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울대로 배운 우리가 여전히 근시안적인 이유

일러스트=토끼풀

 
“에코 체임버”
“필터 버블”
“확증 편향”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셋 다 집단에 의해 사고방식이 편협해지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라는 점에선 매한가지인 단어들이다.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집단에 들어가게 되면, 사람은 점점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게 된다. 이런 주장을 고상하게 표현하면 바로 저 세 표현이 된다. 동시에 요즘 많은 정치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의 입에 오르내리는 표현이기도 하다. 정치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밥도 먹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국민의 40%나 되는 이 시대를 가장 명료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특정 집단 속에 묻혀 살게 될 때 개인은 그 집단 안에서만 당연시하는 주장들을 스스로도 당연시하게 된다는 설명, 그리고 그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집단 밖의 사람들에 대해 적대감을 갖게 된다는 설명은 꽤나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그만큼 에코 체임버, 필터 버블로부터의 탈피를 외치는 기사들도 많다. 알고리즘과 맞춤형 엔진을 일부러 사용하지 않는 뉴스 검색 어플리케이션이 출시되기도 하고, 개인이 일부러 다양한 콘텐츠를 검색해 보면서 유튜브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알고리즘의 영향을 줄이려는 시도들도 눈에 띈다
 
그런데, 필자를 비롯해 이런 문제의식과 경각심을 가진 사람들조차도 이 사고의 오류로부터 쉽게 빠져나오지는 못한다. 또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도 이런 오류에 쉽게 빠진다. 그 이유는 비단 개인의 의지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어리석은 본성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경계망에 걸리지 않는 적이 우리 주위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을 조심할 때,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우리를 에코 체임버 속으로 끌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에코 체임버는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을 때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같은 학문적 토대를 가진 지식과 정보들만을 소비할 때, 다시 말해 하나의 학문만을 공부하고자 할 때, 우리는 역설적이지만 편협함의 함정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자기 주장만 하는 사람들을 혐오하고, 그들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욕망으로 지식을 갈망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과 똑같은 인간이 된 자기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통념에 어긋나는 주장일 수도 있다. 우리는 편협함을 자주 무식함과 등치시키곤 하고, 그걸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부를 들곤 하니까 말이다. 완전히 틀린 주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에 따라서 이 주장의 시비는 크게 갈릴 수 있다. 하나의 학문만을 깊게 파는 행위는 무식함을 해결해줄 수는 있어도 편협함을 해결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문제의식은 개인적인 몇 가지의 경험이나 인간관계로부터 출발했다. 사회학을 열심히 공부한 내 친구들은 하나같이, 어떤 사건의 책임도 개인에게 돌리는 법이 없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보이는 범죄 사건에도 언제나 정체성과 환경결정론의 렌즈를 들이민다. 우리 모두의 안이한 생각이 이 문제의 궁극적인 원인이라며 자신에게 책임을 돌린 채 눈물을 흘리는 중인 그들을 보면, 그 감수성과 사람 좋음에 감탄하면서도 어딘가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니, 도대체 네가, 그리고 내가 그 사건에 무슨 가해를 했길래 그러는지.
 
역으로 나 자신으로부터 이런 모습을 발견한 때도 있었다. 고등학교 내내 심각한 수준의 중증 정치병자였던 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국가와 정부로부터 찾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나의 이런 점을 지적해 준 친구는 다른 정치외교학과를 지망하는 친구들도 똑같은 버릇이 있었다고 내게 말해 주었다. 모두 공적 조직의 움직임에만 정신이 팔려서 다양한 사회를 구성하는 조직들을 거의 없는 변수 취급해 버리는 고약한 습관이 있었다고 말이다.
 
이렇게, 학문은 절대 순수하지도 않고, 가치 중립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학문 분야는 정치 성향이나 종파에 가깝다. 스스로를 ‘심리학도’로 소개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중도 우파’로 소개하는 사람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같은 교리, 같은 이념적 기반에서 생각을 확장시켜 나간다는 점에서, 종교나 정치적 성향은 학문과 성격이 비슷하다. 학문도 그 학문이 다루는 대상과 목적에 근거해서 모든 논리를 전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동일 현상을 다루더라도 각 학문이 그 현상을 해석하는 주안점은 다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각 학문이 가진 한정된 탐구 대상은 그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학문이 짚어주는 지점들만 보도록 만든다. 그렇게 점점 더 관점이 편협해지고 극단화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혹자는 같은 학문 내에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책을 두루두루 읽으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고전주의 경제학과 케인스주의 경제학을 모두 본다고 해서 ‘인간의 합리적 선택’과 ‘효율적 배분상태’를 기준으로 상황을 판단하려는 경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같은 학문은 서로 다른 주장과 근거, 결론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그 논리체계와 생각의 흐름, 시비의 기준점 등이 너무나 유사하다.
 
사회과학만 그럴까? 아니. 심리학도는 어떤 사회현상이든 인간 심리에서 기인한다고 결론내리고, 지리학도는 인간 문화의 전부를 지리적 특성에 근거해서 설명하려 안간힘을 쓴다. 논리학을 판 사람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을 곧잘 무가치한 것으로 폄훼하고, 물리학자는 결국 모든 일은 다 물리법칙으로 귀결된다는 우월감에 젖곤 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다른 학문을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가 그렇게 되는지도 모른 채로 곧잘 이렇게 생각해버리기 마련이다.
 
이처럼 학문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 학문의 지식과 내용만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학문 분야에 빠져있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 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관점에 나도 모르게 녹아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렇게 한 우물만 죽어라 파다 보면, 어느 순간 어떤 이슈에도 똑같은 렌즈를 들이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일종의 색안경을 쓰게 되는 것이다. 이 색안경을 쓴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특정 이슈의 본질을 한 줄로 요약하려는 병에 걸린다. 자기들이 알고 있는 학문의 언어로, 그 현상을 정의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렇게 각자의 학문이 가진 시선대로 한 사건의 본질을 규정하려 하는 순간, 온갖 다른 요인들은 왜곡되고, 잘려 나가고, 부수적이라는 낙인이 찍혀 사라진다.
 
생각할수록 역설적이다. 세상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공부했는데, 그게 오히려 시야의 다른 부분을 가리는 꼴이 되어 버린다는 게 말이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열심히 달린 사람이 알고 보니 반대 방향으로 뛰고 있었다는 이야기 아닌가. 노력은 노력대로 다 했는데 결과가 반대라면, 그만큼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억울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넓게 공부할 필요가 있다. 정말 이 관점만이 이 문제를 보는 최선일지, 다른 요인이나 변수는 없을지, 이런 대안으로 꼭 귀결되어야 하는지, 책임을 꼭 이것에게만 뒤집어 씌워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런 관점의 확장은 결심과 의지만으로 이뤄지지는 일은 아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배경지식과 사고회로를 습득해야 한다. 그리고 결국 그건 완전히 다른 식의 탐구 방법론과 탐구 주제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나 책을 접해야 한다는 뜻이다. 에코 체임버로부터 탈출하려는 사람이 유튜브 알고리즘의 방향을 바꾸는 것과 같이, 인위적인 노력 없이는 관점을 확장할 수 없다.
 
배타주의는 멀리 있지 않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극기를 흔들며 부정선거를 외치는 사람들, 생계도 내팽개친 채 붉은 띠를 매고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는 사람들만이 배타주의자가 아니다. 그저 도서관에서 주로 고를 책이 어느 코너에 꽂혀 있는지가 다를 뿐인 사람에게, 네 생각은 틀렸다고, 공부 좀 하라고 일갈을 내뱉는 사람들 모두가 배타주의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호통치기 전에, 상대가 읽는 책들이 꽂혀 있는 책꽂이에서 나도 책 한 권쯤은 꺼내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책은 당신이 알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우주를 보여줄지도 모르니까.
 
참고문헌
조선일보, 2023. 01. 14, 국민 40%가 “정치성향 다르면 밥도 먹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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