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덕후’로 산다는 것

일러스트=토끼풀

 
‘너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하냐?’. 학창 시절 정치를 좋아한다는 것을 드러내면 자주 듣던 이야기입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 선생님께서는 ‘대한애국당’ 유인물을 제게 건네주시더군요. 저는 순수하게 정치를 좋아할 뿐 인데 ‘일베충’이라고 낙인 찍혔습니다.

물론 제가 행동거지에 충분히 조심하지 못해서 의심을 산 것일수도 있었지만 정치 유인물을 받고 어린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빨갱이냐는 이야기도 들어봤습니다.
 
정치를 ‘티’나게 좋아하다 보면 주위에서 많이 오해합니다. 가장 많이 받는 오해는 ‘정치를 하고 싶냐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에 제가 애정하는 특이한 것을 보며, 제가 정치가를 지망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께서는 법학을 전공하여 법률가가 되는 것이 정치가가 되기에는 더 쉬운 길일 것이라고 충고해주시고 하시고, 제게 제발 정치를 바꾸어 달라고 요청해주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런 분들의 기대와는 달리, 저는 정치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현재로서는 정치 현장에서 선수로 뛰는 것보다는 옵저버로서 정치 과정에 참여할 생각 뿐입니다.
 
저는 정치를 사랑합니다. 정치를 취미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통치 행위인 정치를 취미로 삼는다는 게 이상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치와 관련된 뉴스를 챙겨보거나, 정치와 관련된 토론을 하거나, 강연을 듣거나 혹은 관련된 여타의 활동을 할 뿐입니다. 실질적인 정치 행위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또한 특정 정치가만 덕질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언제부터 정치덕후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치 그 자체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취미의 대상에 느끼는 환멸

다른 취미와는 달리 정치가 가지는 유일무이한 특징이 있습니다. 이따금 환멸의 감정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정치와 관련된 뉴스 기사를 읽거나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저는 환멸을 느끼곤 합니다. 정치가들의 발언이나 행위 혹은 정치적 사건을 보면서 환멸이 느껴지고, 정치에 애정을 쏟은 것이 후회되고는 합니다.
 
이게 드문 일이면 좋겠지만, 날이 갈수록 저의 취미이자 애정을 쏟아온 대상에 환멸을 느끼는 일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정치에서 애정을 쏟을 만한 소재거리가 고갈되어가는 게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 그 자체가 스스로 혐오감을 조장하고 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우리 정치에서 타협하고 협의하는 문화는 점점 소멸되고 있습니다. 각 정파는 양 극단을 향해서 달려가며 서로 반목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고, 과거에는 용인되지 않았던 궤변과 과장된 정치적 행동들이 추앙받고 있습니다. 제 환멸을 치유하는 방법은 잠시 덕질을 멈추고 현생을 살다가 충분히 치유되었을 때쯤 다시 정치 덕질을 시작하는 것 뿐인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조적인 자세로 정치를 바라보면 실소할 때도 많지만, 미소가 지어지는 경우도 찾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과장된 행동과 언행을 일삼으며 정파 혹은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위해 행동하는 정치가가 점점 많아지지만, 논리정연한 어조로 상대방과 국가의 미래에 관해서 토론하며 시민의 이익을 대변하려는 정치가를 아직은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정치인들 덕에, 환멸 그리고 주위의 오해를 극복할 만큼 정치에 애정을 가질 가치는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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