 같은 정보를 찾아봤다. 그즈음 갭 투자로 인한 전세 사기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본격적인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언론에선 연일 보도가 이어졌고 인터넷에는 온갖 종류의 ‘주의사항’이 쏟아졌다. 안정감이 절실했음에도, 미래를 계획하기 위해선 불안이 밀고 들어오는 문을 열어젖혀야 했다. 그때마다 숨이 막혔다. 감당할 수 없는 불안일수록 더 심했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주의사항’을 모두 지켜도 사기를 원천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누군가 사기를 치려고 마음만 먹으면, 서류는 위조되고 명의는 도용됐다. 보증금을 돌려받을 대책도, 정부의 피해자 구제방안도 마땅치 않았다. 지금 내가 모아둔 돈을 다 잃으면 어떻게 될까? 전세 대출 몇 천만 원이 온전히 빚이 된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러 또 혼자 낯선 동네를 뛰어다니며, 나는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상상이 폭력으로 치닫기 전에 생각을 멈췄다. 빨리 자자, 내일도 출근해야 하니까.
 
나는 예상보다 고시원에 더 오래 머물렀다. 아예 전세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돌렸기 때문이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손해겠지만, 그 비용을 감수하기로 했다. 자신의 안위를 운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신뢰를 잃어버린 사회에서 불안은 개인의 몫이 됐다. 불안은 당장의 삶을 파괴하지는 못해도 점점 썩어 문드러지게 했다. 시간이 지나면 삶은 아예 삭아버려서, 작은 충격에도 금방 찌그러질 터였다.
 
침대에 누워 부동산 어플을 보다 생각했다. 나는 또 당사자가 되었구나. 그리고 아마 평생 그러지 않을까. 교육이나 노동, 주거나 일자리, 더 나아가 경제나 기후 위기 등 이름만 바꾼 문제들이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정의할 것이다. 그럴수록 고시원이 괜찮냐고 묻던 수많은 질문에 나는 반대로 묻고 싶었다. 고시원을 벗어나면 정말 괜찮은가. 아니, 우리는 한 번이라도 문제에서 온전히 벗어나 본 적이 있는가. 다른 자아가 비대해 다소간 눈을 가리고 있을 뿐. 당신에게도 문 밖으로 나오지 못한 약자로써의 자아가 있지는 않을까.
 
내가 가방 하나 들고 서울에 왔을 때, 어떻게 그러냐고 걱정하던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래야 했다. 모든 불안을 마주하고 있으면 당장 오늘을 살아갈 수 없었다. 차라리 바보처럼 보여도, 앞뒤 안 가리고 무식하게 부딪혀야 했다. 주거든 노동이든 뭐든 간에, 사회문제를 몸으로 밀어내야 앞으로 갈 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 불안할수록 계획할 수 없는 미래.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과 용기, 비용을 지불해야 겨우 한발씩 나아갈 수 있는 삶. 약하기 때문에, 더 강해져야 한다는 역설.
 
어쩌면 그 역설이야말로 ‘살 만하다’의 본질에 가깝지 않을까 싶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합리적이고 신뢰 가능해야 삶이 살 만하다. 그러니 삶을 이해하기 위해선 개인의 부재뿐만 아니라, 개인을 둘러싼 모든 것의 부재에도 주목해야 한다. 개인에게 노력이나 용기, 의지에 대한 요구만큼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요구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나간 방을 다른 누군가가 채울 거라는 당연한 사실, 그 인기척을 상상하는 일에서부터, 삶에 대한 논의는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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