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정치적 중립은 없다

일러스트=토끼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데 실재한다고 믿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교육은 정치적으로 중립이어야 한다”는 말이 그렇다. 이 말의 요점은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데 정치적인 요소가 들어가지 않고, 초당적인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꽤 그럴듯하게 들린다. 옳은 말인듯하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환상이고 신화다. 그런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발생하는 교육은 물론, 인간이 결정하는 교육제도, 예산 분배, 현안에 대한 문제해결책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이를 행하는 인간 자체가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이란 무엇인가? 정치적인 인간은 이해관계를 다룬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자의 합리성을 구축하며 살아간다. 여기에는 반드시 개개인의 이해관계와 편향성이 작용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해관계는 반드시 물질에 국한된 게 아니다.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누군가는 이보다 이웃과 공동체를 배려하는 데 좀 더 비중을 둔다. 어느 쪽이든 정도의 차이다.
 
단지 대화를 나눔으로써 각자가 갖고 있던 제한된 세계를 넓혀나가는 것이다. 물론 나와 다른 합리성을 가진 사람과 소통하는 일은 꽤 피곤하다. 그렇기에 나와 비슷한 사람과 대화하며 확증을 굳혀가기도 한다. 나아가, 개개인에게 작용하는 관계/권력도 합리성 구축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교육은 이러한 정치적 인간이 행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 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의 근거는 헌법에 기반한다. 헌법 제31조 제4항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하도록 명시했다. 이에 교육기본법 제6조 제1항은 교육이 교육 본래의 목적을 다해야 하며, 정치적·파당적·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헌법에 편입된 과정은 1963년 제6차 헌법 제정 당시, 학교에 대한 정치적 간섭이 극심했던 배경에서 기인했다.
 
지금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행정 권력의 교육에 대한 부당한 개입을 방어하기 위한 의미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박대권 외, 2020). 헌법과 법률에서 보장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교육의 목적을 행하는 데 있어서 부당한 권력의 간섭을 막는 것이다. 즉 정치적 존재인 인간의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교육적 실재를 가정한 것이 아니다.
 
정치적 인간은 교육정책 결정에서 첨예하게 대립한다. 대개 사람들은 “교육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말을 “교육에서 정치성을 원천 배제해야 한다”는 말로 쉽게 오해한다. 교육은 모든 국민이 인격도야·자주적 생활 능력·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어, 인간다운 삶·민주국가의 발전·인류 공영을 실현함을 목적으로 한다(교육기본법 § 제2조).
 
그런데,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이다.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각자 다른 철학과 교과목을 가르치는 교수,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 자신이 전공하는 바를 국가교육과정 또는 교육부 사업에 반영하고자 하는 교수, 누구보다 입시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교육 시장, 재선을 노리는 교육감 등 가지각색이다. 모두 각자의 이해관계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여러 행위를 한다.
 
교육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환상을 깨자.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나’의 옳음과 ‘너’의 옳음이 있을 뿐이다. 자신의 옮음이 목적 달성에 타당한지 설득하고, 실현이 가능하도록 실력을 갖추자. 이해관계자들의 진의를 간파하는 통찰력을 기르자. 자신의 편향성을 인지하고 더 나은 대안은 무엇인지 탐색하는 충분한 시간을 갖자. 그 중심에 학습자의 총체적 성공을 두자.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논쟁이 사라진 공간을 다른 대안적 교육 이슈로 풍성하게 채우자. 더 나은 사회와 학습자를 위한 대안으로 토론하자.

글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