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과실(過失) – 문화 상대주의 비판

일러스트=바로크

 
다른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개고기’를 비난하는 프랑스의 유명한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를 보면서, 다른 문화권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체 무작정 비난을 쏟아내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키웠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 상대주의’도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도덕 철학의 기초>1)중 ‘문화 상대주의의 도전’을 읽으면서 문화 상대주의의 문제점을 살펴볼 수 있었다. 얕은 지식으로 알고 있던 문화 상대주의는, 그저 열린 마음으로 타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타문화의 이해와 수용의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서의 내용에 따르면, 문화 상대주의는 “다른 사회의 규칙을 비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규칙을 비판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p.68) 이번 글에서는 해당 도서의 66쪽부터 69쪽까지의 내용, ‘문화 상대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의 결과’를 ‘인간의 기본욕구’와 일부 연관 지어 문화 상대주의 이론의 문제점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노예제도의 예시

“우리는 사회가 단지 우리와 ‘다르다’는 것 때문에 그 사회를 비난하는 것을 멈춰야만 할 것이다. (중략) 이러한 태도는 세련되고 계몽된 태도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는 보다 열등한 다른 종류의 관습을 비난하는 것도 중지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다.”(p.67)

본 도서에는 ‘노예제도’에 대한 짤막한 예시가 나온다. 노예제도는 왜 문제가 되는가? “노예는 인격이 부인되고 타인에게 소유되어, 권리와 자유의 태반 또는 전부가 박탈된 자이다. 법적으로는 개인재산을 뜻하며 양도 ·매매가 가능한 물건으로 생각되었다.”2) 즉, ‘인격체’가 아닌 하나의 ‘물건’으로 대하는 태도 등으로 문제가 된다. 실제로 북한, 에리트레아, 부룬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 많은 나라에 노예제도가 존재한다. 우리는 노예제도가 왜 문제인지 알고 있다. 그러므로 북한이나 에리트레아 같은 나라의 노예제도를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 상대주의 이론에서 우리는 노예제도를 가진 나라를, 그리고 하나의 관습으로 굳어진 노예제도를 감히 비난할 수 없다. “서로 다른 문화에는 서로 다른 도덕률이 존재”(p.60)하고, “우리의 윤리적 관념이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우리가 단지 지나치게 순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p.61)

우리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문제가 되고, 다른 나라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는 문제로 여겨질 수 있다. 문화 상대주의는 기본적으로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어떤 문화요인도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다고 본다. 노예제도의 예시로 든 나라들은 대부분 노동력 부족을 충당하기 위한 수단으로 노예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그에 따른 비난 역시 존재하지만, ‘노동력 충당’이라는 나름의 이유가 있으므로 우리는 노예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에 대해, 그리고 노예제도 자체에 대해 비난을 할 수가 없다.
 


 

여성 인권 운동가 헨리에타 에드워즈의 동상

 
2. 여성 인권의 예시

그래험 숨너는 “옳고 그름의 척도란 없으며 한 사회의 기준만 있다”(p.66)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규칙이 완벽하기는커녕 개선의 여지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p.68)지만, 문화 상대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회의 규칙을 비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규칙을 비판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p.68)

“진보란 어떤 일을 하는 방식이 좀 더 나은 방식으로 바뀐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떤 기준에 의해서 새로운 방식이 더 나은 방식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가? 만약 이전의 방식이 그 당시의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문화 상대주의는 다른 시대의 기준으로 그 방식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p.68)

관습과 규범의 변화, 새로운 기술의 발명, 환경적 변화, 권력의 재분배 등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사회는 변화할 수밖에 없다.3) 따라서 사회적 기준도 변화할 수밖에 없는데, 문화 상대주의는 사회의 규칙을 비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비판은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한다는 뜻이다.4) 사회변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당장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인데, 애초에 문화 상대주의는 이러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으니 사회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의 변화도 일어날 수 없다. 하지만 문화 상대주의에서 용납되지 않는 ‘비판’은 현실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본 도서에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관한 예가 나온다. “여성은 재산을 소유할 수도 없었으며 (중략) 일반적으로 남편의 절대적인 통제를 받고 있었다.”(p.68) 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언제나 아래에서 머무르지는 않았다. “세계 1차대전 때 남성들이 전장에 나가 있는 동안 여성들은 그 빈자리를 채워 일했고, 남성들이 가정으로 복귀한 뒤에도 여성들은 다시 가정주부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았다.”5)

세계 1차 대전으로 인해 여성들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환경적 변화’를 겪었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처우를 되돌아보고 부당한 사회에 불만을 표출한다. 문화 상대주의에 따르면 이는 허용되지 않는다. 세계 1차 대전을 직면하기 전 사회는 남성들이 모든 권력을 쥐고 여성들을 아래에 두는 게 ‘올바른 것’이었고, 응당 그래야 할 ‘사회의 규칙’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여성들은 참정권을 얻게 되었으며, 여성들뿐만 아니라 여러 차별을 겪어왔던 소수 집단도 제 뜻을 펼치기 위해 기존 사회의 규칙에 도전하게 된다.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안주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관계지어 평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경향이기에, 끊임없이 남들만큼 혹은 남들 이상의 자유와 권리를 얻고 싶어 한다. 여성들은 모든 것을 가지고 누리는 남성들을 바라보며 자신들또한 그러한 권리를 갖고 싶어했고, 결과적으로 그러한 권리를 얻기 위해 투쟁한 결과 남성과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 안에 내재되어있는 문제를 비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문화 상대주의는 사회의 변화를 불응하고, 나아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무시할 수도 있다.
 


 
3. ‘이해의 과실’

 
마주한 사회에서의 불만과 비판이 끝없는 만큼, 사회도 끊임없이 변화하며 변화해야만 한다. 하지만 문화 상대주의는 사회 규칙이나 관습에 대한 비판을 일절 허용하지 않음으로, 사회에 내재되어있는 불만이나 비판을 행할 수 없게 된다. 사회의 변화는 직면한 사회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으로 시작되므로, 이 인식 자체를 막아서는 문화 상대주의는 사회의 변화를 불응하고, 나아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무시할 수도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화 상대주의의 문제점을 살펴보면서, 그저 타문화를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고 수용하는 것만으로는 문화 상대주의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다만 이 이론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나서도, 열린 마음을 갖고 타문화를 바라보는 태도는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도덕 철학의 기초> 중, ‘문화 상대주의의 도전’ 끝에서도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관습과 태도가 실제로는 단지 문화적 산물이라는 참된 식견에 기초 하고 있기 때문에 (중략) 문화 상대주의 이론을 전체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면서 이러한 기본 사상만을 수용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p.82)하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제임스 레이첼즈 (2006). <도덕 철학의 기초>

 


 
<자료출처>
1)제임스 레이첼즈 (2006). <도덕 철학의 기초>(노혜련, 김기덕 역). 나눔의 집.
(원본출판 2006년). 해당 도서를 인용할 때는 페이지 수만 표기함.
2)노예제. (n.d.). 네이버 지식백과.
3)William Form, Nico Wilterdink. social change. (n.d.). Britannica.
4)비판. (n.d.). 네이버 국어사전
5)How World War 1 Changed Society Essay. (n.d.). I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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