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알아보는 학교폭력

– 돼지의 왕>1)을 중심으로 –
 

일러스트=토끼풀

 
들어가며

 
학교폭력은 지금까지 많은 사건 사고를 보여줬다. ‘2011년 대구 중학생 집단 괴롭힘 자살사건’, ‘인천 중학생 추락사 사건’, ‘장난감 화살 실명 사건’ 등의 수많은 학교폭력이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작품인 <더 글로리>의 방영, 방영 뒤 공인 혹은 공인 친인척의 학교폭력이 대두화 됐다. 이러한 대두화는 이제는 사회가 신경 쓸 정도의 거대 담론이 돼버렸다는 신호임을 알 수 있다.
 
필자 또한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당시를 되돌아보면 다른 왕따 사건들과 달리 이유가 없진 않았지만, 힘든 학교생활을 했고, 그때를 기억하면 불안하고 초조해져 아직도 나에게는 힘든 시절을 보내고 대학생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티빙에서 뭘 봐야할지 고르던 도중 우연히 영화 <돼지의 왕>을 보게 됐다.
 
영화는 ‘죽은 경민의 아내’, ‘빨간 딱지’, ‘경민’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러자 경민의 아내가 있던 공간이 다른 공간으로 바뀌어 그림자 속 인간이 경민에게 이야기한다. “놀고 먹어도 잘 먹고 잘사는 그놈들은 애완견같은 놈들이야, 개같은 놈들이라고 그놈들 먹이가 되는 우리는 돼지들이고, 우리는 죽어서 팔다리가 찢겨져야 가치가 생긴단 말이야. 경민아, 돼지가 그 정도 가치밖에 안 되는 동물이냐? ”라고 하며 돼지의 얼굴을 한 인간과 경민이 서로 대우한다. 그리고 경민은 흥신소를 통해 종석의 연락처를 알게 됐고, 전화를 걸어 종석과 15년 만에 만나게 됐다. 경민은 ‘15년 전’ 자신의 중학교 시절 자신들의 우상이었던 ‘철이’의 이야기를 하면서 영화가 진행된다.

영화 대사 중 “놀고먹어도 잘 먹고 잘사는 그놈들은 애완견 같은 놈들이야, 개같은 놈들이라고 그놈들 먹이가 되는 우리는 돼지들이고, 우리는 죽어서 팔다리가 찢겨져야 가치가 생긴단 말이야.”, “힘을 가지려면 악해져야 돼 계속 병신처럼 당하지 않으려면 괴물이 돼야 돼 알겠냐?”, “한 가지 확실한 건 말이야, 그때 이후로 게네들이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 그 시절을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몰라도 우리는 지금 그때를 절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거야.” 등의 대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공감됐다.
 
어쩌면 <돼지의 왕>을 통해 학교폭력의 상처와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연상호 감독은 <돼지의 왕>을 통해 “계급사회에서 하부구조에 놓인 사람들의 절망을 그대로 체험하게끔 하고 싶었어요. 너도 열심히 살면 되잖아 하고 말하지만, 직접 그 안으로 들어가 벽을 느껴보지 않으면 그들이 느끼는 절망감을 절대 알 수 없죠.”2)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연상호 감독이 말했듯이 <돼지의 왕>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반(反)하는 또 다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줬듯이 <돼지의 왕> 또한 인간의 허무와 잔혹성에서 우리에게 교훈을 줬다.
 
이번 글에서는 작품 속 주요 인물 4명 ‘황경민’•‘정종석’•‘김철’•‘박찬영’의 시각에서 서술하겠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대사를 해석함으로써 인문학적 의미와 학교폭력의 영향을 파헤쳐보고자 한다.
 


 
2. ‘김철’과 만남 – ‘황경민’•‘정종석’의 시각에서

 
2-1 ‘황경민’의 시각에서

 
경민은 중학교 시절 작고 왜소한 아이였다. 만만하게 보이니 학우들에게 괴롭힘을 자주 당한 학교폭력 피해자였다.3)
 
어느 날 3학년 학생회장 후보가 경민의 교실로 들어와 유세했는데, 그때 경민은 미처 못한 영어 숙제를 급히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선배의 친구가 유세가 끝난 뒤 1학년 아이들에게 경민을 가리키며 “야 쟤 집중 못하더라 관리 좀 해라.”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그리고 1학년 학생회장 ‘송석응’은 경민의 반 강민과 패거리에게 “아이 씨 관리 좀 해”하고 떠났다. 강민과 패거리는 그 말을 듣고 나서 경민에게 뺨을 때리고 숙제를 찢어버리는 행위를 했다. 그러자 ‘김철’이라는 친구가 와서 강민과 패거리를 두들겨 패고 경민을 도와줬다.
 
정신분석학적 모습으로 보았을 때 이는 ‘전치’의 모습이다. 전치란 “어떤 이를 향한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로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의 분노는 자신에게 반격하지 않거나 상처를 줄 것 같지 않는 사람에게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4)이처럼 3학년 학생회장 후보의 친구가 석응에게 주의를 시키고, 석응은 강민과 패거리에게 자신의 분노를 전했고, 강민과 패거리는 폭력을 행사하며 경민에게 자신들의 분노를 옮겼다.
 
앞서 말했다시피 ‘전치’할 때 분노는 ‘자신에게 반격하지 않거나 상처를 줄 것 같지 않은 사람에게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내리 갈굼’은 어른들의 세상에서도 많이 일어난다. 직장 상사가 신입사원에게, 군대 장교•부사관들이 병사에게 화풀이하는 모습 등과 같이 자신에게 반격하지 않거나 상처를 줄 것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성인의 사회와 학생의 사회가 별반 다르지 않음을 관객들에게 인식시켜 줬다.
 
학교에서 경민에게 이런 식으로 직접 도와준 사람은 철이가 처음이었다. 경민은 철이가 두들겨 패는 모습을 보고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이때부터 철이에게 ‘경외심’을 가졌다.
 


 
2-2 ‘정종석’의 시각에서

 
종석 또한 경민과 마찬가지로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였다. 경민만큼은 아니더라도 ‘게스 블랙진’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강민과 패거리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우선 ‘게스 블랙진’ 사건의 시작은 종석의 누나로부터 시작됐다.
 
종석은 하교 후 집에서 누나가 엄마에게 ‘게스(GUESS)’ 바지를 사고 싶다고 졸랐다. 엄마가 바지가 얼마냐고 묻자 누나는 ‘10만 원’ 한다고 말했고, 조르고 졸라서 ‘게스 바지’를 구매했다.
 
종석은 바지를 두고 “그래서 반지하의 방 한 칸 우리 집에 집안의 모든 물건과는 어울리지 않는 다른 물건이 오게 됐다. 그건 게스 블랙진이었다. ” 라고 말했다.
 
다음날 종석은 ‘게스 블랙진’을 입고 학교로 등교하는데 산책 중이던 강아지가 종석의 가방을 끈질기게 물어댔다. 그리고 경민과 등굣길에 만나게 되는데, 경민은 종석의 ‘게스 블랙진’을 보고 “종석아, 빨간 삼각형은 여자 거야 남자 거는 초록색이야.”라고 말했고 종석을 얼른 뒷주머니의 게스 로고를 숨긴다.
 
그리고 체육 시간 옷을 갈아입으면서 강민의 패거리에게 들키게 됐고, 그들은 ‘게스 블랙진’ 엉덩이 부분을 찢어 칠판에 붙여 종석을 ‘호모’라고 칠판에 적어 공개적으로 놀려댔다. 이를 본 종석은 “난 정말 바보였다. 왜 그들처럼 되고 싶었을까? 난 절대 그들처럼 될 수 없다.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생물이다. 언제나 안전하고 공격적이고 그리고 사랑받는 개들이다. 절대 그들을 이길 수 없다.”라고 말한 순간 강민과 패거리의 얼굴이 아침에 등교하면서 종석의 가방을 물었던 개의 얼굴로 바뀌었다.
 
종석에게 ‘게스 블랙진’은 자신의 계급을 뛰어넘는 상징물이다. 왜냐하면, 종석이 바지를 두고 “그래서 반지하의 방 한 칸 우리 집에 집안의 모든 물건과는 어울리지 않는 다른 물건이 오게 됐다. 그건 게스 블랙진이었다. ”라고 말했다. 이 대사를 통해 종석은 ‘게스 블랙진’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상징물임을 의식한다.
 
종석은 경민이 말해주기 전까지 그것이 여성용 바지임을 꿈에도 몰랐고, 모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종석의 가정환경은 ‘게스’와 같은 고가의 브랜드를 자주 접해볼 수 없고, 단순히 ‘게스 블랙진’의 자본적 가치(피상적인 가치)밖에 몰랐기에 당연히 창피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종석이 마주한 ‘개’는 그의 욕망을 만족시키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다. 이는 니콜라이 고골의 작품 <외투>의 ‘아카키’의 모습과 비슷하다.
 
“아카키는 새 외투를 욕망하면서 ‘충동의 인간’에서 ‘욕망의 인간’으로 바뀝니다. (중략) 그는 미래의 행복(외투 구매)을 위해서 현재의 만족(저녁을 굶음)을 기꺼이 포기합니다. 그 대신 미래의 외투에 대한 끝없는 이상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정신적인 포만감을 얻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결여된 상태에서 작동하기 시작한 욕망은 근원적으로 충족될 수 없습니다. (중략) 욕망은 궁극적으로 만족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새 외투를 산 아카키는 불량배들에게 자신의 외투를 강탈당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만족하지 못하는 욕망의 메커니즘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중략) 아카키는 외투를 찾으려고 파출소장, 고위급 인사도 찾아가지만 계속 문전 박대를 당하고 앓아누웠다가 결국 세상을 떠납니다.”5)
 
‘종석’과 ‘아카키’는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둘 다 각자의 욕망을 충족하려 했지만, 근원적으로 충족될 수 없다. 아카키의 ‘새 외투’는 강탈당했고, 종석의 ‘게스 블랙진’은 찢겨 입지도 못하게 됐다. 아카키의 새 외투가 불량배들에게 강탈당한 모습을 통해 만족하지 못하는 욕망의 메커니즘을 보여준 것처럼 종석의 ‘게스 블랙진’이 찢긴 것은 계급을 뛰어넘고 싶어한 욕망이 좌절되는 모습이다.
 
그때 부끄러워하던 종석 앞에 ‘김철’이 나타나 칠판에 써진 조롱의 글을 지우는데, 여기서 강민과 패거리와의 마찰이 생겼다. 철이는 패거리에게 밀려 넘어졌지만, 자신의 벨트를 풀어 채찍처럼 사용해 버클 부분으로 패거리를 제압했다.
 
종석도 경민과 마찬가지로 이런 식으로 직접 도와준 사람은 철이가 처음이었다. 종석은 철이가 두들겨 패는 모습을 보고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이때부터 종석도 철이에게 ‘경외심’을 가졌다.
 


 
2-3 ‘惡’으로 입장

 
‘게스 블랙진’ 사건이 일어난 날 종석과 경민은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철이를 만나게 된다. 철이는 “야 너희들 걔네들 싫지? 그지 응? 그럼 나랑 놀자 그럼 걔네들이 너네 절대 안 괴롭힐 거야.”라고 말했다. 어른의 경민은 이를 회상하며 “철이가 무언가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라고 말한다.
 
철이는 아이들을 두들겨 팬 죄로 2주간의 징계를 받았다. 경민과 종석은 철이를 만나기 위해 학교 근처 빈집에 갔었다.
 
빈집의 쇼파에 앉은 철이가 경민과 종석에게 말했다.
 
이 칼이란 건 말이야. 짐승과 인간을 구별해주는 거야. 내 몸에 달린 것도 아니면서 나에게 힘을 주는 거지. 그래서 이건 절대로 놓치면 안돼. 그런데 사람들이 칼을 만들었을 때, 생각지도 못한 것이 만들어졌어. 그건 바로 악이다. 저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처럼 몸의 일부가 아닌 이 칼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건 바로 악이란 말이야. 그럼 우리가 힘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착하게 살면 될까? 아니야. 힘을 가지려면 우린 악해져야 돼. 계속 병신처럼 살고 싶지 않으면 우린 괴물이 되어야 해. 알겠냐?
 
‘칼’을 의도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인간’과 사용하지 못하는 ‘동물’을 비교했다. 다시 말해 ‘의도적인 악’을 저지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를 말한 것이고, 인간은 의도적인 악을 저지를 수 있다. 이러한 악을 통해 인간은 ‘힘’을 가질 수 있다.
 
철이가 말하는 ‘악’은 ‘공평함’이다. ‘의도적인 악’은 그들에게 공평함을 준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우월한 유전자와 환경으로 힘도 세고, 외모도 훤칠하고, 좋은 부모를 만나서 행복한 삶을 살지만, 다른 누군가는 왜소하고, 외모도 훤칠하지 못하고, 가난한 부모를 만나 불행한 삶을 산다. 이런 경우에 철이가 말한 ‘악’이 없다면, 우리는 전자의 인간에게 항상 굴복할 것이다. 하지만 철이가 말한 ‘악’이 존재함으로써 약자인 우리를 지킬 힘이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칼을 놓치지 않는다.|
 
타인은 ‘의도적인 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괴물 즉 자신을 함부로 할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볼 것이다. 그래서 철이는 ‘괴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 후 철이는 자신이 데리고 온 고양이를 칼로 찔러 죽인다. 그 후에 종석과 경민에게 칼을 넘겨주며 찌르라고 시킨다. 종석이도 고양이를 칼로 찔렀다. 하지만 경민은 자신은 못 할 것 같다고 도망쳐버렸다. 종석은 도망가는 경민을 불렀지만, 철이는 곧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자 경민은 다시 돌아왔고, 칼로 고양이를 찔렀다.
 
고양이를 칼로 찌른 행위는 철이와 친구가 될 수 있는 의식 즉 ‘악의 세계로 들어가는 의식’이다. 철이의 친구가 되려면 ‘의도적인 악’을 행할 수 있어야 하고, 의도적인 악을 갖고 있어야 그들은 철이와 동조할 수 있다. 그래서 종석과 경민은 의도적인 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칼로 고양이를 찌른 것이다.
 


 
주석.
1. 연상호 (감독). (2011). 돼지의 왕[영화]. 돼지의 왕 제작위원회•STUDIO DADASHOW / 영화 대사는 큰따옴표 + 기울임체 사용.
2. 정형모. (2012-04-28). [EDITOR’S LETTER]돼지의 왕. 중앙일보.
3. 작중 반장이 경민의 성기를 만지거나 뺨을 때리는 장면이 있음.
4. 로이스 타이슨. (2012). 비평이론의 모든 것: 신비평부터 퀴어비평까지 (윤동구, 역). 앨피. (원본 출판 2006년). p. 47.
5. 이현우. (2014).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현암사. p.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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