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이너의 패러다임을 바꿔보자

 
구글이 세상을 지배한다.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나보다 더 잘 안다. 언젠가 갖고 싶었던 나이키 덩크가 불현듯 광고로 나타나 어느 새 다시 마음을 흔든다. 휴가를 어디갈지 이리저리 살펴보고 나면 어느 새 크로아티아로 가는 비행기표가 배너에서 나를 따라다닌다. 
 
구글이 그들의 주장처럼 ‘인공지능 검색포털’ 같은가? 그것도 맞다. 하지만 결국 구글은 광고 플랫폼이다. ‘잘 파는’ 시스템을 만드는 회사다. 인공지능으로 소비자가 뭘 원하는지 가장 교묘하게 파고 들어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 구글의 최종 목표다.

간지로 우주를 뒤흔드는 전지현은 어떤가?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집에 살면서 가장 비싼 러닝개런티를 받는다. 잘 팔기 때문이다. 세상 우아할 것 같은 전지현이 카레 봉지를 들고 춤춘다. 등산복을 입고 깨방정도 떤다. 전지현처럼 무엇이든 쥐어주면 다 파는 사람은 업계 톱이 된다.
 
대통령도 엄밀히 말해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를 파는 영업사원이다. 기업이 혼자 팔려고 나서면 안팔리던 것이, 대통령이 나서서 팔아주면 팔린다.
 
정치판에서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캠페이너는 정책 담당자에 비해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다. 보통 정책, 정무가 있어야만 그것을 소스로 활용한 캠페인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캠페이너들은 안다. 누구보다도 정책과 정무를 잘 이해해야만 좋은 캠페인이 나온다. 잘 모르는 것을 남에게 가르칠 수 없듯, 잘 모르는 것을 쉬운 말로 풀어 고객에게 파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은 결국 ‘잘 파는 사람’이 이긴다. 정치판에서는 조금 이야기가 다른 경우가 많지만 포지셔닝을 달리하면 캠페이너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칼날을 쥐게 된다. 의원실에서, 캠프에서 가장 잘 파는 사람은 누구인가? 캠페이너다. 조금만 요령을 갖춘다면 가장 쉽게 돋보일 수 있다.
 


 
캠페이너의 현실적인 진급

그런데 왜 많은 캠페이너가 낮은 직급에 머물러 있을까?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원치 않는 ​포지션을 배정받았을 수도 있고, 진급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존버 중일 수도 있다.
 
감이 별로 좋지 않아 잘 못판다면 어쩔 수 없지만, 잘 파는데도 계속 낮은 직급이라면 프레임을 다시 짜야한다. 아마도 이 경우, 정말 치다꺼리를 하고 있을 수 있다. 주도권이 보통 정책 담당자에게 가 있기 때문일 때가 많다.
 
어떻게 주도권을 잡을까? 생각을 바꿔야 캠페이너가 정책 담당자에게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다. 정책도 결국은 팔려야 좋은 정책이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 크지 않은 영향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이슈에 대해 미치는 정책은 좋은 정책이 아니다. 왜? 안팔리니까. 애초에 떼어온 물건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아무리 잘 판들 속임수에 불과하다. 좋은 물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팔 가치가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도 결국은 판매의 최전선인 캠페이너가 결정할 수 있다.
 
정책담당자가 ‘서울 마포구 공덕동 코다리구이업소 연합회’의 편의를 위한 정책을 만들었다면 아무리 날고 기는 캠페이너가 와서 인공호흡을 해도 살려낼 수 없다. 왜? 애초에 산 적이 없는 정책이니까.
 


 
공손하게, 프로답게 거절하기
 

일러스트=토끼풀

 
처음엔 어렵겠지만, 우선 형편없는 정책을 홍보해달라는 요청이 왔을 때 합당한 이유를 들어 거절해야 한다. 쉬운 방법으로는 끝없는 질문이 있다. 캠페이너의 질문에 막힘 없는 대답이 나오면 그 나름대로 캠페인 할만하다 느낄 것이고, 계속 막혀서 답답한 이야기에서만 맴돈다면 법안 담당자도 민망해서 요청을 거둘 것이다. 스스로조차 확신이 없는 법안을 어떻게 캠페이너가 팔 수 있겠는가?
 
이런 소심한 ‘들이받기’조차 어려운 i들이라면 그냥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뭉개는 수밖에 없다.
 
의원실마다 위계의 정도는 다르니 각자의 문맥에 맞게 잘 거절해라. 거절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포지셔닝을 새로 해야한다면 유쾌하지 않은 일 정도는 참아야 한다. 캠페인을 몇 번 반려하고 나면 정책 디자인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캠페이너의 의견이 반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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