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의 커피에 침을 뱉는다 : 수동 공격성(Passive aggression)

일러스트=토끼풀

 
과거 방송에서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를 한 적이 있다. 직장인의 애완을 유쾌하게 풀어냈었다. 미스 김 역할의 김혜수는 정말 못하는 게 없는 여자다. 그녀는 자격증을 120개나 갖고 있고 자발적 비정규직을 자처한다. 드라마 속 비정규직 여성들은 자신들을 무시하는 정규직에 분노한다. 커피에 침을 뱉는 장면이 나오는데 소심한 복수를 하고 통쾌해한다.
 
한 번쯤 직장생활에서 개념 없는 상사를 만난 적이 있는가. 상사 커피에 침을 뱉고 소심하게나마 복수한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30대 S씨는 2년 차 직장인이다. 최근에 그녀의 직속 팀장이 새로 바뀌면서 긴장 속에서 눈치 보는 일이 많아졌다. 하루는 일을 하다가 카톡이 와서 잠시 보는 중이었다. 팀장은 지나가면서 업무시간에 카톡을 본다고 무한을 주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장난이라며 지나갔다.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 후로도 팀장은 S씨에게 사소한 농담을 하거나 놀리는 행동을 즐겨 했다. S씨는 불편했지만 참았다.


사건이 터진 건 두 달 정도 흐른 뒤였다. 중요한 회의를 위해 팀장이 S씨에게 2시까지 자료를 준비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녀는 급한 일을 먼저 처리하기 위해 잠시 미뤄놓고 아예 잊어버렸다. 결국 회의는 30분이나 늦게 진행되었다. 차장한테 질책받은 팀장은 S씨에게 화를 냈다. 그녀가 사용한 방어기제가 수동공격성이다. 내면의 무의식적 분노가 결국 팀장을 난처하게 만드는 행동으로 표현된 것이다.
 


 
타인에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방해로 상대방을 화나게 한다

타인에게 욕설, 폭언, 폭력 등 능동적인 공격을 가하는 것이 아니다. 수동공격성(Passive aggression)은 수동적인 자세,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태에서 상대를 화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미성숙한 방어기제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개방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면에는 분노의 감정을 숨기고 있다. 공격하는 사람은 직접적으로 자신의 ‘화’를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해 대인관계에서 수동공격성으로 나타난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정신분석가 ‘콜로넬 윌리엄 메닝거’가 군인들에게서 수동공격적 특징을 관찰한 보고서를 쓰면서 알려졌다. 군인들은 상사가 시킨 업무를 일부러 지연시키거나 무능한 척하면서 제대로 하지 않았다. 수동적인 방법을 통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람들은 짜증이나 화가 날 때 어떻게 행동할까?.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고 변화시키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을 숨기거나 겉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수동공격성을 가지 사람들은 겉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속으로 삭이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내면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는데도 말이다. 아침에 화나게 한 남편의 칫솔로 변기를 닦는다. 남편이 저녁에 와서 그 칫솔을 그대로 사용하게 둔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 한편으로 통쾌해한다. 대담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맞서서 싸울 자신이 없기에 소심하게 복수한다. 그래 겉으로는 순종적으로 보인다. 이들은 건전한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할 줄 모른다. 참는 것만이 방법이라 믿고 냉담하고 타인을 불신하며 고독한 생활을 자처한다.
 


 
모든 것을 내일로 미루며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

수동공격성의 하나인 ‘미루기(Procratination)’는 직장생활에서 가장 많이 보여진다. 상사가 시킨 일을 지연시키거나 변명한다. 동료에게 의지하면서도 상대방의 결점을 찾는 등의 행동도 수동공격성의 패턴이다. 앞에서 S씨가 보인 행동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를 무의식적으로 곤경에 빠뜨렸다. 청소년기에 자주 보여지는 행동 중 하나도 권위적인 대상에게 반항하는 것이다. 질문을 해도 대답하지 않거나 다른 행동을 한다. 반항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소극적이고 비겁한 행동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다. 이들은 보통 외부로부터 오는 명령에 저항하는 기질이 있다. 누구나 꼭 따라야 하는 필수적이고 이성적인 의무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인다.
 
미국의 여류 소설가 마거릿 미첼(Margaret Mitchell)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는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등장한다. 풀리처 상을 수상할 정도로 꽤 유명한 소설이다. 아마 영화로 먼저 접했을 수도 있다.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매우 이기적이고 예측 불가의 매력을 갖고 있다. 수동공격성의 행동을 보이는 여성은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다.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에 과도하게 자신을 동일시하려 한다. 스칼렛 오하라는 표면적으로는 사교적이고 자신만만하며 여성스럽고 나긋나긋하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분노와 적대감이 가득 차 있다. 지나칠 정도로 남성에 대해 애정을 갈망하고 요구하며 만족할 줄 모른다. 강박적이고 집착이 심하다. 수동공격성의 양상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타인을 조정하기도 한다. 심할 경우 연극성 성격장애나 경계선 성격장애가 나타나기도 한다. 스칼렛 오하라의 행동은 연극성 성격장애로 진단한다. 다소 과장된 행동으로 타인의 이목을 끌고 ‘나만 바라봐’가 되어야 한다. 당연히 대인관계가 피상적이다.
 

 


 
수동공격적인 사람들은 감정적 의존성을 갖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힘이 없는 존재라 여기는 경우가 많다. 힘 있는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름의 방어 전략을 사용한다. 비협조하면서 저항하는 것이다. 어려운 일을 조금이라도 요구하게 되면 정당한 이유 없이 화를 내기도 한다. 특히 권위적인 대상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며 감정적 의존성을 가지고 있다. 타인에게 반항적이고 적대적인 태도 뒤에는 의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정서적 주장이 어렵고 어떻게 적절하게 행동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른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진심을 알기가 어렵다. 때로는 극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엄마가 아이의 욕구를 부당하게 거절했을 때, 아이는 엄마를 이길 힘이 없다. 엄마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마음 아프게 하는 행동을 통해 엄마를 힘들게 한다. 자학하거나 엄마의 사랑을 거부하는 행동은 성인이 될 때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부루퉁하게 구는 것, 에둘러 불평하기, 꾸물거리기, 방어적으로 굴기, 의사소통 피하기는 수동공격성의 신호다.
 
수동공격성의 행동은 부부관계에서도 나타난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여성은 남편의 사랑을 받기 위해 말로 표현하는 것을 피한다. 대신 행동으로 자해하거나 아픈 척해서 남편이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바란다. 작은 손해에도 큰 피해를 입은 것처럼 부풀리며 남편을 피해자로 만드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기본적으로 남편에 대한 불만을 말로 표현하거나 요구하지 못한다. 상대방이 거절하고 화내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편이 돌아온다고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다시 내치면서 사랑을 확인하려 하고 상처를 주는 행동이 반복된다. 경계선 성격장애의 특징이기도 하다.
 
<소심한 공격자>들의 저자 ‘안드레아 브랜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안에 숨겨진 분노를 인식하고 감정을 생각에 연결하여 신체 반응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수동공격적인 행동을 인식했다면 내면에 분노를 바라보고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감정을 평가하기보다는 사실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기주장을 통해 의사를 표현하며 갈등의 프레임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 만약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불필요한 간섭이나 강요, 충고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소심하게 복수 당할 수 있다.
 
수동공격성의 낮은 강도에는 ‘순기능’도 있다. 직장 상사의 업무 지시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자기의 생각을 말 할 수 있다. 아니면 일단 받아들인 후 적당히 게으름을 피우기도 한다. 혹은 일을 대충 처리해 버릴 수도 있다. 순기능이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본인이 소진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군인들의 수동공격성의 특징처럼 무능력한 척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일을 시키지 않으니까 말이다. 모든 열심히 했더니 계속 자신에게만 일을 시켜서 힘들다고 토로하는 분이 계셨다. 어쩌면 무능력한 척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수동공격성 방식을 알고 선택했다면 그만큼 심리적인 이득이 있다. 이것도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를 드러내 직장 상사와 대립하는 것이 어리석을 수 있다. 소심한 복수를 통해 통쾌함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한다. 표면적으로 직장 내에서 좋은 평판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S씨는 자기주장이나 솔직한 감정표현이 어렵다. 팀장과의 관계에서도 화가 나거나 상처받았지만 표현하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녀가 팀장의 업무 지시를 일부러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방어기제는 무의식적이다.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해 발생 된 일이다. 상처받은 마음은 곧 내면에 분노로 바뀐다. 스칼렛 오하라처럼 겉으로는 상냥하고 친절한 S씨의 내면에는 억압된 감정이 있었다. 감정표현이 어려운 사람들은 감정 억압이 자주 일어난다. 나는 지금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없는지 정신건강을 위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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