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 합리화 (Rationalization)

일러스트=토끼풀

 
30대 초반인 K씨는 외도한 남편으로 인해 충격을 받았다. 연애 기간도 길었고 첫사랑이어서 더욱더 상처가 컸다. 그녀는 홧김에 약을 먹었지만 다행히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루 병원에 입원 후 퇴원했다. K씨는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다. 남편은 그 여자가 먼저 만나자고 해서 바람을 피게 되었다고 변명한다. K씨는 그 말에 더욱 화가 났고 남편을 다그쳤다. 처음에는 용서를 빌던 남편은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화를 내고 집을 나갔다. K씨는 이혼을 요구했고 남편은 그 여자에게 가버렸다. K씨의 남편은 어쩔 수 없이 바람을 폈다는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합리화시켰다.
 
K씨의 남편을 보면,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무슨 일이든 반드시 핑계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기 싫거나 스스로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변명할 구실을 만들고 싶다. 이처럼 어떤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무의식적으로 자기에게 편리한 이유를 대는 것을 ‘합리화(Rationalization)’라 한다. 신경증적 방어기제로 분류된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나 태도를 탓하지 않고 남 탓 혹은 주변 환경 탓으로 돌린다.
 
불합리한 상황에서 상처받지 않도록 자아는 교묘하게 변명하려 한다. 결국 더 큰 상처를 받고 싶지 않기에 모순행위를 하려는 것이다. 또한 자기 보호와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행동의 정당성을 만든다. K씨의 남편은 외도라는 본질을 잊었다. 그는 상간녀 잘못으로 돌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켰다. 합리화는 자기방어의 목적으로 사용될 때 본질을 무시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된다. 그렇다고 합리화가 항상 문제만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삶의 원동력으로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본질적인 것은 무시하고 자기방어의 목적으로 변명거리를 만든다

 
자기합리화와 자주 혼용되어서 쓰는 말이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다. 인지부조화는 1957년 미국 심리학자인 ‘레온 패스팅거(Leon Festinger)’가 주장한 이론이다. 패스팅거는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라 믿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조화로운 상태를 원한다. 불균형이나 불일치 상황은 인간을 심리적으로 긴장 상태로 이끈다. 불쾌감과 긴장 상태를 해소하고 안정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행동하는 것이 부조화다. 자기합리화와 인지부조화는 차이가 있다.
 
인지부조화는 자신의 행동과 원하던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에 불쾌함을 느낀다. 그래서 자신의 태도를 바꾸며 왜곡시킨다. 그 후에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자기합리화 방식이다. 자기합리화는 인지부조화와 상관없이도 나타날 수 있어 둘이 완전히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없다. 불쾌감을 경험하는 동안 부조화를 줄이거나 제거하는 방법으로 합리화를 쓴다는 말이다.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태도나 사고를 자기에게 편리한 방법으로 바꾼다.  
 

방어기제

 
예를 들어, 아기의 분유 값이 없어 물건을 훔치다가 잡혔다. 절도를 인정하기 보다는 ‘돈도 없고 아기가 굶는데 어쩔 수 없었어…’ 라며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태도를 왜곡시킨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절도는 엄연한 범죄다. 자신의 정당화시키려는 행동이 절도를 저지른 행위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더 초점을 맞춘다. 본질을 잊은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문제고 환경 탓이다. 절도의 행위를 합리화시켰다.
 
어떤 사람이 다이어트를 한다면서 쉴 새 없이 먹는 행동을 반복한다고 하자. 먹는 것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건 칼로리가 낮아서 괜찮아’ 라고 말하며 음식을 계속 섭취한다. 칼로리가 낮다고 말하며 음식을 섭취해야 덜 죄책감에 빠진다고 할까. 요즘 많이 등장하는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도 합리화의 형태다. 패스팅거는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 양립 불가능한 생각들이 심리적 대립을 일으킬 때, 적절한 조건에서 자신의 믿음에 맞추어 행동을 바꾸기보다는 행동에 따라 믿음을 조정한다.”고 말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 살고 있다. 어느 날 하느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절대 선악과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탄인 뱀의 꼬임에 넘어간 이브는 아담과 함께 하느님의 명령을 어긴다. 숨어버린 아담을 찾아 하느님은 이유를 물었다. 아담은 아내인 이브의 잘못으로 모든 책임을 돌린다. 하느님께 혼나고 싶지 않아 자기방어를 하였다. 아내에게 책임 전가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아담의 행동으로 이브는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K씨의 마음도 그러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것이 그녀가 가장 견디기 어려운 상처였다.
 


 
합리화는 때에 따라서는 필요하며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합리화의 방어기제를 사용한다고 해서 무조건 자기중심적이라 할 수 없다.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삶에 있어서 합리화는 필요하다. 특히 반복적이고 저항할 수 없는 상처 앞에서는 말이다. 잘못을 무조건 자책하고 스스로 비난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합리화 방어기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모두 내 탓이 된다. 항상 문제를 너무 직면하려고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적당한 합리화를 통해 좌절하고 비난하는 행동을 멈춘다.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내 삶을 변호하려는 노력이 더 건설적이다. 오히려 삶을 열심히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합리화는 두 가지 전략으로 분류될 수 있다.
 
첫 번째로 신포도 형이다. ‘여우와 신포도’ 라는 이솝우화에서 유래되었다. 어느 날 배고픈 여우가 길을 가다가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맛있는 포도를 발견한다. 하지만 다리가 짧은 여우는 열심히 뛰어보지만 포도나무가 너무 높아 손이 닿지 않았다. 여우는 “어차피 저 포도는 시고 맛이 없을 거야” 라고 말하며 자리를 떠났다. 자신의 목적이나 욕구가 좌절된 상황이다. 욕구와 현실과의 괴리를 채우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포도가 신 것’이라고 부정하며 여우는 부정적인 자기합리화를 시켜 스스로 안정감을 찾는다.
 

여우와 신포도

 
두 번째는 달콤한 레몬 형이다. 결과가 볼품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할까봐 사용하는 합리화다. 마치 간절히 원했던 결과라고 이야기하는 전략이다. 어떤 여자가 생일날 애인으로부터 아주 값이 저렴한 화장품을 선물 받았다고 하자.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너무 저렴한 브랜드 아니야.”라고 말하자. “아니야. 이거 내가 정말 갖고 싶었던 화장품이야.” 라고 말한다. 아무리 신 레몬일지라도 자기 것이라면 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달콤한 레몬 형은 긍정적인 자기합리화에 해당한다. 저렴한 화장품은 원래부터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이라고 합리화시킨다. 역시 마음의 안정감을 찾는다.
 
두 가지 유형에서 보듯이 자신을 자책하고 비난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여우가 자신의 신체적인 외모를 비관하는 것이 나을까? 저렴한 선물을 주었다고 타인의 말에 휘둘리는 것이 나을까? 때로는 자신의 태도를 변화시켜 삶을 변호하는 방식으로 합리화를 시키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말이다.
 


 
행동이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변화가 어렵다

 
합리화의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뭘까?. 심리적으로 불안과 불편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이나 행동이 잘못되었다면 인정하면 된다. 하지만 인정하는 것이 어렵다. 바꾸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우리의 마음은 불안하고 불편하다. 이런 감정을 줄이기 위해 주어진 상황에 맞춰 자신의 태도나 신념을 바꿔버리면 편해진다. 그러면 편안한 상태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K씨의 남편은 그 뒤로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K씨는 이혼을 준비했고 상담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고자 했다. 연애 기간이 길었고 첫사랑이었던 만큼 상처가 꽤 컸다. 그녀는 다시 약을 먹지 않을 것이다. K 씨가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용서를 구했다면 부부의 관계는 달라졌을까?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은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일본의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Omae Kenichi)가 한 말이다. 결국 행동이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변화는 어렵다. 합리화는 인간에게 있어서 필요한 방어기제이다. 다만 적당히 사용하자. 뭐든 과하면 탈이 나는 법. 자신으로 인해 주변 사람이 곤란하거나 힘들다고 말한다면 자신을 반드시 돌아봐야 한다. 합리화의 방어기제는 모두 남 탓으로 돌리는 특징을 갖고 있기에 문제의식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방어기제는 무의식적이다. 본인이 자각하지 못한다면 계속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주변 지인의 말을 허투루 듣지 말고 편리한 대로 자신의 행동을 무조건 정당화시키지 마라. 무엇이든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글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