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만 가진 바보들의 대학 정책 : 정책오차 수정 실패의 제도화

일러스트=토끼풀

 
2021년 4월 30일, 국회가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법(이하 한전공대법)을 제정했다. 이는 철학의 빈곤을 보여주는 사례다. 법안을 제정하고 운영하는 과정을 보면, 교육정책에 대한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 교육정책에서 철학은 공익에 부합하는 해결책을 찾기 위한 합리적인 고민이다.
 
한전공대법은 한전공대라는 한 가지 대안을 위해 다른 지역의 에너지 산업 육성 등 다른 대안을 특별한 근거 없이 제한하고 있다. 여기에 ‘지역의 숙원’이라는 감정도 결합했다. 광주와 전남 지역에 혜택이 집중된 대안이라서 공정성에도 어긋난다. 다시 말해, 한전공대법은 합리적인 고민이 아니라 지역구의 표심에 근거한 정책이다.

우선 대한민국에 대학설립은 더 필요하지 않다. 고등교육 재정은 지금 존재하는 대학을 구조조정·특성화·투자하기에도 벅차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개교 10년 후 2031년까지 1조 6,000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는 한전공대를 설립했다. “국내외 에너지산업의 변화에 대응하여 미래 에너지 신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강력한 연구 플랫폼 확보”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기존의 대학들은 경직적 교육체계 등으로 인해 혁신모델 창출에 한계가 있다”는 법안 제안의 이유에는 동의할 수 없다. 기존 대학을 혁신·지원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실효성 없는 대학설립과 사회적 갈등 비용으로 낭비할 필요는 없다. 덧붙여, 인근에 광주과학기술원(GIST)까지 존재하는 상황에서 다른 대안은 고려되지 않은 채 경도된 이념·신념으로 해당 법안을 특별법으로 여당 단독 통과시켰다.
 
아울러, 한전공대는 타 법률과 달리 ‘설립’ 과정부터 국가·지방자치단체가 출연금과 국유재산 및 그 물품의 양여를 지급한다. 또한 국민이 납부하는 전기요금에서 3.7%씩 떼어 조성하는 ‘전력기금’을 법률이 아닌, 시행령 개정으로 한전공대에 비용을 조달할 수 있도록 했다(「전기사업법 시행령」 제34조 제4호). 한전은 2022년 약 32조 원의 적자를 발생시켰음에도, 711억 원을 출연했고, 2023년에는 1,588억 원을 출연할 예정이다.
 
하지만, 최근 이창양 산업부 장관을 이를 축소할 방침을 밝혔다. 그밖에 한전공대는 학교의 시설, 교원, 학생도 충당하지 못한 채 대통령선거를 1주일 앞두고 개교했다. 정책문제, 대안, 논의, 집행, 공공성 등 제대로 이루어진 게 없다. 정치권력이 한쪽에만 집중되었을 때 발생하는 이념 과잉의 폐단과 후유증을 어김없이 반복하고 있다.
 

이미지=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정책에는 ‘오차수정 실패의 제도화’ 현상이 있다. 정책은 한편으로 일정한 제도의 틀 속에서 형성·집행되지만 새로운 발상을 제도화(institutionaliztion)하는 일이기도 하며, 정책이 하나의 제도로 정착되면 그 제도가 오차를 수정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차수정의 실패를 고착시키는 방향으로 제도화되어 가기도 한다(송하진‧김영평, 2006: 43).
 
덧붙여 송하진‧김영평(2006: 47)이 “정책의 제도적 속성은 정책담당자들의 사고체계를 경직화시켜 정책에 대한 새로운 발상을 가로막게 된다. 왜냐하면 현행 정책에 대한 발상이 관련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일단 공유되어 제도로 고착화되면, 그 발상은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 그 결과 잘못된 정책결과로부터 또는 정책 상황의 변화로부터 정책수정이나 정책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됨에도 불구하고 정책은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지속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은 현재도 매우 유효하다. 한전공대 통폐합 결정이 빠르면 빠를수록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사태의 원인은 무엇일까? 결국 선거다. 선거는 승자독식 게임이다. 그렇기에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그 과정에서 어떠한 행위든 벌어진다. 해당 법안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전남 나주시화순군)은 “한전공대 설립은 문재인 정부 그린뉴딜 정책의 핵심이자 광주·전남의 숙원사업”이며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숙원’이란 오래전부터 품어 온 염원이나 소망을 뜻한다.
 
한전공대는 이러한 숙원을 명분으로 이용하되, 국가 전체의 효용을 따져본 게 아니다. 오히려 광주·전남 지역의 발전과 그 성과의 상징물을 지역민에게 보이겠다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의지와 호남홀대론을 무마하려는 의도가 관철된 사례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게 대통령선거를 위함인 것이다. 즉 대선에서는 표 싸움, 대선 이후에는 자리싸움을 위함이다.
 
그렇다면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시민의식의 제고와 같은 방향성은 지양하고자 한다. 현실적으로 교육에서 정치를 뗄 수 없다. 오히려 교육계에서 정치적·대언론 역량을 키우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다. 가령, 어느 교수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이 기사 건수가 많으며 여론·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필자가 탐색한 바 기사 제목에 언급된 적은 거의 없으며 관계도 분석 결과 ‘대교협’과 ‘교육부’ 외 학부모 등은 전혀 관계가 없었다. 한전공대도 마찬가지다.
 
논문과 사설에서만 주장할 게 아니다. 정치와 언론에서 맞붙어야 한다. 현실을 냉정히 바라보고, 타당한 정책 논의가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도록 정치적·조직적·정책적 역량을 길러야 한다. 샤워실의 바보보다, 신념만 가진 바보들이 국가와 사회에 더 큰 해악이다. 이를 막을 실천적 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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