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믿음 – 절대적인 존재 ‘신’은 있는가

일러스트=바로크

 
내 나이가 스물한 살을 넘어가고 있는 지금까지, 종교에 대해서는 별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가끔 절에 다니시는 할머니를 제외하고, 우리 집은 종교와 큰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종교를 처음 접하게 된 건, 어릴 적 부처님오신날에 할머니와 함께 절밥을 먹을 때였다. 절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할머니의 한 마디가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절을 내려와서 할머니가 사주신 소시지 하나를 먹으며 어린 마음에 물었던 말이 있다. “절에서는 왜 고기를 안 먹어요?”. 할머니는 웃으시며 절에서는 ‘원래’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대답해 주셨다.

이후에는 절밥을 먹은 적이 없다. 시간은 흘러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쯤,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한 아주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그 아주머니는 한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주며 근처 교회에서 여러 활동을 하니 나중에 부모님을 통해 연락을 달라는 말만 남기고 가버렸었다.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부모님께 보여드리니, 어머니께서 그 아주머니가 ‘사이비’라는 말을 하셨었다. 그때 ‘사이비’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사이비’. 사전상의 정확한 의미를 제외하고 내가 알고 있는 그들은 ‘괜한 사람을 붙들고 친절한 말로 시간을 버리게 하며, 순수한 믿음을 배반하는 사람들‘이다. 뉴스나 다른 매체를 통해 접한 사이비는 정상이 아니다. 대개 ’돈’을 목적으로 간절한 사람들을 악착같이 이용하는 그들은 하나같이 추악한 모습을 지녔다. 그런 사이비들만 잔뜩 접하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종교‘에 대한 시각도 삐뚤어졌다.

처음은 ’신‘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했었다. 정말 전지전능하며 완벽한 존재가 있을까? 이 의문에 여태껏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그 존재가 없다고 치부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 단순한 이유는 파훼하기 쉽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가?” 라는 물음은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듣게 되었다.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의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신‘의 존재 여부를 가릴 수 없게 되었을 때, 다음으로 나온 의문은 ’믿음‘에 관한 것이었다. 사람 중 일부는 신의 존재를 믿으며, 일부는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믿음‘은 어디서 나올까? 이는 과거의 자취를 통해 그 답을 구하고자 했다. 과거엔 샤머니즘이나 토테미즘, 애니미즘 같은 토속 신앙이 존재했다. 아직 모자란 지식으로 생각하기에, 과거부터 이어져 온 자취는 끊이지 않았다. 다만 과거와 다르게 믿음과 신앙의 ’대상‘만이 바뀌었을 뿐이다.

앞서 언급한 토속 신앙은 무언가를 ’숭배‘한다.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이 자연물을 숭배하는 사상이라면, 애니미즘은 정령 숭배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1) 이러한 토속 신앙이 무언가를 ’숭배‘하는 이유는 ’불안함‘과 ’간절함‘ 때문이다. 현대는 과학의 발전으로 자연현상을 연구하고 그 원리와 이유를 밝힐 수 있게 되었지만, 먼 과거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서운 자연현상에 맞서 불안함을 떨치기 위해, 혹은 가뭄을 이겨낼 비를 내리게 하려고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단군신화’를 예로 들어볼 수 있다. 환웅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웅녀와 함께해 단군을 낳았다는 옛이야기는 하나의 신화로, 토테미즘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현대에는 황당한 신화로 치부되어 ’단군신화‘의 의미가 많이 지워졌지만, ”근대계몽기에 제국주의 열강의 침입으로 민족의 존립이 위기에 놓이게 되자 단군은 종교적 숭배의 대상으로 승격되기도“ 했었다. 이렇게 민족적인 단합과 간절함이 필요한 순간에 신화의 인물이 ’믿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한 현대에도 여전히 불안감과 간절함을 종교에 기대고 있다. 자식의 앞날을 기도하는 부모의 마음이 있고, 손녀를 위해 절에서 부적을 받아오는 우리 할머니의 마음도 그러하고, 무언가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때는 ’높으신 분‘에게 그 뜻을 전하기도 한다. 다만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늘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나 믿음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과거의 저편에서 종교와 믿음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여전히 ’신‘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의 유무는 확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각주
(1) 토속신앙 –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 (n.d.).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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