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화 이후의 민주주의 연재를 시작하며

일러스트=토끼풀

 
<민주화와 저출산 절벽: 한국민주주의의 진정한 기원과 위기>
 
이 연재는 최장집 교수의 저서, (해당 책에서는 “원서”라고 칭함) 를 비평하는 것이다. 이 책은 내가 UC버클리 정치학과에 재학하던 시절, 한국어 원서를 구하려 LA 시내 수입 책방을 기웃거리던 내가 가장 먼저 접한 한국 정치 관련 저서이며, 대중을 상대로 한 한국 정치의 입문서로서 작성된 책이다. 나는 내가 애정을 담아 읽은 이 책을 비평함으로써, 나의 한국 정치에 대한 전반적인 견해를 정리하려고 한다.
 
이 연재는 앞으로 와 같이 4개 부분으로 구성될 것이다.
 
(1) 첫 번째 부분은 우리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한국 민주주의와 언론이나 여러 책에서 공통으로 언급되는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들에 대해서, 저출산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비평할 것이다. 물론 원작자와 내가 시대의 문제점을 바라보는 관점은 대체로 비슷하며, 따라서 큰 비평의 필요를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가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틀의 한계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원서가 쓰인 지 10여년이 지났으므로 보완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2) 두 번째 부분은, 한국 민주주의의 근본적 기원에 대한 비평이자 기존 견해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줄 예정이다. 나는 원서와 달리, 한국 민주화 운동이 처해있던 환경에 대한 분석에 집중할 예정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결과적으로 “조숙한 민주주의”라고 결론지었지만, 나는 이 두 번째 부분에서 왜 한국 민주주의가 그러한 “조숙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는가를, 그러한 한국 민주주의의 모습을 조숙하다고 쉽게 결론지을 수 있는가를 비평하려고 한다.
 
(3) 세 번째 부분은 한국의 자유화 이후 민주주의가 어떠한 장애물에 부딫치고 있으며, 한국의 비자유주의적 토양이 어떻게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적 원칙들과 부딫치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특히 난 이 장에서 저출산에 대한 부분을 조명함과 동시에, 와 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것이 우리 비자유주의적 토양과 상호작용하는지 이야기하려 한다.
 
(4) 네 번째 부분은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이곳에서 나는 우리가 무시했던 제 3세계와 중국, 그리고 동유럽의 반자유민주주의 움직임, 그리고 유럽과 미국에서의 대안 우파들이 야기한 정치적 실험에 대해서 언급하고, 대한민국의 현행 체제가 나아가야 할 여러 가지 롤 모델에 대해서 언급한다.
 
오늘날 정보화는 세상을 바꿔놓았다. 여성은 자신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으며, 빈자는 부자가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알게 되었다. 들은 자신보다 몇십년 앞서 그 길을 간 사람들이 당하는 산전수전을 생생하게 알게 되었고, 그 결과 의대에 몰린다. 자유화된 사회는 유교적 가족, 기독교 등 지난 세기의 가치체계를 빠르게 무너트렸고, 그 틈을 타 물질주의 가치관은 빠르게 전통 가치관을 대체했다. 그 이면에는 자유화된 사회가 청산하지 못한 집단주의적 문화, 아시아 특유의 비종교적인 성향도 있었을 것이다.
 
우수한 학생들이 자신의 꿈과 이상을 추구하기보다는 금전적 보상을 보장하는 의대에 몰리는 것과 같이, 오늘날의 정보화는 자유주의가 주는 가장 큰 장점인 “생산성”을 붕괴시키고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오늘날의 시대상을 고려해 보았을 때, 원서는 한국 민주주의의 오작동에 대한 상세한 관찰과 분석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그의 책은 스스로를 틀에 가둠으로써 공허한 해결책만을 도출하고 있다고 본다.
 
원작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독자들에게 주문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민주화 이후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는 회의적인 질문이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그치지 말고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또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함께 제기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원서에서 원작자가 독자들에게 주문한 사항에 부응하여 그의 책의 독후감으로서 라는 제목으로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또한 나는 이 연재를 진행하며, 선학을 비판하려는 목적이 아님을 강조한다. 한국 정서상 선학(先學)을 비판 및 비평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되게 조심스러운 일이며, 필자는 아직 석사과정,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정치학도이기 때문이고, 원전의 저작자는 국내 정치학계에서 이름이 높은 석학이기 때문이다.
 
선학들은 선학 나름대로 자신의 시대 속에서 자신의 문제와 싸운 사람들이다. 그들이 연구자로서 첫발을 내디디며 박사학위를 받았을 시기는 자유주의의 낙관과, 통합된 세계에 대한 확신, 그리고 발전된 서구 자유민주주의 질서가 주는 효율성과 풍요가 연구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선학들은 그 시대의 향기 속에서 자라났기에, 나는 선학들이 그 시대를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백분 이해한다.
 
그러나, 석사과정생으로 정치학 도제의 길의 초입에 들어서지도 못한 내가 미숙한 상태로 이 연재를 서두르게 된 이유는, 선학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그 결론을 신앙처럼 따르는 나의 또래 연구자 지망생들이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해서이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기원전의 신학자들보다, 오늘 그들의 결론을 그대로 신앙시하는 종교인과 유사 과학자들이 더 문제이듯이 말이다.
 
급격한 시대변화는 정치학자들에게 이전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급격한 변화를 강요하고 있기에, 정보화 시대의 정치학자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엄청난 과제를 부여받은 셈이다.
 
예를 들어, 정보화 시대 이전, 권위주의의 폭정에서 신음하던 시대의 정치학과 달리, 오늘날의 한국의 정치과학은 더 이상 추종할 롤모델이 없다고 생각한다. 발전된 정치적 모델이든, 아니면 미숙한 정치적 모델이든 상관없이 정보화란 큰 파도는 빌딩의 옆면을 위층이든 아래층이든 똑같이 후려쳤기 때문이었다. 50대든 80대든 20대든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이상 똑같이 정보화 물결을 후려맞았듯, 정보화 앞에서는 우리가 우러러보는 미국과 서방을 포함한 모든 국가가 똑같이 정보화가 만들어내는 재앙을 맞이하고 있다. 오늘날 언론 속에 오르내리는 은 그저 재앙의 초입에 불과할 것이다.
 
선학들의 인식 속에서의 “선진 정치체계”가 북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자유민주주의와 탄탄한 시민사회와 같은 자유주의적 가치에 기반한 무언가였다면, 오늘날의 정치학도가 인식해야 할 “선진 정치체제”는 이 정보화가 만들어내는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효율적 구조를 갖춘 정치체제여야 한다.
 
그러니, 나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에 대한 정치학적 해결책을 도모하는데 필요한 정치학적 사유에 있어서 만큼은 기존 의회민주주의의 틀을 깨부수고, 인간의 신성성에 기반한 천부인권과 같은 “비과학적” 이거나 “법률적” 요소에 구애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고정된 틀 때문에, 우리의 관찰 대상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우리가 효율적이고 공정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참고해야 할 나라들이 한정되어 있었지만, 오늘날 정보화가 야기한 재앙에 똑같이 마주한 세계 각국은 너무나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자유민주주의 체계 속에서 사는 우리에게 큰 정치학상의 인사이트를 줄 수 있다.
 
피로 이룩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저출산과 저성장의 늪에 빠졌지만, 오히려 우리나라가 처한 시대적인 상황을 인식하고 철저한 관찰과 함께 우리나라에 맞는 모델을 도출한다면, 어느 나라보다 빠른 체질 개선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미래에 대한 낙관에 차 있지도, 미래를 비관하지도 않으려고 한다. 그저 과학자로서 가치중립적으로 바라보고 예상하려 할 뿐이다)
 
원서는 서론에서 밝히기를 “민주주의는 똑같지 않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다르고, 유럽의 민주주의가 다르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실천하고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한국 민주주의 미래는 열려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 연재를 통해 오늘날의 정치학도와 시민들에게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기대한다.
 

글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