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쓸모 – 쓰시마 유코의 빛의 영역을 읽고.

일러스트=토끼풀

 
4년 만에 일본 소설을 읽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딸, 쓰시마 유코는 1979년에 ‘빛의 영역’을 발표했습니다. 그게 2023년이 되어서야 우리나라에 번역되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과 독자 사이에 40년 넘는 시차가 있지만, ‘빛의 영역’은 시차를 뛰어넘었습니다. 2023년 한국에 사는 편모와 1979년 일본에 사는 편모의 처지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둘 다 외롭고 불안하지만, 한 줄기 빛에 기대서 일상을 견뎌 냅니다.
 
저희 집은 편모 가정입니다. 아빠는 10년 전에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아빠는 좋은 어른이 아니었습니다. 밖에서는 친절을 베풀고 안에서는 히스테리를 부렸습니다. 엄마가 친구들과 놀다가 저녁을 차리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빠는 엄마의 뒤통수를 젖은 빨래로 후려쳤습니다. 저와 동생은 그 장면을 넋놓고 지켜봤습니다. 엄마는 혼자가 되어서야 사고 싶은 걸 사고,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아빠가 쓰러졌을 때에는, 엄마도 세상이 종말을 맞이한 것처럼 눈의 초점을 잃었습니다. 가족을 잃은 상실감도 컸겠지만, 당장 먹고 사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엄마는 백화점에서 나름 즐겁게 일했지만, 아빠가 싫어해서 그만둬야 했습니다. 그 뒤로 십 년 가까이 저녁에 뭘 먹을지만 신경써야 했습니다. 경력도, 기술도 없는 40대 여성이 자신과 두 아들의 식비, 월세, 아빠가 생활비를 가져다 주지 않아서 생긴 대출을 감당할 수 있을리 없었습니다.
 
엄마는 불안감에 갇혔습니다. 시청에서 인구 조사를 돕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었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신용카드 돌려막기도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친척의 도움으로 시급이 높은 대형마트로 취직했고, 그 회사 지원복지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회생을 신청했습니다. 저도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서 월급의 8할을 엄마에게 줬습니다. 그래도 엄마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은 듯했습니다. 엄마는 사소한 일로 저와 동생에게 짜증을 냈습니다. 저도 동생도 그냥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를 불렀습니다. 아빠가 있을 때만큼 집안 분위기가 무거웠습니다.
 
개인회생을 마치고, 엄마는 회사에서 최고 호봉이 되었습니다. 또 한 번 생활비 때문에 대출을 받았지만, 전보다 불안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상황이 진정된 탓인가, 엄마도 짜증이 줄었습니다. 대화도 많아졌고, 함께 웃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지금 우리 가족은 그 어느 때보다, 심지어 아빠가 있을 때보다 편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불편하지도 않습니다. 서로 다퉜던 일은 이제 추억이 되었습니다.
 
지금 엄마에게 ‘빛의 영역’을 추천한다면, 저녁 드라마를 보듯이 집중할 것 같습니다. 물론, 엄마는 소설 속 편모와 달랐습니다. 이별이 아니라 사별을 겪었습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아이를 감당하지도 않았고,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갖지도 않았습니다. 짐을 거들어 줄 사람도 곁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소설 속 편모처럼 외롭고 불안했을 것입니다. 엄마는 원치 않게 아빠에게 의존하다가 갑자기 독립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엄마’라는 책임은 누구도 거들어 줄 수 없었습니다. 소설 속 편모가 한 일은 외로움과 불안감 때문에 생긴 염증이지,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을 사는 편모도 40년 전 소설 속 편모에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편모가 흔해졌습니다. 이혼율이 결혼율을 앞질렀습니다. 하지만 통계 수치는 처음 편모가 되어 본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통계에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우리는 추상적인 숫자가 아니라 구체적인 이야기로 생각하는 동물입니다. 비슷한 처지인 사람이 100명 늘었다는 수치가 아니라, 비슷한 처지인 사람 하나가 겪은 구체적인 이야기에, 우리의 감정은 움직입니다.
 
사람이 소설을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소문을 듣듯이 다른 사람의 감정과 반응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얻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나 혼자 앓고 있는 줄 알았던 문제를 함께 겪는다면, 그리고 그 문제를 어찌어찌 헤쳐 나간다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느끼도록 진화했습니다. 소설에 담긴 구체적인 이야기가 외로움을 덜어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소설의 치유 효과를 활용하는 ‘문학치료’를 개발했습니다. 언젠가 ‘빛의 영역’이 치유에 활용될지도 모르겠습니다. 1979년 일본인 편모의 이야기는 2023년 한국인 편모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 줄 것입니다. 소설 속 편모가 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현실 속 편모가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스토리텔링 애니멀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도 속 마음을 털어 놓기 힘든 시대인 만큼, ‘빛의 영역’ 같은 소설은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4년 만에 읽은 일본 소설은 만족스러웠습니다.
 

고민은 모조리 집어치우고 곧장 함께 세상 속으로 뛰어듭시다.

– ‘빛의 영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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