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길을 걷네. 9] 언뜻언뜻 야생, 고양이의 프로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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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종로구 북악산 밑에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우리 빌라 앞마당에서 한 마리의 고양이를 보았다. 고양이는 이마 위의 귀 주변과 꼬리만 검은색이고 몸이 하얀색이었는데 눈빛이 강렬했다. 나를 쓰윽 훑어봤다. ‘흠, 새로 이사왔군. 너도 이 동네 지킴이인 나의 관리대상이야. 등록해 둘게.’ 하는 듯 천천히 나를 스쳐지나갔다. 네 개의 건물이 있는 산중턱의 빌라 동네를 마치 파수꾼처럼, 주인처럼 지키고 있었다. 집 옆에는 오래 자란 소나무들이 있고, 산으로 이어지는 비탈진 경사면에 사람들이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기르고 있었다.
 
도심 속의 숲길에 이사온 것을 알고 지인이 우리집에 들러서 앞뒤 베란다를 내다보고 있을 때, 소나무 아래로 동네지킴이 그 고양이가 긴 막대기를 물고 나왔다. 엇 막대기를 물고 나왔나? 그런데 좀 구부정한 모양이네 하다가, 뒷방 창가로 따라가 자세히 보니 고양이가 물고 나온 것이 막대기가 아니라 뱀인 것을 알게 되었다. 우와, 이럴 수가! 1미터 남짓한 노르스름한 뱀은 이미 의욕을 잃고 고양이에게 물린 채 운반되고 있는 긴 물체에 불과했다. 내가 그렇게도 무서워하고 징그러워 하는 뱀, 밥 먹을 때 비늘무늬 그릇만 봐도 밥을 잘 못먹는 내가 우리 집 창가에서 무력하게 고양이에게 잡혀가는 뱀을 보게 되다니….. 생명 활동의 생생한 현장, 먹이사슬의 냉정함과 경이로움을 목격하고 나니, 며칠 동안 아니 지금까지 그 강렬한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고양이는 쥐를 잡아야 할 것이며, 쥐 이외에도 자기의 먹이를 찾아내고, 사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게 길들여져, 실내에서 생활하며 주인이 주는 생선과 음식을 먹는 집고양이와 강아지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야생고양이와 집고양이 사이에서 나에게도 한가지 강렬한 추억이 있었다. 2017년 건강을 지키고 채소만이라도 자급생활을 시작해 보려고 어른이 된 후로는 처음으로 서울을 벗어나 북한산 서쪽 고양시의 농가주택에서 살 때였다. 때는 더위가 가시고 가을에 접어들 무렵. 고양이가 내 방에 들어와서 점거농성을 하면서 프로포즈를 해 온 일, 그 쫄깃한 추억을 여기서 풀겠다.

언제나 그렇듯, 이사를 마치자 며칠 후에 고양이 소리를 들었고 마당가를 지나다니는 고양이와 마주쳤다. 고양이는 처음 온 사람을 한참 동안 쳐다보는 습관이 있다. 가까이 살게 된 이사람은 어떻게 생겼는지 선을 볼 뿐만 아니라, 어떤 기질을 가진 사람인지, 나에게 잘 대해 줄 것인지 아닌지 쓱 파악해 보았다. 냐옹 니야옹 소리를 내면서 농가주택 마당을 살금살금 맴돌면서 나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했다. … ‘너, 나를 기억해. 내가 여기 먼저 와 살았어. 나에게 잘해 줄 거야 아니야?’ 하고 말하는 듯이 신호를 보내며 맴돌다 간다. 나는 말했다. ‘안녕? 고양이야 반가워! 이 울타리에서 잘 살아보자. 하지만 너를 내 방에 들이고 길러줄 수는 없단다. 먹을 것을 주는 것도 꾸준히 할 자신은 없고,….’ 하면서 거리를 두었다.
 
뜨거운 여름이 물러나고 가을비가 바람에 실려 외딴 농가주택을 쓰다듬듯이 휩쓸듯이 내렸다. 밤에는 현관문이자 부엌문을 안쪽에서 닫아걸어야 했는데 나는 터무니없이 낙천적이었고 다른 생각에 골몰해서 문고리를 채우는 것을 잊고 잠이 들었다. 더위는 걷히고, 머리맡에 떨어지는 정다운 빗소리를 들으니, 잠이 들면 낭만적인 꿈을 꿀 것만 같았다. 밤새 내리던 비는 그치고 아침이 더 상쾌했다. 그런데 침실에서 작은방을 건너 부엌으로 나와보니 현관문 겸 부엌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게 아닌가! 응? 내가 문단속을 제대로 안했더니 바람이 문을 마음껏 열어버렸나 보네, 하면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런데 북어대가리 두어 개가 부스러기와 함께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봉투도 약간 찢어져 있었다. 아차, 고양이가 북어 냄새를 맡고 다녀갔구나 문을 꼭 걸어 잠가야겠네 다짐을 했다.
 
그리고는 출근을 했다가 저녁에 돌아와 보니, 무언가 집안의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지난밤, 비바람에 열린 문으로 고양이가 들어왔던 것은 확실한 일인데, 어쩌면 그 고양이가 아직도 방안에서 나가지 않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니, 바로 그 순간 그것이 사실일 거라고 직감했다. 부엌에도 중간 방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침실에 들어와 보니, 아뿔싸 고양이가 내 침대 위에 똥과 오줌을 누어서 자기 영역 표시를 해 둔 것이 아닌가! 야, 이거야말로 영토침범에 준하는 당당하고 뻔뻔스러운 도발이 아닌가 싶어서 나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너를 집안에 들이고 싶지 않단 말야. 평소처럼 오며가며 만나고 너의 방식으로 살아. 쥐도 잡고 마실도 다니면서. 왜 꼭 내 방에 들어와서 살려고 해?” 나는 마구 따졌다. 한참 만에 침대 밑에 쌓아둔 방석들 사이에서 고양이를 발견했다. 아주 숨도 안쉬고, 야옹 소리도 없이 그것은 조용히 이 점거사태를 유지, 관망하고 있었다. 내가 자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 어느 수준에서 자기의 진입을 허용할 것인지, 아니면 아주 과격하게 나올 것인지 계산하면서 나의 눈치를 살피고, 나의 숨소리와 말소리 발소리까지 포집하고 있었다. 침대 아래에서 문갑 아래로 더 물러나 있는 고양이를 나는 단호하게 내쫓기로 마음을 굳혔다.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와서 이리저리 휘두르며 말했다. “야, 밖으로 나가 줘! 정말 이럴 수가 있는 거야? 이불 위에 똥오줌을 싸놓다니 이건 너무 파렴치한 행동이잖아?” 주인 아주머니가 와서 함께 고양이를 내쫓으려 해봤지만 순순하게 물러나 밖으로 나갈 생각은 애초에 없는 듯, 더 외진 구석자리로 높은 곳으로 고양이는 긴 막대기를 잘도 피했다.
 

일러스트=토끼풀

 
친구들한테 전화를 걸었다. 마침 고양이를 좋아하는 P교수는 “아이고 잘 됐네. 같이 살아야겠네요 하하” 하면서 고양이 편을 들었다. 또 다른 친구는 “잘 달래서 내보내라. 고양이와 억지로 동거를 할 수는 없다”고 내 사정을 이해했다. 친구한테 들은 해법은 먹이로 유인해 내는 것이었다. 가까운 동물병원에 가서 고양이 모래를 사고, 좋아하는 사료를 사다가 문 앞으로 유인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이미 어두워진 집 밖으로 동물병원을 찾아갔다. 고양이 모래를 사고, 마트에 가서 좋아하는 육포종류의 사료를 사 왔다. 또 아무 데나 오줌과 똥을 누면 곤란하니까 출입문 옆 빈 상자에 모래를 깔고, 그 옆에 육포를 조금 놓아두었다.
 
퇴근 후 쉬지도 못하고 지친 몸으로 고양이와 대치하면서 내쫓으려고 했으나 고양이는 지치지도 않고, 나만 지치고 보니 어이없어 슬프고 약간 무섭기도 했다. 다행히 침대시트까지는 오줌이 스며들지 않았지만, 고양이 똥과 오줌냄새는 오래간다고 했다. 아직은 좀더 했던 이불을 버리기로 결정을 하고 나니 분한 마음과 내쫓고 싶은 마음이 더했다. 이쁘니까 같이 살아달라고 사정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침대까지 올라가 똥오줌으로 자기 영역표시를 해 두다니, 고양이의 공격적인 도발이 괘씸해서 참기가 힘들었다.
 
그런데도 밤은 깊어갔다. 내일 출근을 위해 잠을 자야하는데, 설마 잠자는 동안 또 내 침대에 올라오거나 나를 공격하지는 않겠지? 하면서 나는 잠을 자기로 했다. 그날 밤, 나와 고양이는 서로의 숨소리까지 느끼는 대치상황에서 두 번째 밤을 보냈다. 나는 고양이의 숨소리를 못들었지만 고양이가 거기 있다는 기운은 확실하게 느꼈다. ‘나 좀 길러줘. 난 안나가고 싶어!’ 하고 말하는 듯했다. 고양이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내 숨소리와 나의 혼잣말까지 들었을 것이다. ‘나는 너를 길러줄 수 없어! 너는 다시 나가야 해.’ 침대 위의 나와 침대 아래 고양이. 침대를 사이에 둔 동방이몽. 적과의 동침 같은 숨막히는 심리전이었다.
 긴장 속에서도 깜빡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잠에서 깼다. 문 앞에 놔 둔 모래상자와 육포를 살펴보았다. 육포를 조금 먹은 것 같았지만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침대 밑으로 막대기를 넣어서 흔들어보니 후다닥 고양이가 부엌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싱크대 옆 식탁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문제는 고양이의 태도였다. 벌써 이틀밤을 내 집안에서 지내고 나서도 도도하게 허리를 쫙 곧추세우고 눈빛을 쏘아보내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정말 나갈 생각이 없는 걸! 너 정말 나를 키워주지 않을 거야?” 고양이의 여유로운 자세와 강렬하고 또렷한 눈빛은 나를 압도했다. 나는 곧 출근을 해야하는데 저 아이를 어쩐담? 인력을 증강하지 않고 나혼자 고양이를 내모는 것은 승산이 없겠다고 판단을 했다. 그래서 나는 집 열쇠를 맡기면서 주인 아주머니와 이웃집 아저씨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고양이 퇴출 작전을 부탁드리고 출근을 했다. 사실상 나는 혼자서 백기를 들은 것이다. 이대로 혼자서는 고양이를 내쫓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고양이 내쫓기에 대한 이상한 죄책감과 무력감이 밀려와 이중 삼중으로 마음이 힘들어졌다.
 
주인 아주머니와 이웃집 아저씨의 활약으로 결국 고양이는 밖으로 내몰았다고 점심시간에 연락이 왔다. 2박3일간 고양이의 점령으로부터 드디어 내 방을 탈환해낸 것이었다. 그날 집에 돌아가 고양이 모래와 육포를 장독대 옆에 내놓으며 생각했다. 들고양이와 나의 거리는 이렇게 가깝고 그렇게 뒤섞일 뻔했었구나. 지금 생각해도 그 2박3일은 심장이 쫄깃거리고 수많은 생각과 느낌이 오가는 긴장과 설레임의 소용돌이였다.
 
도대체 내가 얼마나 허술하고 말랑말랑해 보이면 고양이가 내 집을 점유하고 담판을 요구했단 말인가? 어찌 감히 고양이가 예순에 가까운 여자 사람에게 방안까지 침투해서 2박3일을 맞장뜰 수가 있는 것인가 말이다. 한 허술한 인간과 도발적인 고양이와의 대치는 나에게 많은 것을 반성하고 점검하게 했는데, 나의 인간적인 크기는 딱 그만큼, 무서워하면서 적극적으로 물리치거나 건드리지 못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나는 절대로 동물 애호가는 될 수 없었다.
 
초겨울 추위가 닥칠 무렵 나는 다시 대문 앞에서 그 고양이를 마주쳤다. 내 방안에서 나랑 대치하던 그 고양이였다. 나는 다시 만난 반가움과 놀라움으로 그 고양이를 한참 쳐다보았다. 그런데 고양이는 몹시 자존심이 상하는지 나를 흘깃 보더니 곧바로 본체만체하면서 제 갈 길을 가는 것이었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는지 고양이의 뒷모습이 약간은 쓸쓸해 보였다.
 
숲 가까이 오니, 문만 열면 야생이다! 작은 몸체로 긴 뱀을 물고 유유히 숲으로 가는 고양이를 보고, 몇 년 전 내 방에 들어와 2박3일 버티던 고양이가 생각났다. 인간들과 잘 안 되는 삶, 고양이와 텄어야 했나? 아니, 그건 아니고! 우리동네 지킴이 검은꼬리 고양이에게 그에 걸맞는 존중의 예를 갖추어야겠다. 고양님도 나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자구요. 당신은 야생에서, 나는 사람의 동네에서. 두 곳을 지켜주는 것은 진정 고양이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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