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인어공주를 위해 투쟁하는 다른 방법

일러스트=토끼풀

디즈니가 동심이 아닌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최근 디즈니는 영화 속 인어공주 역할을 흑인 배우인 ‘핼리 베일리’에게 맡겼다. 미국뿐만 아니라 서구화된 세계 전체가 흑인 인어공주를 환영하는 쪽과 혹평하는 쪽으로 나뉘었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혹평하는 쪽은 디즈니가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원작을 훼손한다고 공격했다. 배우의 외모와 작품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혹평하는 쪽의 심정도 이해된다. 누구나 소중히 여기는 상징을 훼손당하면 분노를 느낀다. 일본인이 태극기를 불태운다고 생각해 보자. 인어공주도 같은 수준의 분노를 유발할 수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성공 덕에, 백인 인어공주는 글로벌한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붉은 머리와 하얀 피부를 가진 인어공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징적인 추억이고, 디즈니는 자신이 퍼뜨린 상징을 스스로 훼손했다. 항상 동심을 자극해 온 디즈니가 사람 심리를 무시하는 듯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여기에 기름을 끼얹은 게 디즈니의 대응이었다. 디즈니의 또 다른 채널인 프리폼은 ‘불쌍한 영혼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글로 분노한 소비자를 도발했다. 덴마크인이 흑인일 수 있으니 인어공주도 흑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미국 콘텐츠 기업처럼, 디즈니도 소비자를 가르치려 들었다. 디즈니는 사회정의를 가르칠 입장이 아니다. 불평등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소득을 과점하면서 사회정의를 이야기한다면 모순이다. 이런 위선이 사람들의 분노를 부추겼을 것이다.
 
하지만, 흑인 인어공주가 분노만 남긴 것은 아니다. 양보 없는 문화 전쟁의 시대에, 디즈니는 시장경제를 활용해서 평화롭게 싸울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미국에서 정치적 올바름 지지자는 사회정의전사(SJW)라고 불린다. 무분별하고 과격한 집단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불쾌함을 줬기 때문이다. 사회정의전사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 보이는 작품이나 역사적 인물의 동상을 훼손하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교수를 학계에서 내쫓으려고 강의실을 점거하는 일도 자행한다. 심지어 정부를 움직여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발언을 규제하려 한다. 그야말로 사회정의전사는 현대판 홍위병이다.
 
사회정의전사의 투쟁 방식은 비합리적이다. 민주사회에서 모든 변화는 최대 다수의 마음을 움직일 때 달성된다. 단순히 선거일에 다수표를 얻으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단순 다수결로 달성한 변화는 다수결로 폐지하면 그만이다. 사회 변화의 핵심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그런데, 사회정의전사는 너무 많은 사람을 불쾌하게 했다. 민주적인 소통을 거부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모조리 배척했다. 그 결과, 미국은 트럼프 당선이라는 거대한 반동을 체험해야 했다.
 
나쁜 결과를 산출한 방법을 반복하는 사람이 합리적일 수는 없다. 편견에 저항하고 싶다면, 방법을 바꿔야 한다. 사람들을 가르치려 들기보다, 사람들이 스스로 바뀌도록 유도해야 한다.
 
구체적인 전략은 이렇다. 시장경제는 불평등한 민주주의 경제다. 누가 무엇을 생산할지 결정할 때 모두가 참여할 수 있지만, 사람에 따라 투표권이 다르게 분배된다. 여기서 투표권은 소득이다. 소비자는 소득을 지출해서 기업을 고를 수 있다. 구매 행위가 곧 투표인 셈이다. 여기서 만약 더 많은 사람이 보다 균등하게 소득을 분배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여성, 흑인, 성소수자가 무시할 수 없는 소비자층이 된다면, 이윤을 위해 매우 실용적으로 움직이는 기업은 어떻게 대응할까?
 

블리자드 社의 게임, 오버워치

 
우리는 디즈니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봤다. 디즈니는 소득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상황에서도 여성과 흑인을 위한 콘텐츠를 생산했다. 디즈니뿐만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스타크래프트로 익숙한 블리자드나 어벤져스 시리즈로 유명한 마블도 새로운 소비층을 공략하기 위해 움직였다. 최근에는 기존의 날씬한 모델이 아니라 평균적인 체형의 모델을 앞세운 의류 광고도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주도 식당들이 아랍인 관광객을 위해 자발적으로 힐랄 인증을 받았다. 이처럼 기업은 소비자를 따라 움직인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문화를 바꾸는 결정적인 힘을 쥐고 있다. 그런 기업이 새로운 소비자층을 공략하기 위해 광고 모델을 바꾸고, 회사 내규를 바꾸고, 상품의 스토리텔링을 바꾼다면, 자연히 새로운 문화가 사람들의 일상이 된다. 한국 엔터테이먼크 기업이 케이 팝을 전세계 사람들의 스마트폰에 집어넣은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콘텐츠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밖에 없게 되고, 취업이나 사업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시장에 적응하려 노력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경제적 평등을 앞세우면 고압적인 문화 전쟁을 벌일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다. 미국인 입장에서, 조지 워싱턴을 노예주라며 모욕하는 후보보다, 조지 워싱턴이 꿈꾼 강한 미국을 위해 소득을 재분배하자는 후보를 더 지지하고 싶을 것이다. 실제로 조 바이든 대통령은 경제와 안보를 중점에 두며 지지율을 결집하고 있다. 유럽의 보수 정당도 반이민, 반PC를 앞세우더라도 경제적 평등을 외면하지는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소비자를 키워내면 기업을 움직일 수 있고, 기업을 움직이면 기존의 과격한 시위를 벌이지 않고도 새로운 문화를 창출할 수 있다. 디즈니는 기업이 사회문화적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여줬다. 다른 기업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경제를 앞세워서 지지자를 결집한다면, 일은 보다 수월해질 것이다.
 
흑인 인어공주가 흥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벌써 우리나라에서는 성적이 저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예매율 2위를 기록하며 주목받고 있다. 유튜브에서도 흑인 인어공주를 보며 환호하는 흑인 어린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만약 흑인 인어공주가 기존 디즈니 영화와 비교했을 때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둔다면, 위선적인 디즈니는 의도치 않게 소비가 문화를 바꾼다는 점을 증명해 줄 것이다. 지금까지의 투쟁 방식은 실패했다. 그러니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이제는 디즈니를 이용해야 한다.
 

글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