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행복하게 키운다는 것은

일러스트=강동현

 
5월달이 되면 으레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떠올립니다. 특히 신문, TV에 어린이날만이라도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아이를 즐겁고 행복하게 키우는 방법, 공부 잘하고 똑똑하게 자라는 방법에 대한 여러 육아 지침들이 TV, 인터넷, 유튜브를 떠돌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녀를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나요? 공부 잘하는 유능한 아이? 부모 말을 잘 듣는 유순한 아이? 사회적 성공을 통해 돈을 잘 버는 아이? 개성이 넘치는 아이? 친구가 많은 인싸? 그냥 다 됐고 행복한 아이? 부모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정말 100명이 다 다른 방식으로 대답을 합니다. 대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행복에 대한 담론은 너무 광범위합니다. 일단 행복이 무엇인가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높은 지식, 건강, 명예, 경제적 안정, 심리적 안정 등 여러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삶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SNS에는 행복한 미소를 보이는 사람들과 찰나에 포획된 행복한 장면들이 넘쳐나지만, 늘 항상 행복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고 그곳에는 포장지로 가공된 행복이 존재합니다. SNS에서는 행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George Vaillant는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로 성인의 심리발달 연구로 저명한 연구자입니다. 그는 많은 연구를 수행했는데 가장 유명한 연구는 하버드 대학교를 입학하고 졸업한 졸업생들을 노년기까지 추적관찰한 연구, 소년원에 수감됐던 청소년에 대한 추적관찰 연구, 지능지수가 높은 여성 90명에 대한 연구 등입니다. 어떻게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그가 발표한 여러 연구를 살펴보면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의 연구에서 행복한 노년기를 맞이하는 사람들은 어릴 때 정서 조절 능력이 좋고, 회복 탄력성이 좋아서 어지간한 일에 크게 좌절하지 않고 역경을 이겨나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형제나 부모와 같은 가까운 인간관계에서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모든 것들이 유년기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우연에 의해서도 많이 좌우될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여러가지 조건을 갖추게 하기 위해 경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신체적으로나 미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도록 도와주고 있고, 지적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교육적 도움, 정서적인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지금 시대는 인류 역사 중 어떤 시대보다도 절대적인 풍요와 안정을 누리고 있는 시기로 보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행복하지 않은 부모는 넘쳐나는 것 같습니다. 진료실에 오는 많은 부모들이자신은 부족한 부모라며 스스로를 비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아이 양육에 너무 몰입하여 소진된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의 요구와 짜증을 어디까지 받아줘야 하는것인지? 그리고 그렇지 않았을 때 내가 부모로서 자격이 있는지 등에 대한 걱정을 하는 부모들도 많이 봤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나 심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여러가지 법칙을 대체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움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유연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이를 안심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소아정신과 의사인 저라도 이런 말을 모두 지키는 것은 어렵다고 느낍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의 관점을 바꿔보길 권유드립니다. 부모로서 우리는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은 ‘양육 parenting’ 이라고 말합니다. 아이의 신체적, 심리적 욕구를 읽어주고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역할입니다. 관점을 바꾸면 우리는 부모,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를 ‘부모됨 parenthood’ 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부모도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고 정체성을 형성해 나갑니다.
 

 
이러한 과정은 아이를 임신하여 뱃속에서 키우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죽을때까지 지속되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뱃속에 있는 아이를 세상 밖으로 출산 하는 것도 하나의 큰 변화이고, 걷지 못하는 아이가 걸어 다니면서 큰 변화를 겪기도 하며, 말하지 못하는 아이가 의사표현을 하면서 큰 변화를 겪습니다. 처음으로 어린이집이란 사회를 경험하는 아이와 부모도 큰 변화 속에 있습니다. 청소년기, 성인기를 겪으며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는 변화 무쌍하게 바뀌어 갑니다.
 
그 과정에서 부모 역시 많은 모르는 것들에 부딪힙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아이와 상황이 원망스럽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바꿀 수 한계가 있다는 것이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하며, 내가 알던 아이를 잃어가는 것 같아 우울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나도 부모 세대처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으며, 아이의 성취가 마치 내 성취인 것처럼 자부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또 아이가 주는 사랑에 행복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아 이래서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구나’라는 그런 느낌 말입니다.
 
육아에 대한 많은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양육은 언제나 즐겁고 보람차다는 생각입니다. 아닙니다. 양육은 엄청난 체력과 감정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는 기쁨 만큼이나 슬픔도 많이 존재합니다. 부모는 무조건 희생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 자신이 행복하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아이의 마음도 공감할 수 있고 아이와의 관게도 좋게 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존재라는 생각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부모 말고도 형제, 친구, 선생님, 사회 등 다양한 구성요소가 있고 부모는 그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준비된 부모, 완벽한 부모여야 한다는 생각도 내려놓길 바랍니다. 부모 또한 처음부터 부모가 아니었으며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것처럼 자녀도 부모 혹은 가족에 영향을 미치며 서로를 변화시켜 갑니다. 그리고 이것은 시기에 따라 그 양상이 바뀌는 아주 역동적인 과정입니다.
 
제가 즐겨하는 비유가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는 마치 탱고를 추는 파트너와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여인의 향기’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만약 탱고를 추다가 실수를 해서 스텝이 엉키더라도 그게 바로 탱고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살아가는 인생은 정해진 동작을 정확하게 시연하는 칼군무가 아니고 서로 합을 맞춰가는 탱고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실수도 할 수 있고 그렇다고 해서 춤 자체가 망춰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실수가 춤을 추는 우리를 더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님들은 너무 완벽해지도록 애쓰기 보다는 지금의 상황과 순간을 즐기며 아이와 호흡하며 지내 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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