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민주적일수록 더 민주적이다

 
플라톤의 민주주의 비판이 오늘날 포퓰리즘에 가지는 함의
 

일러스트=토끼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엘리트주의적이었다. 반민주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의 배경에는 지식을 미덕으로 여긴 플라톤의 지성주의적인 태도가 있다. 지성주의에 따르면 진리는 여러 가설 가운데 어떤 가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비중이나 진리에 대한 여론과는 본질적으로 무관하다. 즉, 다수결로 진리를 결정할 수 없다. 플라톤은 고대 민주주의의 꽃이었던 아테네 출신으로 그 아테네 민주주의의 기초를 닦은 솔론의 후손이다. 하지만 플라톤의 정치적 구상은 아테네의 민주적 전통을 따르고 있지 않다. 엘리트주의적인 교육을 통하여 선공후사의 사명감을 가진 인재를 양성하여 공동체의 통치를 맡긴다는 발상은 바로 아테네 민주주의를 근원적으로 거부하는 것이었다.
 
플라톤은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했다. 그러나 플라톤의 사상이 민주주의의 아름다움에 무감각한 것은 아니다. 플라톤은 현대인들이 민주주의를 옹호할 때 사용하는 표현과 거의 흡사한 용어로 민주주의를 찬양했다.
 
현대인들은 민주주의의 다양성에 대한 관용이 다양한 삶의 방식들이 번성하게 하는 것에 주목하면서 민주주의가 지닌 다원주의적 속성을 찬양한다. 이와 유사하게, 플라톤은 특정한 삶의 방식을 시민들에게 의무로서 부과하기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다른 정치체제와는 달리, 삶의 방식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여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민주주의의 장점을 예찬했다.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다양한 사람들의 공존을 허용하는 덕분에 철학이 활성화 된다고 보았다. 적어도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민주정은 철학적 탐구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간섭만 받으면서 자신만의 철학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 따라서 정치와 관련된 다른 모든 변수가 안정적이라는 전제 하에서는, 국가를 다스리기만 하면 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는 정치체제가 가장 좋다. 민주주의적인 정치제제에서 그 사람들은 모든 대안들을 검토하고 자유롭게 최선의 것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은 민주주의에 대한 혹독한 비판을 가한다. 플라톤이 보기에 민주주의는 그 특유의 자유에 대한 열렬한 헌신이 지나친 바람에 공동체를 위한 바람직한 삶의 기준마저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부과하는 것을 망설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는 공동체를 무방비상태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시민들의 영혼 안에 무법상태를 조성하고, 민주적인 사람일수록 무절제로 향하게 된다고 했다. 정의를 달성하는 데에 필요한 ‘유익한 욕망’과 쾌락만을 쫒는 ‘불필요한 욕망’을 구별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능력은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의 근본원리인 자유와 평등에 대한 민주주의의 헌신으로부터 나온다. 민주주의 원리를 극단적이고 교조적으로 받아들일 때, 그러한 원리들은 상이한 시민들에게 상이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이한 삶의 방식에 대해 상이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까지도 금지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 민주적인 사람들은 모든 욕망과 추구들을 동등하게 존중하고 마는 실책을 범한다. 그들은 좋은 욕망에 속하는 쾌락과 나쁜 욕망에 속하는 쾌락이 존재하며 전자는 실천되고 존중되어야 하며 후자는 견제 받고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오히려 그들은 모든 것들을 비슷하며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모든 종류의 행동과 삶의 방식을 무분별하게 시도한다. 그런 삶에는 질서나 필요성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
 

플라톤 / 이미지=Wikimedia Commons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야기하는 개인 차원의 도덕적 타락을 너머서 국가의 정치적인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배태적으로 자멸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최선의 정치체제라는 민주정이 최악의 정치체제인 독재정으로 향하는 길을 닦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다수의 서민들에 의한 정치적 지배가 민주주의에서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이것이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서민들은 자신의 사회경제적 부족함을 충족하기 위해 공권력을 이용하려고 한다. 서민들은 소수의 기득권자로부터 재산을 빼앗아 서민들에게 재분배하는 법을 통과시키려고 노력한다. 기득권자들 또한 서민들과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인간들이고 정치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길 원한다. 기득권자들로서는 민주정의 방식에 의거하여 다수결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방어하기에는 자신들의 머리수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민주정 그 자체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기득권자들의 위협을 인식한 서민들은 민주정에 기반한 그들의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권력을 지키기 위해 신흥세력인 중간계급과 결탁하여 그들 가운데 서민의 대변자를 임명하고,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복으로 이 새로운 지도자에게 비범한 권력을 행사하도록 한다. 그러나 이 지도자 또한 이기적인 인간이기에 소유하게 된 강대한 권력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이익을 추구하여 자기 재량에 따라 통치하게 된다. 다시 말해, 이 지도자는 독재자가 되어버린다. 결국 자유를 얻고자 소망했던 서민들은 경쟁하던 기득권자들과 함께 모두 노예상태에 처하게 된다.
 
이것이 플라톤이 분석하고 예측한 민주주의의 자멸이다. 플라톤 생전에는 이러한 분석을 입증할 사례가 나타나지 못했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이미 몰락했고, 그리스에 이어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한 나라들은 전제국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분석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민주주의의 자멸적 성향에 대한 플라톤의 예측은 플라톤이 죽고 2세기가 지난 시점에 로마 공화정에서 정확하게 실현되었다. 연이은 전쟁으로 귀족들만으로는 병력을 유지할 수 없었던 로마는 서민들에게도 병역을 부여하였고 그 과정에서 서민들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었다. 정치적 입지가 강화된 서민들은 정복 전쟁의 성공으로 귀족들이 보유한 광대한 장원을 해체하고 부를 재분배하길 원했다.
 

그라쿠스 형제

 
유명한 그라쿠스 형제는 서민을 대표하는 호민관으로 당선되어 토지제도를 개혁하려다가 암살당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로마는 귀족의 이익집단인 족벌파와 서민의 이익집단인 민중파로 나뉘어 내전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이미 유명무실한 단계에 이르렀지만 민중파의 마리우스든 족벌파의 술라든 정권을 잡은 군벌들은 적어도 로마 공화정의 전통을 존중하였다. 명목상으로나마 존속하는 민주주의의 숨통을 끊은 것은 군벌 출신 독재자들이 아니라 자유를 갈망한 민중이었다.
 
로마의 민중은 오랜 정치적 혼란에 불안하였고 내전을 종식시키고 질서를 회복하길 원했다. 그리하여 로마인들은 족벌파와 민중파를 모두 견제하는 동시에 아우르는 카이사르의 신흥세력에게 비범한 권력 행사를 허락하였다. 그 결과, 공화주의자들의 최후의 저항으로 카이사르가 암살당하긴 했지만, 카이사르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가 정치적·군사적 특권을 가진 아우구스투스로서 사실상의 황제가 되면서 로마의 공화정 시대는 끝나게 된다. 자유를 추구한 로마의 시민들은 역설적으로 황제의 신민이 되어버렸다.
 
현대 국가 가운데 미국은 민주주의 역사가 오래된 서구의 정치 선진국들 중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민주정을 구축하는 데에 성공했다. 여기에는 부분적으로 플라톤의 민주주의 비판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온당하다. 민주주의의 자멸적인 성향에 대해 플라톤이 『국가』 8권에서 한 설명은 미국 헌법의 아버지 제임스 메디슨이 『연방주의자 논고』 9장과 10장에서 제시한 설명과 매우 유사하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민주정에서 대체로 서민들로 구성될 다수당이 기득권자들의 권리를 빼앗기 위해 공권력을 행사하려할 경우 이에 대해 기득권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소수당이 반발하여 극렬한 파당적 갈등을 유발하게 되고 내전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인류 역사를 통해 이해하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다수의 지배를 허용하면서 동시에 소수의 권리, 특히 부자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삼권분립, 양원제, 간접선거, 연방제 등의 제도를 고안했다.
 
어떤 미국인들은 서민들과 중간계급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기득권자들에 대한 중과세를 계획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동시에 미국의 정치제도가 그러한 계획을 실행에 옮길 능력을 좌절시킨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들이 기득권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어서 기득권자들이 미국의 민주정을 적대시하지 않고 계속해서 충성하도록 만들어왔다. 그리하여 미국의 서민들도 기득권자들의 민주주의 이탈에 맞서 자신들의 대변자에게 비범한 권력 행사를 위임할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역설적이게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덜 민주적으로 미국의 정치체제를 설계한 덕분에, 미국은 더 민주적으로 고안된 제도를 가지고 있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정치적 안정을 조성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즉 미국의 민주주의는, 아마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플라톤의 민주주의 비판에 영향을 받아서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는 정치체제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들고자 지혜를 발휘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존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플라톤이 구상한 정치체제는 지성에 기초한 신분제 사회였으며, 이는 고대 아테네의 몰락에 대한 귀족주의적 반동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자유주의 철학자 칼 포퍼가 플라톤을 ‘열린사회의 적’이라고 규정한 대목은 이해할만 하다. 칼 포퍼는 독점적인 진리를 주장하는 자를 열린사회의 적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자기파멸적인 몰락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다는, 즉 최악의 정치체제인 독재정으로 향하는 길을 닦고 있다는 플라톤의 통찰력은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에 관한 많은 함의를 줄 수 있다.
 
2023년 현재, 가장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민주주의 정치를 해왔다는 미국조차 좌우보혁을 막론하고 ‘대중에 영합하는 정치’, 즉 포퓰리즘이 민주주의라고 호도하는 세력들에 의해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다. 전세계적인 포퓰리즘의 창궐과 그런 대중의 민주적 지지를 바탕으로 대두하는 스트롱맨들은 우리가 사는 시대의 민주주의가 자멸하는 징후라고 하겠다. 플라톤의 예측이 우리 시대에는 실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시민의식이 각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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