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서툰 인간’이기에

일러스트=토끼풀

 
그저께 저녁, 동료 선생님들과 밥을 먹는데 가족 이야기가 나왔다. 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저희 아버지요? 서툰 인간이죠.”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해 가족들과 많은 갈등이 있었다며… 이상하게 ‘서툰 인간’이란 표현이 마음에 남았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1학년 학생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는데, 문득 ‘서툰 인간’이란 말이 떠올랐다. 아래와 같이 시나리오를 써 보았다.
 
[‘내용뿐 아니라 형식’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사랑하는 관계를 어떻게 잘 유지할까요? 방법이 잘못되면 사랑이 불편함이 되고 상처가 되고 스토킹과 같은 폭력이 되기도 합니다.
 
두 사람 이상의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있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온종일, 1년 동안, 한 반에서, 한 학교에서 함께 잘 지낸다는 것, 보통 일이 아닙니다. 1년이면 8,760시간입니다! 그 시간 동안 마음이 즐겁고 평화로워야 내가 무얼 하든 신나게 집중하고 성장할 수 있겠죠!
 
잘 지내려면 마음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서로를 대하는 방법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서툰 인간입니다. 어설프고 상대방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고 때로 실수도 합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조금 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타인을 대하는 방법을 익혀야 하고, 선을 넘지 않으면서 존중하는 방법도 알아야 합니다.
 
그 방법을 어떻게 아느냐고요? 우리 서로에게 물어봅시다. 어떻게 해 주면 좋은지, 어떻게 할 때 공동체가 따뜻하고 평화로워지는지요. 다음 주 월요일에 각 반에서 서로 묻고 학급 가이드라인 만들기를 할 거예요. 주말에 생각해 보고 월요일에 이야기 많이 해 주세요.
 
지내다가 갈등이 생기면 어떡하죠? 괜찮습니다. 사람 둘 이상이 모이면 원래 갈등이 발생합니다. 안 생길 수가 없어요. 우리는 기질도 성격도 사고방식도 다 다르거든요. (물론 나쁜 기질은 없어요!)
 
다름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갈등. 잘 푸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도 이야기하며 풀어나가는 연습을 할 거예요. 학년 전체와 관련된 문제라면 학년 다모임으로, 학급 전체와 관련된 문제라면 학급 회의로, 몇몇 친구들 간에 발생한 문제라면 선생님들과 개별, 집단 상담으로 풀어나갈 거예요. 물론 폭력 사안은 학교폭력 절차를 밟을 수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반에서 써클 회의하고, 매일 학급 일기를 쓰며 서로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 바쁜 일상이지만, 선생님과 친구들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잠시 내 시간과 마음을 내면 그것이 다시 나에게 따스함과 사랑으로 돌아온답니다.]
 
점심 시간임을 알리는 종소리가 나고, 교실에서 학생들이 드르륵 문을 열고 나온다. 한 학생과 눈이 딱 마주쳤다. 전날 통합사회 수업 때 ‘챗 GPT’ 사용기를 섬세하게 말해서 기억에 남았던 학생이다.
 
“○○이지?”
 
“네, 맞아요. 그런데 선생님…”
 
“응?”
 
“어제 수업 끝나고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었는데 7교시고 바로 종례라서 이야기를 못 했어요.”
 
“무슨 이야기?”
 
학생은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쏟아낸다.
 
“제가 가족이든 선생님이든 어른들에 대해서 실망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멋진 선생님이면서 인간적으로도 좋은 분이라고 느꼈어요.”
 
“??”
 
“서툰 인간이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선생님이 우리는 모두 서툰 인간이라 말씀하셨잖아요. 아빠가, 엄마가 이해 안 될 때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빠도, 엄마도 부모 역할이 처음인 거니까요. ‘이번 생은 처음이라’라는 드라마 제목처럼요. 부모님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됐어요.”
 
순간 내 눈 아래쪽에 물방울 하나가 스몄다. 학생의 눈은 무언가 우수에 차 있었다. 공감의 말을 몇 마디 이어 나가려는데, 상담을 약속한 우리 반 학생이 저만치서 걸어왔다.
 
“다음에 우리 이어서 이야기하자!”
 
내담 학생과 함께 급식 줄을 서서 배식받고, 밥을 함께 먹고, 햇살 좋은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열여섯 해 동안 겪은 희로애락과 사건사고, 고통과 성찰, 빛나는 의지가 따사로운 햇볕과 바람을 타고 내게 흘러들어온다. 그리고 함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미래를 상상한다.
 
한 사람을 만나는 건 하나의 우주를 방문하는 것과 같다. ‘서툰 인간’이자 ‘서툰 교사’인 나는 오늘도 수십 명의 우주 공간을 기웃거리고 공동의 우주를 함께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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