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해유록(海遊錄) – 서론

일러스트=토끼

 
한 親日 청년의 고백

나는 친일파다. 물론 친일파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서 그 의미는 완전 달라지겠지만, 만약 그 정의를 ‘일본이란 이웃의 고유한 시선과 강점을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자’로 규정한다면 나는 단연코 친일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체성은 내가 몸 담은 학과에서 일본을 동계 해외 답사지로 가기로 했을 때, 그리고 그 답사를 신청하며 기행문을 쓰기로 마음 먹었을 때 가장 자주 떠올렸던 생각이기도 하다.
 
도발적인 첫 단락을 읽으면서 몇몇 분들은 이런 질문을 던지실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많은 나라 중에서 왜 일본인가? 경제 규모에서 그 격차가 줄어들고 있고, 1인 구매력이나 몇몇 유망 산업에서는 한국을 뒤쫓는 처지에 놓인 일본에게 아직도 배울 게 있다는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그러나 나는 일본이 한국에 비해 뒤처진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한국처럼 최상위 품질의 반도체 완성품이나 세계 문화 시장을 뒤흔들 OTT 콘텐츠를 만들진 못하더라도, 여전히 일본 사회와 일본인들에게는 한국에게선 찾기 힘든 고유의 강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그 장점들 중에서 상당 부분이 그들의 역사로부터 비롯됐다 보며, 그런 그들의 역사를 최대한 배우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사라니? 일본의 과거사에서 한국이 무엇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일본의 과거사를 (특히 근현대에 한정해서) ‘침략’과 ‘파멸’이라는 키워드로 파악한다면 그들의 과거사는 앞서서 배워야기 한다기보다는 한발짝 물러서서 ‘반면교사’의 하나로 받아들여야 할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지점에서 역발상을 제안하고 싶다. 일본이 제국주의를 받아들여 침략을 동반한 팽창을 거듭한 끝에 2차대전을 겪고 패망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 패망의 과정에서 함께 태동한 전략적 사고와 거시적 시야마저 애써 무시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그들의 전략적 사고와 거시적 시야를 배워 오늘날 한국의 실정(實情)을 분석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더군다나 일본은 동아시아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일국에서 제국으로 팽창한, 더불어 대륙 문명적 사고가 아닌 해양 문명적 사고를 기반으로 국가의 대전략을 구상했던 국가다. 그리고 그런 일본의 특징은 조선과는 다르게 해양 문명적 사고를 적극 도입하여 자유 진영의 프론티어로 거듭날 수 있었던 대한민국에겐 반드시 배우고 참고해야 할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과거의 조선에겐 일본이 둘도 없는 원수일지 모르겠지만, 해양 문명은 물론이고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주의 등의 정치사회적 근간을 고스란히 공유하는 일본과 한국은 친한 이웃을 넘어서 같은 지정학적·국제정치적 운명을 타고난 동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일본은 여전히 보고 배울 것이 많은 ‘선배’가 아닐까.
 


 
근대 일본의 정수(精髓)가 담긴 곳을 찾아서

그렇다면 오늘날 일본의 정치·사회·경제·문화적 환경의 근간이자, 일본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역동적이었던 근대가 가장 잘 간직되어있는 곳은 어디일까? 에도 막부의 근거지에서 근대 국가 일본의 수도로 변모한 도쿄? 대정봉환(大政奉還)을 통해 막부로부터 통치권을 회수한 천황의 근거지인 교토? 그것도 아니라면 전국시대 이후의 일본의 대표적인 국제 교역항 사카이(さかい)가 있으며, 한때 일본 천하의 ‘부엌’으로 불린 경제 중심지이자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관광지인 오사카?
 
정말 많은 곳들이 떠오르지만 이번에 내가 답사로 방문한 곳은 그런 대도시들과는 결이 약간 다르다. 비록 도쿄, 교토, 오사카처럼 엄청난 대도시도 아니고, 오히려 시골의 정취를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지만, 그 지역이 품은 역사적 맥락과 인물만큼은 그 어떤 지역 및 도시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곳이라 자부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바로 후쿠오카 현과 야마구치 현이다.
 
두 지역에서 느낄 수 있는 근대 일본의 발자취와 매력에 대해서는 앞으로 쓸 기행문에서 자세히 논할 것이지만… 맛보기로 두 지역에 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후쿠오카 현은 일본이 외부 세력을 마주하는 대표적인 창구(窓口) 중 하나였으며, 야마구치 현은 과거 에도 막부 시절에는 ‘조슈 번’으로 불렸으며, 근대 일본을 만든 주요 인사들의 출생지로서 일본에서는 ‘가장 똑똑한 마을’로 통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정도의 소개만으로도 근대 일본에 대해 관심을 가진 나에겐 지적으로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충분한 정보였다.
 
그렇게 답사 준비를 하면서 후쿠오카 현과 야마구치 현에 대한 여러 후기 글을 찾다가 답답함을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는데, 그 답답함의 정체는 바로 ‘일본의 근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라는 커다란 테마를 놓고 두 지역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분석한 글을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결심을 내렸다. 아예 내가 그런 테마를 정해놓고 두 지역을 답사하면서 배우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글로 풀어내보자고. 그리고 더하여 답사를 하면서 관찰한 오늘날 일본 사회와 일본인들의 특징과 강약점에 관해서도 녹여낼 수 있다면, 그런 관점과 목적을 가지고 일본에 방문하는 한국인들에게 조금이나마 유용한 읽을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서론을 마무리하면서 4박 5일 간의 일본 기행문을 시작하려 한다.
 
※ 《해유록(海遊錄)》은 1719년(숙종 45) 제9차 통신사 일행에 제술관으로 합류했던 신유한(申維翰)의 일본 견문록이다. 조선 유학자의 시선으로 일정 중에 관찰한 것들을 기록한 서적으로써 18세기의 에도 막부의 실정과 사회상을 파악하는데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필자는 신유한처럼 조선의 유학자가 아닌 대한민국의 대학생이기 때문에 그의 일본관과는 대비되는 측면이 많을 것이라, 실제로 《해유록(海遊錄)》을 읽어본 독자 분들 입장에서 비교해서 읽는 재미도 있으시리라 판단한다. 또한, 책 제목의 ‘해유(海遊)’는 ‘바다를 건너 유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에, 앞선 맥락과 함께 중의적인 표현으로서 활용하기 좋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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