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길을 걷네. 8] 한 어머니를 보내며, 횡성호수를 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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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토끼풀

 
6월 1일 아침, 친구 L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다니, 어디로? 먼저 가신 우리 엄마 계신 아득한 하늘로? 아니면 흔적 없이 바람 속에 흩어지실까? 어느새 나도 아침저녁으로 몸이 허청거리는데, 친구 어머니 장례에 문상을 나서면서 단단히 마음과 몸을 조여맨다.
 
강릉행 열차표를 예매했다. 주말 건너 현충일까지 이어지는 징검다리 연휴기간이라서 저녁 시간의 기차표는 다 매진, 2시 1분 기차표를 샀다. 친구 어머니는 뇌경색으로 쓰러져 꼬박 삼 년을 앓다 돌아가셨다. 고명딸인 친구는 남동생들이 챙기지 못하는 세심한 간호와 살아온 날에 대한 위로를 도맡아 틈틈이 서울과 횡성을 오르내렸다. 강릉 가는 기차는 으레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줄 알았지만 서울역에서 시작하는 기차도 있었다. ‘itx-이음’. 가끔씩 동해바다를 보고 싶을 때, 드문드문 강릉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한번도 횡성역에는 내려보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한국인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져 유명한 해외 명승지나 유적지로 문화탐방을 떠나는 여행자들이 많아졌다. 나도 몇 군데 가보고 싶은 곳이 있고 여행지의 사진들이 SNS에 실시간 올라올 때 부럽기도 했지만, 나는 사정이 여의치 못한 데다 여행에 대한 욕망이 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우리 땅에도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 얼마나 많은가.
 
나이 들어 만난 친구의 어머니가 소천하시어, 이제야 처음 횡성땅을 밟게 된 것이다. ‘횡성’ 하면 한우가 유명하다지만, 나는 고기맛을 즐기지 않았고, 친인척과 지인이 살고 있는 지역이 아니었으니, 첫 방문이란 면에서는 외국이나 우리 땅 횡성이나 같은 게 아닐까? 서울역에서 기차 타면 1시간 30여 분만에 횡성역에 도착한다니… 가까워서 더 놀랍다.

함께 문상하기로 한 친구가 있어서 저녁 시간에 장례식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늦은 오후의 기차표는 매진인 데다 친구의 고향인 횡성을 조금 사귀어볼 생각도 있어서, 서너 시간 앞당겨 횡성역에 도착했다. 기차역에 내리면 일단 횡성군 안내지도를 읽고 읍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면 되겠지. 그 지역을 더 잘 사귀어 보려면 될 수 있는 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읍내 중앙시장을 둘러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의 표정과 맛, 삶의 냄새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횡성역 전경. 횡성역 역사는 소의 뿔을 형상화하였다고 한다.

 
어디나 그렇듯이, 횡성역은 투명한 유리와 하얗게 칠한 둥근 철기둥으로 깔끔하게 지어져 시골역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할랑한 역사를 빠져나오는 동안, 실내의 공간 어디에도 그 흔한 자판기나 광고선전물 하나 붙이지 않아서 비온 후의 맑은 바람만큼이다 첫인상이 깨끗했다. 역사 바깥으로 나와 보니 들판 너머 멀리 아스라한 곳에 두세 겹의 낮은 산이 횡성 지역을 편안하게 감싸고 있었다.
 
여기가 산 높고 골 깊은 강원도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경기도나 논농사 많이 짓는 충청도 쯤 되어보였다. 찻길은 역 앞으로 지나가지만, 정류장 안내판이 안보여서 역사 그늘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한 여성에게 장례식장 가는 길을 물어보니, 그녀도 오늘 문상을 온 참이라고 했다. 상주 이름이 같았다. 그녀는 상주 L과 20대에 만나서 지금까지 빈민촌의 보육활동가, 공붓방 선생님, 발도로프학교 교사로 일해온 J선생이었다.
 
아, 횡성의 바람 맛! 지금 이 바람에는 맑고 향긋한, 논의 벼 냄새가 섞여 있어요. 그녀는 바람을 깊게 들이마시고, 비가 개이고 날씨가 좋아진 것이 망자의 덕인 것 같다며 좋아했다. 버스 배차 간격이 길어서 20여분을 더 기다려야 했기에 우리는 다시 역사 대합실에 들어와 앉았다. 저녁 시간까지 어디를 둘러볼까 궁리하고 있다가, 나는 직원에게 물어서 횡성군 안내지도를 한 장씩 뽑아다 훑어보았다.
 
횡성군 한가운데에 큰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J 선생님이 횡성읍에서 멀지 않은 횡성호수를 추천하면서 함께 가자고 했다. 참 잘 만났다. 작년인가 봄인가 가을쯤 상주가 된 친구로부터 횡성호수가 참 아름다우니 시간 맞춰 함께 가자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동행하지 못했던 기억이 났다. 호수가 무척 크고, 관광객도 오지 않는 곳이라 동행인이 있으면 더 좋다고 반가워했다. J 선생은 가끔씩 횡성호수를 찾기도 하는데, 최근 몸이 아팠던 터라서 이 호수를 걷고 싶었다고 했다.
 
버스가 왔다. 교통카드가 전국적으로 유효하고, 한국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선진적이니까, 강원도 횡성버스도 안내방송을 정확하게 해주겠지 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동행자 J선생님은 버스를 타자마자 기사님께 횡성호수를 가려고 하는데 버스 타는 곳이 어딘지 물어보았다. 3.1공원 앞에서 타면 된다고 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좌석에 앉아 안내방송을 기다리고 있자니, 창밖으로 깨끗한 시골길 시골마을이 지나간다. 역에서 내린 사람이 달랑 두 명, 20여분 기다려서 탄 읍내 가는 버스에도 사람이 너댓 명 밖에 되지 않았다. 인구 4만6천여 명, 횡성은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할랑했다.
 
읍내 가까이 왔을 때 버스기사님이 우리를 불렀다. 여기서 내리면 된다고 하면서 차를 세웠는데, 실은 5분 전에 횡성호수로 가는 버스가 지나가 버렸다고 했다. 다음 버스는 두 시간 후에나 오니 어쩌냐고 아쉬워했다. 이럴 수가…. 횡성읍 버스배차시간과 코스를 잘 알고 있던 버스기사님이 우리를 호수로 가는 버스와 연결해 주려고 평소에 가던 길이 아닌 지름길로 버스를 몰아서 우리를 그곳에 내려준 것이었다. 이렇게 무리를 했음에도 5분 전에 버스는 떠나버렸으니, 우리보다 기사님이 더 아쉬워했다.
 
설명을 마친 후, 커다란 버스는 꽁무니를 돌려 본래의 노선을 향해 멀어지고 있었다. 횡성읍 10번 버스였다. “아니, 그럼 우리를 위해서 잠시 노선을 이탈해서 여기까지 와준 거란 말인가?” 아, 이게 인구가 적은 시골읍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횡성이니까 가능한 일이며, 저런 경험 많은 분이니까 가능한 일이구나.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웃었다. “횡성이 벌써부터 우릴 감동시키네요. 횡성은 이런 곳이예요….” J선생이 말했다.
 
택시를 불러 횡성호수에 내리자 J선생은 상주 L과 만나고 사귀어온 30년 인연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미 고인이 되신 L의 아버지와 방금 소천한 어머니 박여사와도 추억이 깊었다. J와 L은 20대에 시작한 빈민촌 영아보육 활동에서 선후배 사이로 만났다. 결혼 후 개인사가 달라지고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오늘까지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중. 그 긴 인연 속에서 횡성과 L의 부모님이 자기 고향 자기 부모님이나 다름없이 푸근하고 기댈만한 곳이 되어주었다고 했다. 공붓방 아이들을 데리고 현장학습 온 곳이 횡성이었고, 아이들이 오면 방을 내어주고 밥을 해주었으며 먹는 것이 부족한 공붓방 아이들을 위해 철 따라 수확한 먹거리도 보내주셨다고 했다.
 
긴 시간 동안 횡성땅과 그 부모님과의 인연이 이제 일단락 지어져 완성되는 순간인 것이다. 자연을 닮은 넉넉한 품으로 알뜰하게 사랑을 나누신 분들이다. 문상객끼리 나누는 이야기는 풍요로왔고, 횡성호수는 예상 밖의 큰 호수였다. 인근 지역 수십 개의 산자락이 발을 담근 횡성호수는 부드러운 둘레길을 만들어 구불구불 휘돌고, 물소리는 찰락찰락 길옆에 부서지는데, 나무표지판 외에는 별다른 인공 조형물도 없이,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만이 고즈넉하게 호수를 감싸고 우리를 이끌었다. 이따금 모퉁이를 돌아가는 곳에 귀여운 자작나무 인형을 만들어 놓은 것이 전부였다.
 

횡성호수길. 횡성호는 2000년 횡성댐이 완공되면서 만들어진 인공 호수다.

 
호수 위로 떨어지는 햇살에 윤슬은 반짝이고, 아스라한 물빛이 곳곳에서 다른 색깔로 우러났다. L의 친정어머니 박 여사는 어제 세상을 떠나 망자가 되었다. J선생은 자기가 좋아하는 벤치에 이르러 많은 생각과 느낌에 잠겨 앉아 있다가 하늘을 향해 소리를 쳤다. “엄마 고마웠어요. 좋은 곳으로 잘 가세요!” 인사를 나누고, 노래를 불렀다. 아주 좋은 목소리가 나무 사이로 퍼져나갔다. 환히 열린 하늘로 구름이 뽀얗게 떠 있었고, 바람도 호수의 물결도 우리 마음 안벽까지 와서 찰랑거렸다. 그리고 J선생은 최근에 일어났던 몸상태의 변화에 대해 감사하고, 나도 문상길에 이 호수를 만나고 사람을 만나는 이 시간의 인연에 감사했다.
 
장례식장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나는 작은 자작나무 군락지에 멈추었다. 쭈욱 뻗은 나무 줄기를 타고 잎사귀를 올려다보니, 무수한 나비떼가 나뭇가지에서 파르르 바람을 감고 저마다의 춤을 추고 있었다. 사랑은 연한 것, 연한 것이 아름답구나. 내 마음 안에도 저 나뭇잎처럼 연하고 예민하게, 내가 만난 사람들과 더불어 흔들리며 춤추는 잎사귀를 길러야지 다짐해 보았다. 입구에서 다시 횡성택시에 전화를 해서 택시를 불렀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울산에서 출발한 K가 먼저 와 있었다. 저녁 7시 반에야 도착할 줄 알았는데, 중간에 뜻밖의 요긴한 도움을 받아서 일찍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울산에서 출발한 시외버스가 안동터미널에서 쉬고 있을 때,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횡성을 가려면 여기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려 1시간을 앞당겨 장례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주가 된 L과 어머니를 애도하고, 선후배로 만나 친자매처럼 살아온 J 선생과 L의 오랜 인연에 대해서도 들을 수가 있었다.
 
망자의 후덕함만큼 산뜻하고 맑은 초여름 날씨도 고맙고 다정했다. 장례식에 모인 우리는 식탁에 올라온 횡성한우 국밥과 배추 넣어 지진 메밀전을 맛있게 먹었다. ‘어머니 참 잘 사셨어요. 말년에 아파서 고생하셨지만, 이제 아픔 없이 가벼이 좋은 데로 가소서’ 인사를 드렸다. 한 분 한분 어머니들이 가신다. 횡성 땅을 밟아보고, 좋은 어머니 한 분을 함께 보내드렸다. 앞으로 얼마 후에는 우리 차례도 오겠지.
 
언젠가 나는 양재동에서 바꿔타는 지하철 플랫폼 벽면에서 광고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사진 속의 장면은 이러했다. 동그란 버스정류장 팻말 옆에 누렁소 한 마리가 서 있고, 그 앞에 버스한 대가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누렁소 머리에 말풍선이 하나 떠 있는데, 그 안에는 이런 말로 누렁소가 길을 물었다.
“아저씨, 이 버스 횡성 가요?”
 
이제 나라면, 정류장에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저씨, 나 횡성 갔다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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