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추락하지 않는다 – 드림랜드와 북서울 꿈의 숲

일러스트=토끼풀

 
어릴 때부터 롤러코스터 같은 스펙터클 한 놀이기구를 무척 좋아했다. 높은 곳에서 아래로 훅 떨어지는 기구를 탈 땐 맨 앞이나 맨 끝 좌석을 골라 탑승할 정도로, 외국에 갈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가능한 현지 유원지에 독특한 놀이기구가 없는지 꼭 찾아본다. 
 
오래전 서울 강북구 번동에 ‘드림랜드’라는 유원지가 있었다. 접근성도 나쁘지 않았고 자유이용권이나 입장료가 다른 유원지보다 저렴해 종종 찾던 곳으로, 그곳의 인기 어트랙션이었던 ‘아토믹코스터’라는 독특한 형태의 롤러코스터를 얼마나 예정했던지, 오로지 이걸 타기 위해 혼자서도 드림랜드에 갔다. 하긴 수줍은 고백을 하나 더 하자면 드림랜드뿐 아니라, 롯데월드나 에버랜드(구, 용인자연농원)에도 혼자 방문해 롤러코스터류(類)만 몇 번씩 타고 온 적도 부지기수다.

드림랜드의 아토믹코스터에는 다른 롤러코스터와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보통 롤러코스터의 열차가 스테이션에서 출발한 후 빠른 속도로 상승과 하강, 회전을 반복하다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는 순환구조인 데 반해 아토믹코스터는 그렇지 않았다. 만화영화를 본 세대라면 기억할 텐데, 열차가 하늘로 이어진 사선의 레일을 따라 철컥철컥 달리기 시작하면서 점점 속도가 붙다가 레일이 어느 순간 뚝 끊기게 되고, 그럼에도 열차는 그대로 쭉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 우주를 향해 날아간다. 그러니까 아토믹코스터는 그 만화영화 속 우주를 향해 달리는 열차의 레일과 모양이 흡사했다. 즉, 아주 높은 위치에 끊긴 형태로 설치된 레일의 선단을 향해 열차가 전속력으로 달리다 레일이 끊긴 부근 직전에서 일단 열차가 멈춘 후 역방향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토믹코스터의 운행 방식이었다. 지금 떠올려봐도 획기적이랄 수 밖에.
 
아토믹코스터의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열차가 레일을 따라 달리는 모습을 보다 보면 동안 간담이 서늘해지고 아슬아슬한 기분에 잠겼다. 저렇게 빨리 달리다 열차가 제 속력을 이기지 못하고 레일 선단 바깥으로 이탈하면 어쩌지? 이런 걱정이 나를 조마조마하게 했다. 동시에 그런 사고가 일어날 리 없다 믿으면서도 영화에서처럼 나를 태운 열차가 레일을 떠나 우주까지 쭉 날아가면 얼마나 짜릿할까? 라고 상상했다.
 
한동안 드림랜드의 존재를 잊고 살다가 우연히 폐장 소식을 듣고 기분이 묘했다. 한 시절이 끝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간 아토믹코스터보다 진화한 롤러코스터를 타 볼 기회를 몇 번이나 가지긴 했지만 뭔가가 달랐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 ‘나’가 몹시 아끼던, 이제는 사장된 특정 핀볼 기계를 찾아 낯선 도시를 하염없이 헤매던 마음이 그와 비슷하려나.
 
드림랜드는 2008년에 폐장을 했다. 그리고 그 해 나는 결혼을 한다. 한 시절이 끝났다는 표현이 단순한 비유일 수만은 없었다. 내 삶이 아토믹코스터처럼 달려갈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건만 내 결혼생활은 아코믹코스터의 레일이 끊기듯 중단이 되었다. 그 후 한동안 내 일상은 정상 선로를 이탈해 추락했다.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한껏 내 불행에 도취했다. 사람들이 내게 의도를 품고 다가오거나 말거나 나를 애처롭게 바라봐 주는 시선이 황홀했다. 아프다고 끙끙거리면 누군가 다가와 나를 어루만졌다. 그 손길이 언제까지고 다정히 이어질 거라 믿었고, 내 불행이 끌어온 타인의 위로가 짙고 달콤해 계속 불행에 잠겨있고 싶었다.
 
세월은 흘러 드림랜드는 서울 강북과 도봉 등 6개 구에 둘러싸인 초대형 공원인 ‘북서울 꿈의 숲’으로 재탄생했고, 월드컵공원과 올림픽공원에 이어 3번째로 큰 공원이 되었다. 비록 드림랜드의 자취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지만 이름처럼 숲이 울창해 어느 계절에 가도 아름다운 풍광을 만끽할 수 있으며 그중에서도 봄과 가을의 벚꽃 길과 단풍 숲길의 자태는 특별히 빼어나다.
 
드림랜드가 폐장한 2008년에 결혼해 2016년에 이혼했으니 올해로 어느덧 이혼 7년 차에 접어든다. 세월이 더 흐르면 결혼 기간보다 이혼 경력이 더 길어질 테다. 그간 내 삶도 드림랜드가 북서울 꿈의 숲으로 바뀌었듯 달라졌을까? ‘화려한 비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런 문장을 아무렇지 않게 적을 수 있을 정도로 뻔뻔하다면 좋겠지만, 어쩌면 아직은 드림랜드에서 아토믹코스터의 탑승을 기다리던 마음을 닮았다.
 
아토믹코스터가 레일의 선단을 향해 달려갈 때 예측 가능한 상황은 두 가지다. 역방향으로 후퇴해 되돌아오거나, 레일 밖으로 벗어나는 것. 아토믹코스터는 멋진 열차지만 삶은 다르다. 뒤에는 눈이 없으니 이제 와 뒤로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또한 레일을 이탈하게 되면 은하철도 999처럼 우주로 비상하는 것이 아니라 추락밖에 없다는 현실도 잘 안다.
 
마침내 나는 그 레일의 끝을 연장하기로 결심했다. 꿈의 숲 정도로 완벽한 변신은 어려울지라도 그런 소망을 담아 레일을 한 칸 한 칸 연장하듯 글을 쓰기로. 사실 미지의 세계 그 자체보다 그걸 꿈꾸는 동안의 짜릿함이 ‘찐’이니까. 인생에 모험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믿는 쪽이 유쾌하니까. 어떤 시설물은 보수가 필요하고 무용한 거라면 철거도 필요하다. 다만, 내 삶의 드림랜드 폐장은 아직 더 나중의 일이기를 꿈꾸고 있다.
 
북서울 꿈의 숲 공원에 가면 드림랜드 시절의 아토믹코스터와 그 모양이 흡사한 전망대가 있다. 실제 그걸 오마주 했는지 알 길은 없으나 기둥 없이 사선으로 떠 있는 전망대 타워의 독특한 구조는 영락없이 아토믹코스터의 그것이다. 엘리베이터 또한 사선으로 올라가도록 설계되어있어 색다른 경험이 가능하다. 지금은 드림랜드나 아토믹코스터를 기억하는 이가 그다지 없을 뿐 아니라 드림랜드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비록 드림랜드도 아토믹코스터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드림랜드의 꿈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믿는다. 꿈은 추락하는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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