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캠페인의 세계] 3화

일러스트-토끼풀

 
정치인의 글을 쓰는 일은 기자의 글쓰기와 양상이 다르다. 흔한 글쓰기 원칙이 통하지 않는다. 유튜브 클립 제목으로 예를 들어보자.
 
<미국, 삼성전자에 반도체 기밀 요구>
<삼성전자에게 반도체 기밀 당당히 요구한 미국>
 
첫번째는 언론사에서 주로 쓰는 제목이고 두번째는 SNS에 필요한 제목이다. 어떤 차이가 느껴지는가?
 
어순 차이라고 하면 70점짜리 답변이다. 감정 차이라고 해야 100점짜리 답변이다. SNS에는 감정이 있어야 한다. 감정의 동요가 없는 SNS는 그냥 ‘공지사항’이다.

<삼성전자에게 반도체 기밀 당당히 요구한 미국>에 등장하는 ‘삼성전자’와 ‘미국’에서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가? 선과 악이다. 한쪽은 피해자고 한쪽은 가해자다. 감정선이 뚜렷한 글쓰기는 정통 언론 글쓰기에서는 지양해야하지만 정치인의 글쓰기에서는 필수적이다.
 
왜 그럴까?
 
정보가 흔해진 세상이다. 정보는 넘쳐나고 그 중에 아주 일부만 선택받는다. 정치인 홍보 담당자는 정보를 만들어내는 사람이고, 유권자는 그 중 아주 일부만 선택한다.
 
그러니 목적부터 확실히 하자. 정치인의 SNS는 재미있어야 한다. 웃기든, 슬프든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없는 SNS는 살아남지 못한다.
 
연예인과 인플루언서의 일상은 신기하다. 영상 레시피는 입맛을 돋운다. 살랑거리는 아말피 해변가의 커튼 영상은 보고만 있어도 시원하다.
 
그런데 정치인은? 어떤 종류의 재미가 있는가? 잘생겼는가? 웃긴가? 그 어떤 일말의 재미라도 있긴 한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너무 예쁘고 잘생겨서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정치인은 거의 없다. 입심이 너무 좋고, 몸을 아끼지 않는 개그를 펼치는 정치인도 없다. 무엇보다도 그건 정치인의 일이 아니다.
 
그럼 선택받으려면, 재미있으려면 정치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치인은 말로 혹은 글로 재미를 일으켜야 한다. 캠페이너가 글을 쓰고 읽는 사람이어야하는 까닭이다. 흔한 정치인의 유튜브 제목을 보자.
 
<OO당 의원총회 제153차 #의원총회 #OOO #원내대표>
<[OOO와 대한민국] 20XX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
 

사진=유튜브 나경원
사진=유튜브 나경원

 
Figure 1 아무리 스타급 의원이라고 해도 전략없는 캠페인을 하면 무너진다

 
어떤 부분에서도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상술한것처럼 SNS게시물이라기보다는 ‘공지사항’에 가깝다. 반드시 클릭해야하는게 아니라면 되도록 피해가고싶다.
 
또 다른 유튜브 제목을 보자.
 
<식빵 한봉지가 1만원이 된다면? [오늘의 조정훈] #shorts #국회>
<세금으로 베푼 제도 벗겨먹고, 카이스트 교수 자리까지…조정훈 화났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 청문회]>
 
이런 제목은 자기도 모르게 누르게 된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자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위 제목을 일반적인 정치 캠페이너처럼 써보자.
 
<[오늘의 조정훈]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하루 빨리 대처해야 합니다 #shorts #국회>
<[2022.5.14. 이창양 산업부 장관 인사청문회] 이창양 장관 후보자 혈세 유학 논란>
 

사진=유튜브 시대전환 조정훈TV
사진=유튜브 시대전환 조정훈TV

 
Figure 2 좋은 캠페인 전략만으로 무명에 가깝던 의원이 빵빵 터지기도 한다

 
놀라운 점은 두 가지 모두 필자가 맡았던 계정이라는 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감정없는 공지사항을 찍어낼 때는 상사를 설득하지 못했고, 기존 문법에서 벗어난 글을 쓸 때는 상사를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일 못하는 직원은 상사를 설득하지 않는다. 열심히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상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곁에서 제안을 하고 좋은 방향으로 설득하는 것이 보좌다. 시키는대로만 할거면 ‘브레인’임을 포기하고 손발 역할 이상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의원은 분명 일반적인 정치 캠페이너 같은 글을 당신에게 주문할 것이다. 그러나 안된다. 설득해야 한다.
 
“의원님, 세상은 빠르게 바뀌지만 사람은 그만큼 빨리 변하기 어렵습니다. 의원님의 생각이 세상에 닿으려면 어쩔 수 없지만 세상의 리듬에 맞춰야 합니다. 의원님이 맞추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제가 최선을 다해 조율해드리겠습니다.”
 
이런 제안마저 거절하는 의원이라면, 가라앉는 배다. 탈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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