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과의 전쟁? 진짜 전쟁터는 대학 서열화다
윤석열 정부가 전쟁을 선포했다. 사교육과의 전쟁이다. 2022년 초중고생 사교육비 추산이 무려 26조 원,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1만 원, 이조차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교육부는 무려 9년 만에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했다. 그럼 9년 동안은 뭘 했을까?
약 20년 동안 사교육비 경감 대책은 큰 틀에서 공교육 정상화, EBS 비중 확대, 수능 난이도 조절을 벗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별다른 추가적인 대책을 내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름도 무서운 킬러문항을 없애고, 사교육 카르텔을 때려잡겠다고 한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킬러문항 방지법을 발의할 땐 반대하더니, 왜 이제 서야 뒷북이냐는 반응이다. 서로 남 탓도 잘하고, 학생과 학부모만 앞세우며 날을 세웠다.
문제는 늘 그렇듯 가장 중요한 게 빠졌다는 것이다. 바로 비전이다. 어디에서도 우리 교육이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비전을 들을 수가 없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심각했던 사교육과 대입 문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 모두 다 아는 문제다.
뿌리 깊이 고착된 대학 서열화가 그 근원이다. 이 문제가 소위 사교육 카르텔 척결만으로 해결될 문제일까? 유명 사교육 업체와 강사 몇몇 세무조사 하는 데서 오는 대중의 카타르시스 충족이 대수인가? 2023년 대한민국 예산 약 639조 원. 그중 대학 역량 강화 예산은 약 3.7조 원. 0.57%. 대학 서열화를 방관하는 건 오히려 역대 정부다. 이는 지금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은 많은 문제가 있겠지만,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창의적 융합역량을 갖춘 인재를 기르겠다면서, 정작 1분 30초 안에 실수하지 않고 답을 찾는 기계를 선발한다. 킬러문항에 1킬이라도 당하는 날엔, 재수학원을 알아봐야 한다.
그런데, 정작 대학이나 사회에 가면 실수 또는 더 치명적인 실패로부터 배우라고 한다. 알잘딱깔센하게 지식과 정보를 찾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갑자기? 대학수학능력시험, 즉 수능은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역량을 평가하는 것이다. 정작 평가의 목적과 방법이 따로 놀고 있다. 대학생들이 더 성장하고 교육 경험을 회상할 때, 좋은 기억이 있을 수가 없는 이유다.
둘째, 좋은 대학이 많이 없다. 대학 간 격차도 너무 크다. 좋은 대학은 적고, 학령인구가 줄어도 입구는 여전히 좁다. 설상가상 정부는 쉬운 수능을 지향한다. 박근혜 정부 이후 변별력이란 미명으로 킬러문항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상황이 이러니, 대학은 어떻게든 더 좋아 보이는 기계를 선별해야 한다. 좋은 대학 병목현상을 안 고치면 사교육과 대입 잔혹사는 계속된다.
이왕이면 소위 좋은 명문 대학, 좋은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이 큰 학과에 가기 위한 학생과 학부모의 욕망을 인정해야 한다. 이 욕망을 해소할 수 있도록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를 확충해야 한다. 정부와 대학만 양보해서는 안 된다. 학생과 학부모도 거래에 응해야 한다. 좋은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교육개혁은 핀셋 정책으로는 실패한다. 반드시 전체적으로 상향평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일 좀 하자. 제대로 하자. 희생양 한둘 만들어낼 생각하지 말고,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자. 대학 간 격차를 줄이고, 역량과 의지가 있는 대학을 육성하자.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좋은 대학이 많아져야, 사교육과 킬러문항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평가하지 못하는 대학입시도 개혁할 수 있다.
정부는 또 공교육 탓을 한다. 학생과 학부모가 사교육에 고통받는 주된 이유는 공교육 부실이 아니다. 교육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욕망이 기저에 있기 때문이다. 이 욕망을 무조건 억제하려 하고, 인간의 불안 심리를 제거하지 못하는 정책은 무조건 실패한다.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인 타산지석이다. 정부부터 실패로부터 배워야 한다. 진짜 전쟁터는 대학 서열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