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질 수 없다면 너라도 가져라: 이타주의 (Altruism)
30대 Y 씨는 아직 미혼이다. 그녀는 가족들을 위해 항상 나서서 자신이 불편감을 감수한다. 좋은 음식이 있어도 아버지와 동생이 우선이다. Y 씨의 어머니는 그녀가 18살 때 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몫까지 동생과 아버지를 돌보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Y 씨는 친구들과 놀러 갈 계획을 잡았다가 가족의 일로 취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와 동생을 위한 희생에는 불평이 없었다. Y 씨는 가족을 돌보는 일에 보람을 느꼈다. Y 씨의 동생이 연애를 시작하자 자신이 아끼는 가방이나 신발을 빌려주기도 하였다. 동생의 연애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지지해주었다.
Y 씨의 행동을 이타주의(Altruism)라고 부른다. 이타주의는 성숙한 방어기제에 해당한다. 이타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은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타인의 행복에 오롯이 행동 목적을 둔다. 프랑스 철학자‘오귀스트 콩트(August Comte)’가 이타주의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이타성은 타인의 행복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배려하는 내재적인 심리적 특성을 말한다.
이타성이 기본이 되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친사회적 행동(Prosocial Behavior)’이다. 친사회적 행동이 조금 더 광범위하다. 자신이나 타인의 이득을 위한 모든 도움 행동을 포괄한다. 이타 행동은 도움행동 가운데 자신의 이익에 대한 부분은 배제한다. 순전히 타인만을 돕기 위한 행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타주의는 다양하다
가정 혹은 사회에서 나타나는 이타주의, 호혜성 이타주의, 순수한 이타주의 등 다양한 이타주의의 모습이 있다. 앞서 말한 Y 씨는 가정에서 나타나는 이타주의다. 타인보다는 가족들에게 더 희생하는 형태다. 사회에서 나타나는 이타주의는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행위다. 자원봉사나 기부금의 형태로 보여질 수 있다. 성숙한 방어기제이긴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모든 지나침이 과하면 자신을 잃어버린다.
자신이 가진 것이 없어도 빚을 내서도 기부를 하는 행위,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타인을 위해서만 희생하는 행위 등이다. 이타성으로 인한 친사회적 행동이 많아지면 남을 챙기고 돕느라 자신의 시간을 갖지 못한다. 자기 자신은 없고 오로지 타인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는 일에 집착하게 된다.
호혜성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는 로버트 트리버즈(Robert Trivers) 박사가 발표한 이론이다. 상대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면 나중에 나도 상대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뜻이다. 계약 이타주의와 순수한 이타주의는 구분되어야 한다. 계약 이타주의에는 대가성이 존재한다. 자칫 대가성은 분노를 느끼고 갈등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친구가 과제를 하는데 힘들어했을 때, 그냥 순수하게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지금 내가 이 친구를 도와주면 나도 힘들 때 도와주겠지..’의 생각이 저변에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미래에 보답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그 친구에 대해 분노하게 된다.‘나는 도와줬는데.. 어쩜 이럴 수 있어…’ 하고 말이다.
방어기제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딸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는 ‘자아와 방어기제의 메커니즘(The Ego and the Mechanisms of Defense)’에서‘이타적 양도(Altruistic surrender)’라는 말을 사용했다. 쉽게 말해 이타적 양도는‘대리만족’이다. 자신의 욕구를 타인을 도우면서 충족하는 것이다.
Y 씨는 가장 힘든 시기에 어머니를 잃었고 맏이로서 책임감이 컸다. 가족이 행복한 모습, 동생이 연애하는 모습 등에서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안나 프로이트는 이타적 양도에 대해“타인을 위한 삶이 자신에게 유일한 존재 방식이라면 스스로 욕구와 재능을 무시하고 사는 것”이라고 하였다. Y 씨의 삶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이타주의 유발 기제에는 공감과 조망 수용이 있다
이타주의자들은 타인에게 건설적으로 봉사하며 개인적으로 만족감과 충족 경험을 간접적으로 느낀다. 이타성의 유발 기제에는‘공감’이 있다. 공감은 타인의 감정, 생각, 상황을 이해하며 자신과 타인 사이의 관계를 형성한다. 타인의 정서적인 마음을 경험하는 공감은 이타주의를 촉진 시킨다. 타인의 아픔이나 슬픔을 줄여주기 위한 행동이 자신의 정서적 경험이나 아픔도 경감시켜주기 때문이다.
공감을 잘하려면 인지적 요소와 정서적 요소가 필요하다. 인지적 요소는 타인의 생각, 감정의 수용과 이해를 위한 자아중심적인 사고의 극복이다. 정서적 요소는 공감적 관심,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정서적 간염이다. 선한 마음은 개인적인 이득을 바라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타인을 돕는 것은 사회적으로 좋은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타성의 행동 결정에 중요한 요인으로 ‘조망 수용’이 있다. 조망 수용은 타인이 현재 처한 위치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다. 곤경에 처한 타인의 관점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이타적 행동을 가능하게 만든다. 사회적 조망 수용 능력은 친사회적 행동에 영향을 주고 타인의 생각, 감정 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인간은 남을 배려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다만 정도 차이가 있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연구팀은 15개월 된 유아 47명을 대상으로 이타성을 실험하였다. 공정한 마음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은 첫 돌 무렵 생성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타주의자가 지배 한다>의 저자 슈테판 클라인(Stefan Klein)은“이기주의자가 단기적으로 볼 때는 훨씬 잘 사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타인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이타주의자가 훨씬 앞선다.”고 하였다. Y 씨는 공감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타인을 배려하는 일이 많아 직장 내에서도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주관적 행복도가 높은 사람들은 이타적 행동을 하는 비율도 높다
이타적 행동을 할 때 애정과 관련된 호르몬인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 분비된다. 행복을 느끼게 하고 스트레스를 감소시킨다. 면역체계를 강화시켜 인간 수명도 길게 만든다. 긴밀한 인간관계 또한 기대수명을 높인다. 타인에게 사랑을 받는 게 아니라 얼마나 주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타적인 사람들의 75%가 행복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들의 95%가 불행한 것으로 판별되었다고 한다. 이기적인 사람은 타인의 눈에 불행하다고, 이타적인 사람은 훨씬 더 행복하다고 인식된다. Y 씨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인간은 불편감을 느껴야 변화된다. 무조건적 희생은 언젠가는 자신의 에너지가 고갈될 것이다. 아마도 Y 씨는 번 아웃 되었을 때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다.
심리학자 스티븐 포스트(Stephen Post)도 이타적 감정과 행동이 행복, 건강, 수명에 연관성이 있다고 했다. 주관적 행복도가 높은 사람들은 이타적 행동을 하는 비율도 높다. 또한 이타성을 가진 사람들은 뇌부터 다르다. 펜실베니아 대학과 조지타운대학의 공동 연구팀은 낯선 사람에게 신장을 기증한 경험과 이타성을 가진 대상자들로 연구를 진행했다(심리과학, Psychological Science, 2018.8.21.).
연구 결과 이타성을 가진 대상들은 자신이 직접 고통을 경험할 때와 낯선 사람의 고통을 관찰할 때, 활성화되는 신경계 부위가 상당 부분 겹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타성이 높으면 타인의 고통을 보는 것만으로도 뇌가 반응하고 행동화한다는 말이다.
톨스토이는“사람은 누구 할 것 없이 자신만의 짐을 지니고 살아가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위로와 충고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서로 의존하며 살게 마련이다. 타인과의 협력은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적절한 이타성을 가지고 살아갈 때 자신의 행복이나 만족감이 커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행복하게 살면서 장수하고 싶다면 타인에게 친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