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만 틀리지 않았다.
동네 이름에 ‘힙’이나 ‘~길’과 같은 용어를 붙이는 것이 유행인가보다. 힙지로, 용리단길, 연트럴파크 등 그곳의 원래 지명보다 더 느낌 있는 작명이다. 그곳에 가면 유행의 선도주자까진 아녀도 뭔가 트렌디한 인물이 된 것만 같다. 옛 정취와 새로운 문화의 믹스 앤 매치야말로 포스트 모던을 설명하는 한 줄이 아닌가 한다.
한옥 마을이나 궁궐은 우리의 전통 문화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이나 젊은 친구들이 한복을 화사하게 차려 입고서 자신의 SNS에 올릴 사진을 찍고, 유명한 거리엔 메뉴만으로 세계 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각국의 음식 맛을 볼 수 있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기와 지붕을 올리고 천정에 서까래가 달린 전통 가옥으로 꾸며져 있지만 웨이팅을 할 땐 식당 입구에 설치된 전자기기에 내 연락처를 입력해 순서가 다가오면 알림을 보내주니 하염없이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1975년에 태어나 1994년에 대학생이 된 내 또래들을 당시 X세대(신세대)라 불렀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과정을 몸소 겪었고, 삐삐라 칭하던 무선호출기가 자그마한 도구 하나로 일상의 일들 대부분을 처리 가능한 스마트폰이 되기까지의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불과 몇 십 년 만에 이루어진 변화라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이어 2002년 한국 월드컵 개최가 확정되고 가슴이 웅장해져 한 목소리로 길거리 응원을 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거 같지 않은데 지금은 세계 어딜 가도 K-culture를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다.
고루한 사람들이나 먹는 거라 여기던 메뉴가 먹방 영상과 함께 ‘힙’한 존재가 되었다. 소위 MZ세대라 일컬어지는 젊은이들이 그런 음식을 진심으로 ‘맛있다’ 느끼고 있는지 궁금해 한 번쯤 묻고 싶어진다. 물론 맛의 영역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 불호가 나뉘는데다, 맛있다는 감각은 비단 혀로 느끼는 맛과 향 때문만은 아니기야 하지만, 곧 쉰을 앞둔 나로선, 과연 어떤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걸까? 하는 마음에 흐뭇하면서도 종종 혼란에 빠진다.
와인을 좋아해 가끔 혼술을 하는 날이 있는데, 외부 와인 반입이 가능한 식당은 그런 이유로 내게 참 은혜로운 곳이다. 게다가 콜키지 비용까지 무료라면 즉시 아지트로 자리잡는다. 을지로 어느 거리에 바로 그런 식당이 있다. 그 가게의 메인 메뉴는 무려 ‘순대’로, 나무로 만들어진 찜기에 소담하게 담긴 몇 종류의 순대와 수육에, 뚝배기에 담긴 순댓국이 함께 나오는 그 집의 순대정식은 나의 최애(最愛) 메뉴다.
의기소침과 우울이 세트로 공격해 오는 날 따서 마시려 사무실 서랍 속에 숨겨둔 와인을 꺼냈다면 기필코 오늘 그 곳으로 가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어느 늦가을 오후 허기를 달래려 식당을 찾다 무작정 들어간 그 집이 즐겨 찾는 혼술 식당이 될 줄이야! 독특한 자개 장식의 벽 하며 순대를 담은 멋스러운 용기와 콜키지 프리라는 글귀가 별 생각 없이 나간 소개팅 자리에서 이상형의 남자를 만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어째서 을지로를 ‘힙지로’라 부르는지 담박에 이해가 되었다.
그날도 영업직의 숙명인 ‘거절’을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아 너덜너덜한 기분으로 5시도 안 된 시각에 와인과 가방을 챙겨 무작정 그곳으로 달려갔다. 언제나처럼 순대정식을 주문한 후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와인을 오픈 해 글라스에 콸콸 따랐다. 한 잔을 쭉 비우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제서야 내 좌우 테이블에 앉은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내 왼쪽 좌석엔 호리호리한 몸에 백발의 한 어르신이 순댓국에 소주를 (무려!) 맥주 글라스에 가득 따라 마시고 있었다. 원단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체크무늬의 중절모 하며 차림새가 말쑥한 분이었는데, 어쩌다 눈이 마주쳐 인사도 나누게 되었다. 듣자 하니 미국에 이민 간 지 40년쯤 되었다고.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고국 방문이 요원하다 몇 년 만에 귀국을 했더니 한국 친구들이 자기에게 비싼 양주나 와인을 대접하려 한다면서, 환대의 의미임은 알지만 미국에서도 그런 건 얼마든지 접할 수 있으니 한국에선 순댓국이나 소주 같은 게 드시고 싶었단다.
한편 내 오른 쪽 테이블엔 만화를 찢고 튀어나온 듯 어여쁜 젊은 여성 둘이 순대 정식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 둘은 동성 커플인 듯 했다. 스트레이트 롱 헤어에 큐트한 원피스 차림의 그녀는 순댓국이 난생 처음인지 살짝 당황한 표정이었고, 숏 커트에 스모키 메이크업을 한 가죽 점퍼 차림의 맞은편 친구는 그런 그녀를 장난끼 서린, 그러나 자못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자리한 나는 순대를 우물거리며 호주 산 레드 와인을 마시는 정장 원피스와 8센티 하이힐 차림의 중년 혼술러. 순간 이 광경이 좀 멋지다고 느껴졌다. 가능하다면 양 쪽 테이블에 들고 간 와인을 한 잔씩 따라주고 싶을 만큼이나.
이제는 더 이상 여성과 남성, 어른과 아이, 나아가 피부색만으로는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를 명료하게 구획 짓기란 어려운 일이 되었다. 의미와 경계가 모호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섬세해졌고, 비로소 ‘다름’과 ‘틀림’이 다르다는 걸 이해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그런 단순한 구분이 폭력적이라는 걸 말이다. 100명의 인간에게는 100개의 인격과 개성이 존재함을 받아들이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서울의 순댓국을 파는 식당에 와인을 들고가 마신다거나, 동성의 연인이 자연스럽게 다정한 시간을 나누고, 독특한 분위기의 노년의 남성이 맥주 글라스에 따른 소주를 마시는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을 거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 시간만큼은 우리도 힙지로에 걸 맞는 힙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것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인류의 사랑에 국적과 성별을 따지지 않는 것, 모두가 9 to 6의 근무시간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런 변화들은 분명 세상이 조금씩 나아져가는 중이라 믿게 한다. 오늘도 나는 더 나은 세상을 증명하는 일에 기꺼이 동참하기 위해 걷고 또 걷는다. 스마트폰의 운동 어플에 찍힌 걸음의 숫자가 어쩐지 긍정적인 변화의 속도 같아서 한동안 흐뭇하게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