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을 벗고 세상을 입다] 계획대로 될 거라는 착각
“호텔에서 9시쯤 나서서, A라인 타고 00역 앞으로 이동한 다음 이 지점에서 셔틀버스를 타면 돼. 셔틀은 15분에 한 대 오는데, 시간표도 PPT에 같이 첨부해 뒀어. 우리는 이 차를 탈 예정이고, 혹시 놓치면 이 차 탈 수 있을 거야.”
내 말을 들은 친구가 대충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는 함께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친구와 나의 계획 성향이 정반대였다는 점이다. 나는 모든 것을 사전에 찾아보고, 혹시나 문제가 생길 때를 대비해서 B안까지 마련해 놓는 일명 ‘대문자 J형(MBTI 검사 결과 계획형 비율이 매우 높다는 뜻)’이었고, 친구는 항공권과 숙소만 정하면 다 알아서 해결될 거라는 극한의 P형이었다.
이런 나의 성향을 알게 된 한 친구가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계획 세우는 게 재밌어? 나는 너무 힘들던데.” 나는 계획 세우는 과정을 즐기는가? 물론 어느 정도는 그렇다. 특히 여행을 떠나기 전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근본적으로 정보를 찾고 이를 계획적으로 정리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런 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게 계획이란 즐거운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외출을 하고 오면 손을 씻는 것처럼, 밥을 먹을 때 손 대신 숟가락을 쓰는 것처럼. 손을 씻고 숟가락을 드는 건 나에게 쾌적함을 준다. 갑자기 손을 못 씻게 된다거나, 숟가락 없이 밥을 먹어야 한다면 마음이 불편한 것은 물론 실제로 일상에 지장을 줄 것이다. 계획이란 게 나에겐 꼭 그런 존재였다.
계획형과 즉흥형의 여행
다시 친구와의 여행을 계획하던 시점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서로 간의 평화를 위해 타협점을 찾기로 했다. 몇 가지 꼭 정해야 하는 부분은 내가 계획을 세워 공유하고, 그 외에는 유동적으로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기차표는 모두 한국에서 예약해 두되, 도시 내에서의 일정에는 약간의 여유를 두는 식이었다.
물론 나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불안했다. 하지만 이런 나 못지않게, 친구 역시 15분 단위로 짜여있는 내 계획표를 보고 숨이 막혔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멀리까지 온 김에 많은 것을 둘러보자’라는 공통의 목적과 서로의 컨디션을 배려하자는 원칙이 있어 여행 중 크게 싸울 일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구 반대편의 여정에서는 언제나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는 법이다. ‘그날’의 문제는 매우 이른 시간이 다가왔다.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려던 날이었다. 무려 6시 30분 기차를 타는 일정이었다. 친구와 나는 모두 야행성이라, 6시 30분 기차를 예매한다는 건 우리에게 아주 큰 도전이었다. 다만 스위스는 숙박비가 무서우리만치 비쌌기 때문에, 이른 아침 이동해서 하루를 벌어보자는 계획이었다.
우리는 열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5시에 눈을 뜨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기적이어서, 여유 있게 일어나 짐을 싸는 건 사치였다. 게다가 파리의 마지막 밤이라며 전날 와인을 마셔댔으니, 몸이 천근만근인 게 당연했다. 다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양손에 캐리어를 끌고 달린 덕분에 겨우겨우 열차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이상했다. 기차역에 크게 매달린 전광판을 아무리 둘러봐도 우리가 탈 기차를 찾을 수 없었다.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빨리 플랫폼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마음이 점점 초조해졌고, 결국 역무원을 붙잡고 미리 인쇄해 온 티켓을 보여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었다.
“이건 어제 자 티켓인데?” 역무원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우리가 예매한 열차는 이미 어제 떠나버린 거였다. 그 순간 친구가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친구가 그 티켓을 예매했기 때문이었고, 둘째로는 그 값이 꽤나 비쌌기 때문이었다. 몇천 원이라도 아껴보자고 한국에서 미리 티켓을 예매해 왔건만, 우리의 피 같은 몇만 원과 새벽녘의 고생이 하늘 위로 날아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기쁨
서둘러 다음 열차를 찾아봤지만, 표가 모두 매진되어 몇 시간 후에나 떠날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쉬운 대로 표 두 장을 다시 예매하고 역을 나섰다. 이제 몇 시간 동안 시간을 보낼 곳을 찾아야 했다. 마침 역 앞에 있는 카페가 문을 연 게 보였고, 우리는 아쉬운 대로 캐리어를 질질 끌고 그곳으로 향했다.
“너한테 한 번 더 확인받을 걸 그랬나 봐…” 친구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가 꼼꼼하게 체크하지 못해 일이 이렇게 되었다는 생각에 속상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내가 엄청난 계획형이라는 걸, 그래서 이 상황이 나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일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괜찮다는 내 말에도 계속 음울한 표정으로 애꿎은 캐리어만 만지작거렸다.
아침부터 공복 달리기를 한 탓에 출출함이 느껴졌다. 물론 이렇게 큰 역 앞에 있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맛있는 음식을 기대하는 건 사치였다. 그래서 우리도 별생각 없이 가장 기본적인 오렌지주스와 크루아상을 주문했다. 적당히 시간만 보내다 어서 스위스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행복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찾아오는 법이었다. 이른 아침, 이제 막 문을 연 카페에서는 우리에게 갓 구운 크루아상을 내주었다. 엄청나게 부드러우면서 바삭했다. 오렌지주스는 정말 생과일을 짜낸 듯 신선했다. 커피는 향긋했고,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재즈와 창가로 스미는 아침 햇살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어쩔 수 없이 택한 상황에서 마주치는 기쁨들이 있다.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을 때만 만날 수 있는 이 예기치 못한 기쁨은 우리의 슬픔을 상쇄해 준다. 그리고 그 어떤 기쁨보다도 더 오랜 시간 기억에 남아 우리를 즐겁게 한다.
기차표를 잘못 예매하지 않았더라면, 새벽같이 이 역 앞으로 달려오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이렇게 맛있는 크루아상을 못 먹어볼 뻔했네. 웃으며 주스를 마시는 나를 보며, 친구는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빵을 뜯어 먹기 시작했다.